독일에 교환학생으로 파견되기 위해 지원서와 면접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던 때였다. 사람들을 만나서 근황을 이야기하면 대부분 이렇게 되물었다. "음, 왜 미국이 아니고?" 실질적인 스펙이 되는 나라, 굳이 갈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없는 나라는 미국이었다. 영어를 충분히 잘하지 않으면 제2외국어도 소용없다고 했다. 나는 독일에 갈 이유가아니라 '미국이 아니라 독일에 가야할 이유'를 찾아야했다. 우리나라에서 미국은 정말 절대적인 나라이다. 미국으로 몰려드는 전 세계 유학생 수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에서 오는 유학생이 중국, 인도에 이어 3위(UNESCO, 2021)를 차지한다. 우리나라 인구수가 전 세계 28위(KOSIS, 2021)인 것을 감안하면 미국 유학에 대한 편중이 우리나라에서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그림 출처 : http://uis.unesco.org/en/uis-student-flow
당연한 결과로, 우리나라 교육에는 미국식 시스템이 많이 도입되었다. 대표적으로 입학사정제가 있다. 입학사정제가 도입될 당시 입학사정제는 마치 선진국에서 학생들을 시험 성적으로만 판단하는 게 아니라 학생의 개성과 다양한 경험을 함께 평가하는 시스템으로 인식되었다. 이제 와서 공부를 해보니 입학사정제는 미국 외의 여타 선진국들에서는 시행되지 않는 제도였다. 그러니까 미국은 선진국과 동의어였다. 게다가 미국에서조차 위와 같은 이상적인 이유가 아니라 SAT 성적만 가지고 학생을 선발하다보니 아이비리그에 유대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져 이를 저지시키고자 한 미국 백인 주류 계층의 의도가 담긴 시스템이었다.
이러한 미국식 교육 시스템의 무분별한 도입은 결과적으로 우리나라가 해결하고자 한 교육적 문제를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못했다. 입학사정제를 도입하면 학교교육의 과정이 중시되고 수능시험 영향력은 축소되어 학교교육이 정상화되고 활기를 띨 것이라는 기대(서울경제, 2004)는 실현되지 않았다. 다만 학생과 학부모의 대입 부담을 가중시키고 사교육을 부추겼으며 불공정 담론을 확산시켜 많은 청년들과 청소년들을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했다. 세계를 전체적으로 보지 못하고 미국만 보고, 우리 스스로도 보지 못하고 미국만 본 결과이자, 미국조차도 속살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겉모습만 따라한 것에 대한 대가이다.
입학사정제뿐만이 아니다.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미국으로부터 도입되어 오랜 기간 우리 교육과정에 자리하고 있던 단위제 교육과정(unit system)이라는 것이 있다. 단위제란 일정한 과목의 이수 단위를 기준으로 학년 진급 및 졸업을 정하는 제도로, 대학의 학점(credit)제와 유사한 개념이자, 학년 단위로 졸업자격 충족 여부가 결정되고 학사 일정이 운영되는 '학년제'와 대비되는 개념이다(최정희, 이길상, 2015). 만약 이 단위제가 제대로 도입되었다면 핀란드처럼 학생들이 학년에 상관 없이 자신이 설계한 교육과정을 단위별로 이수함으로써 학습 속도가 빠른 학생은 2년 만에도, 느린 학생은 4년에 걸려 졸업하게 되는 시스템(후쿠다 세이지, 2006; 최정희, 이길상, 2015에서 재인용)이 되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문화적으로 동일 나이, 동일 학년에 대한 결집력이 그 어디보다 강하며 학교에서의 학년제의 전통 또한 어느 나라보다도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곳이 우리나라이다.
독립 후 미국은 각 자치별로 독자적으로 교육 시스템을 운영함에 따라 교육이 매우 다양화된 상태에서 학교별, 지역별로 교육성과 표기를 제각기 다르게 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학 입시와 산업계의 선발에 있어 통일된 학업성과 표기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또한 산업화와 도시화, 영토의 확장, 인구의 증가 등으로 학교 간, 지역 간 학생 이동이 증가함에 따라 표준화된 학업 관리 시스템에 대한 필요성도 대두되었다. 미국은 이러한 배경으로 단위제를 도입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고등학교에서는 단위제를 채택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하기 시작한 제2차 교육과정이 공포된 1960년대 초 당시 한국에는 위와 같은 필요성이 존재하지 않았다. 한국의 교육과정은 식민지 이래로 이미 지역별, 학교별로 매우 통일적인 상태였다(최정희, 이길상, 2015). 최정희, 이길상(2015)은 한국에서 섣불리 교육과정 편성 원칙으로 단위제를 채택한 것은 단위제의 개념이나 취지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사대적 교육정책의 대표적 사례로 외국의 제도나 사상을 무분별하게 도입하던 산업화 초기의 주체성 없고 환상적이며 무의미한 추상성에 사로잡혀있던 교육엘리트 집단의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지적한다.
단위제는 고등학교의 학년제의 특성에도 아무런 영향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30년이 넘도록 학계에서는 이런 단위제에 대한 논의조차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97년 제7차 교육과정에서 비로소 "단위제를 원칙"으로 한다는 규정이 사라졌는데, 이후에도 여전히 학습량을 표기하는 기준으로서 '단위'라는 개념이 사용되고 있다(최정희, 이길상, 2015). 이런 식으로 도입되었던 단위제는 결국 학습의 성과를 질이 아닌 양으로만 측정하는 방식만 고착화시킴으로써 '수업시간에 잠만 자도 졸업할 수 있는' 한국 공교육의 현재에 기여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여전히 많은 문제를 보이는 우리나라 공교육은 계속해서 변화를 모색 중에 있으며 교육은 국가를 중심으로 체계가 잡히고 운영되곤 하기 때문에 그 모델은 외국의 사례가 되곤 한다. 그러나 교육은 국가의 모든 요소에 얽혀 있기 때문에 결코 그 단면만 보아서는 안 되고 그 맥락과 배경을 살피고 또 살펴야 한다. 그리고 궁극에는 우리 자신을 가장 잘 살피는 일이 되어야 한다. 섣부른 도입으로 우리나라에서 부작용을 일으킨 사례가 하도 많아 이제는 무언가 도입한다는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기대가 아닌 우려를 먼저 하게 된다. 2025년부터 전면 시행된다는 고교학점제에 대해서도 학계와 현장의 의심이 분분하다.
학점제는 단위제와마찬가지로 학년제와는 다소 대치되는 개념이다. 즉, 학점제는 학년에 관계없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할 수 있을 때 그 장점이 잘 실현될 수 있다(김혜영, 홍후조, 2021). 그런데 학점제를 도입한다면서 무학년제에 대한 배경 변인에 대해서는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또한 학점제는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일정 성취 기준에 도달했을 때 학점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이 개념과 취지만 봤을 때는 고등학교교육의 질 관리가 확실히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또 막상 현실에서는 학년제의 뿌리 깊은 문화를 이기지 못하여 모든 학생들을 그 도달 수준에 관계없이 서류상으로만 도달했다고 하고 다음 학년으로, 학교 밖으로 보내게 되는 것은 아닐지 우려스럽다.
우리나라에서 과연 무학년제가 가능할까, 하는 화두를 던졌을 때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아무래도 우리에게 이미 형성되어있는 문화 속에서는 혼란과 서로 간의 위화감만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우려다. 문화란 사전적인 의미로는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일정한 목적 또는 생활 이상을 실현하고자 사회 구성원에 의하여 습득, 공유, 전달되는 행동 양식이나 생활양식의 과정 및 그 과정에서 이룩하여 낸 물질적ㆍ정신적 소득'(네이버, 표준국어대사전, 2021)이다. 그러나 일상용어에서 문화란 특정한 목적이 없이 해당 집단에서 꽤 오랜 시간 그래왔다는 이유만으로 계속해서 유지하게 되는 행위와 사상을 통칭하기도 하는 것 같다. 또한 문화는 오랜 시간 지속되어온 특징인 경우가 많고 외적으로는 그 영향이 잘 드러나지 않는 내재적 특성이라 바꾸기가 가장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외국의 좋은 제도는 잘 들여오지만 그 문화를 함께 배워보려는 시도는 주저한다. 그러나 정말 좋은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인내심과 많은 어려움을 감행하는 일이 되겠지만 결국 '문화'를 찔러 살피고 개선해야 할 것이다.
블룸이 학생들을 무작위로 '고정 속도형 그룹'과 '자율 속도형 그룹'으로 나누어 수업을 진행했을 때, 전자의 교실에서는 20%만이 수업 내용을 완전히 이해한 수준에 도달했고 후자의 교실에서는 90% 이상이 같은 수준에 도달했다고 한다. 즉, 학습 속도에 유연성을 허용하면 대다수의 학생들이 뛰어난 성취도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토드 로즈, 2015). 교육자 집단이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시간이 다 되었다는 이유로 학습을 중단시켜버리는 것은 비교육적일뿐더러 잔인한 일이다. 그런데도 학년제의 문화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면, 100m 달리기를 몇 초 안에 뛰는지를 계산해주는 것만이 공교육이 할 수 있는 역할의 전부라고 인정해버리는 것이다.
코로나19를 뚫고 여전히 많은 이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고 미국으로 가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미국으로 가려는 의지는 내가 몸담은 교육학계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들이 미국에서 진정으로 배우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미국은 자유의 이념으로 세워진 나라이며 세계 1위의 경제대국이다. 세계적인 천재들이 뛰노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그렇지 못한 우리의 현실을 보면 미국에서 배워야 할 것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겉모습만 따라하는 게 아니라 진짜를 배워야 할 것이다. 추천서제도를 들여오는 게 아니라 추천서제도에 서려 있는 학생과 교사, 교사와 기관 간 정직과 신뢰의 문화를 배워야 할 것이다. 또한 사립대학 기여입학제를 보고 학위를 돈 주고 사는 자본주의의 폐단이라고 지적하고 우리 문화에서는 절대 용인될 수 없는 것이라고 속단할 것이 아니라, 기여입학제가 용인되고 설득되는 그 문화적 배경이 무엇인지를 보아야 한다. 또한 이에 대해 불편함을 드러내는 여러 목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고수하고 지키는 이유가 무엇인지, 어떤 가치를 중요시하기 때문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무엇보다 미국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속에서의 미국을 봐야 할 것이며, 특히 우리 자신을 정확히 알고 미국을 봐야 할 것이다. 제대로 알고, 우리나라의 행동력이 가미된다면 멀지 않은 미래에는 선행학습, 기능 위주의 학습으로 무한 반복을 시킴으로써 창의적인 아이들의 시간을 낭비시키는 우리의 교육, 공교육과 사교육이 우물 안에서 서로 경쟁을 하는 말도 안 되는 시스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참고문헌
김혜영, 홍후조(2021). 미국 고교학점제의 특징과 한국 고교학점제 시행을 위한 정책적 시사 점: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운용 사례를 중심으로. 교육학연구, 56(1), 245-277.
서울경제(2004). '입학사정관'은 학생 소질·특기 종합적판단 선발역할. (2004.08.26.보도)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2&oid=011&aid=0000049079
장의선(2011). 미국과 한국의 국가수준 평가 체제에 대한 비교 연구. 사회과교육연구, 18(4), 99-119
최정희, 이길상(2015). 미국, 일본, 한국의 단위제 교육과정 비교 연구. 교육문화연구, 21(5), 39~63.
토드 로즈(2015). 평균의 종말(정미나 역). 21세기북스.
참고 사이트
UNESCO http://uis.unesco.org/
국가통계포털 https://kosis.kr/
네이버 국어사전 https://ko.dic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