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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nie Jan 21. 2022

프랑스 학교교육, 철학과 글쓰기


  프랑스 교육을 가장 특징짓는 것은 바칼로레아이다. 그리고 바칼로레아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된 것은 바로 철학과목을 포함한다는 점이다. 철학교육이 대학이 아닌 고등학교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프랑스 교육의 독특함이자 명성이다. 철학수업이 일찍부터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고 대학 진학을 목적으로 하는 인문계 고등학교인 리세((Lycée)의 마지막 학년에서 1년 간 이루어지며, 고등학교 졸업 시험인 바칼로레아(baccalauréat)로 일단락되는데(윤성우, 2007) 이는 마무리의 의미보다는 대학 과정으로 이어지는 의미가 큰 듯하다.     


  그렇다면 과연 고등학교에서의 철학 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여러 과목 계열마다의 개념을 주제로 하는 논제에 대해 답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문학계열의 ‘인간의 행위’라는 상위 개념 하에서 ‘역사’라는 하위 개념을 가지고 “과거를 망각하면서 현재를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논제가 탄생한다. 이 문제에 대해 학생들은 토론을 하고 소논문을 작성하고, 교사는 이를 교정하고 논평해준다(윤성우, 2007). 이렇게 수업과 시험 대비가 따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수업 자체가 쓰기 시험인 바칼로레아의 대비가 된다.      


   즉 철학 학습은 문제의 독해, 토론 및 사고(思考), 글쓰기의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글쓰기는 독해와 사고 과정을 통해 내 것이 된 지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표현하는 학습의 최종 단계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철학적, 논리적 글쓰기는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는 과정이 아니다. 그래서 프랑스 교육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체계적인 글쓰기를 훈련한다. 프랑스의 프랑스어에 대한 자부심은 교육에서도 언어를 가장 강조함으로써 드러나는데, 언어 능력 중에서도 가장 고차원적인 영역인 쓰기 능력의 신장에 초등학교부터 중점을 둔다고 한다. 즉, 취학 초기부터 쓰기에 익숙해지도록 하여 초등학교, 중학교를 지나며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학교 현장에서 쓰기 교육이 잘 실행되도록 노력한다(박우성, 2021).     


  일부 엘리트가 아닌, 모두를 위한 철학 교육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아래 표는 올해 출제된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 문제의 목록이다. 고등학생들이 답한다는 이 질문들은, 성인으로서도 답하기 어려운 문제들이다. 그리고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했던 행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며 깊은 생각에 빠져들게 하는 질문들이다. 이에 대한 답을 찾았든 찾지 못했든 인생의 문제 혹은 사회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의문을 제기해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삶과 세상을 대하는 자세는 달라질 수 있다.                    





  <핀란드의 끝없는 도전>이라는 책에서 교육의 난제를 해결하는 것에 대해서 ‘도덕적 의무’와 ‘경제적 의무’로 설명하고 있는데 그 중 도덕적 의무는, 좋은 교육을 통해 심어주는 지식과 기술, 세계관에서 개인의 건강과 궁극적 행복이 비롯된다는 것이다(파시살베르크, 2016). 최근 정신 건강이나 행복은 단순히 감각적이거나 감성적인 게 아니라 지성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맛있다’고 느끼는 게 인생의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는 것이다. 행복은 개인의 삶과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관조적인 자세와 그것을 통한 의미 부여와 긍정적인 해석으로부터 온다. <미래 교육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책에서는 이러한 관조적인 태도를 교육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관조적인 자세를 기르는 것이 바로 철학적 질문들이다. 외부의 자극, 혹은 공격들에 대해 그대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다각도의 철학 프레임을 가지고 숙고의 과정을 거쳐 신중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하는 훈련인 것이다.      


  혁명을 거치고 자유와 평등을 강력하게 외치는 프랑스이지만, 그 이면에 그랑제꼴(Grandes écoles) 출신으로 구성되는 엘리트 중심의 통치가 강력하게 자리한다는 것과, 또한 대통령의 힘이 막강하게 작용한다는 것은 프랑스 정치 및 사회를 바라보는 이들에게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사회 체제의 완전성의 여부를 떠나서 온 국민이 “정치는 모두의 몫인가?”라든지 “인간은 국가에 의존해야 하는가?”와 같은 질문에 한 번쯤 생각해 본 사회라면 적어도 그 체제가 위험해보이진 않는다.     


  프랑스에서 7년 간 유학하고 오신 분의 이야기이다. 하루는 공부를 하려고 자전거를 타고 도서관에 갔는데, 도서관 앞에 자전거를 세워놓고서는 그만 실수로 옆의 자전거를 같이 묶어버렸다. 그 사실을 전혀 모른 채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이제 집에 가려는데 자전거 안장에 쪽지가 한 장 붙어있었다. “Mille mercis(정말 감사합니다.). 당신 덕에 집에 걸어서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신 덕에 더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난감하고 화가 나는 상황을 이렇게 지혜롭고 위트 있게 넘어가기 위해 이 사람은 어떤 사고의 과정을 거쳤을까?          


  다시 쓰기 교육으로 잠깐 돌아가서, 왜 쓰기 교육을 해야 하는 것일까? 글쓰기는 진정한 공부의 각 마지막 단계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공부란, 위 프랑스에서의 철학 수업 방법으로 나타난 것 그대로, 지문을 읽고, 생각하고 쓰는 일련의 과정의 반복이다. 그래서 글쓰기는 독립적일 수 없고 읽기와 생각하기를 아우르는 궁극적인 것이다. 글을 써본 사람들이라면 글 쓰는 과정이 얼마나 고도의 사고력을 요하는 일인지 알 것이다. 생각을 마치고 대강 이러이러하게 글을 써야지, 라고 하고 글쓰기를 시작했을 때 비로소 다시금 생각과 논리의 정리가 시작된다. 한 편의 완전한 글을 완성했다는 것은 외부로부터 습득한 지식이 주체적 지식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프랑스 교육을 대표하는 게 철학과 쓰기라고 한다면 한국 교육은 이 두 가지가 가장 결여되어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아래는 이번 2022년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영역 화법과 작문 파트에 출제되었던 작문 문제들이다. 제시된 5개의 답 중 하나를 골라 맞추면 대학 수준의 작문이 가능하다는 것을 과연 증명한다고 볼 수 있을까?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와 우리나라의 고등학교 졸업 및 대입 시험을 비교해봤을 때 서논술형이 아닌 선다형 객관식 시험을 시행하고 있는 나라는 오직 우리나라밖에 없다. 선다형 시험의 문제는 지식 습득의 완전성을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나 공부 시간을 문제풀이 스킬을 연마하는 데에 써야 한다는 것에만 있지 않다. 정말 치명적인 문제는 맞고 틀림을 명확하게 규정함으로써, 즉 정답을 강요함으로써 주체적인 인간이 아니라 약한 자아를 형성한다는 데에 있다. 철학적 사고와 가장 대치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참고자료

고현석(2021). 2021 프랑스 수능 ‘바깔로레아’ 철학 시험 문제는?. 대학지성 In&Out. 2021. 06.23. 기사. https://www.unipres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897 

박우성(2021). 바칼로레아 쓰기 평가체제와 시사점. 한국프랑스어문교육학회지 프랑스어문교육. 72; 7~30.

박제원(2021). 미래교육의 불편한 진실. EBS BOOKS. 

윤성우(2007), 프랑스에서의 철학교육에 관한 소고-바칼로레아와 교사의 역할 및 자격을 중심으로. 철학과 문화. 14.

파시살베르크(2016). 핀란드의 끝없는 도전(이은진 역). 푸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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