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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유근육통| 장장 7년의 세월이다.

근통이의 하루 2편

*소설: 섬유근육통 환자의 치유 성장기입니다.


잠깐 잠이 들었나 보다.

그런데 꿈속의 기억이 너무나 선명하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온다.

꿈속에서 며칠 전 친구로부터 받은 책의 주인공을 만난 것이다.

이름하여 '퓨처리스트'다.


허허허 참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시니컬한 헛웃음을 지어본다.

너무도 고난하고 지난한 인생을 견뎌내고 있는 나에게 미래를 생각해보라는 것은 어찌 보면 고문에 가깝다.

녹음기를 틀듯이 남들처럼만 살게 해달라고 기도해보지만, 결국 현실은 보기만 해도 배부른 약봉지를 쥐고 조여 오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절규하는 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작 나의 외침에 대한 신의 응답은 결코 오지 않는다.


가벼운 산들바람에 누군가는 연인과의 사랑,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며 행복한 미래를 꿈꾸겠지만 나에게는 희망을 주고자 하는 가벼운 농담에도 뇌의 편도체를 바늘로 찌르듯 자극하는 공포와 불안뿐이다.

멈추지 않는 폭풍우가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떨어뜨리면 사과는 바닥에 떨어져 썩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는 것처럼 매일매일이 쓰나미가 밀려오는 나의 일상에 미래가 과연 있을까?


누군가에게 퓨처리스트를 아냐고 묻는다면 대번에 다들 “신종 사기꾼 아니야?”란 대답을 들을 터이다.

전 인텔 수석 미래학자인 브라이언 데이비드 존슨, BDJ는  퓨처캐스팅이란 방법을 통해서 원하는 미래를 설계하는 지침서를 최근 발간했다.

어떻게 생겼는지 사진을 본 적은 없지만, 덥수룩한 수염에 인자한 눈빛을 가진 서양 남자를 꿈속에서 만난 것이다. 


꿈속의 나는 비행기 탑승시간에 임박한 BDJ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BDJ 씨 제 말 좀 들어주세요. 죽는 것 말고는 방법은 없나요? 저에게 미래가 있을까요?”

캐리어 가방을 끌고 바쁜 듯 잰걸음으로 서둘러 가던 BDJ가 놀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런 일을 많이 경험해봤던지 이내 부드러운 표정으로 “그래서,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대답하면서 나를 향해 돌아섰다.


나의 건강한 미래를 위한 퓨처캐스팅이 시작된 것이다.

“건강해지고 싶어요. 더 잔인하게 말하자면 사람답게 살고 싶어요”

나는 이렇게 말했지만 실제로는 BDJ가 듣기에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흥분된 채로 쏘아붙여버렸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바쁘게 길을 가는 사람을 무작정 불러 세워 이유모를 분노를 한순간에 받은 BDJ의 어안 벙벙한 얼굴은 눈으로 보지 않아도 모두 짐작이 갈 것이다.


BDJ는 노련하게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웃으면서 대답했다.

“좋아요. 그렇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건강한 인생이란 어떤 모습인가요? 일단 원하지 않는 미래는 사람답지 못하게 사는 것이겠네요.”


정답을 얻기 위해 BDJ를 불러 세웠지만, 고작 나의 대답은 이것뿐이었다.

“잘 모르겠어요. 그냥 지금은 모든 게 화가 나고 절망일 뿐이에요”

그는 자신이 원하는 미래의 정확한 모습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계속해서 질문들을 이어갔다.


BDJ와 함께 미래 이야기를 써보니 문득 지금껏 나는 점점 깊어져 가는 깊은 우울의 우물에 갇혀 내가 보는 세상은 단지 조그만 우물 입구만 한 크기의 세상뿐임을 점점 깨닫게 되었다.

꿈속의 나는 건강한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보기 시작했다.

덩치가 산만큼 커버린 내 아이를 단단해진 나의 등에 업혀 둥가 둥가 엉덩이를 두드려가며 어부바를 해주고 있는 모습.

백두대간을 마지막의 종주를 동호회원들과 함께 하며 환호하는 모습

지금껏 쌓여온 여러 약들을 웃는 얼굴로 버리며 훌훌 털어내는 모습

유튜브에서 봤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내며 모든 감정을 털어내며 마지막에 활짝 웃는 모습

유튜버가 되어 섬유근육통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며 함께 울고 웃는 모습

나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아이가 곤히 잠든 밤 쌕쌕 거리는 숨소리를 강장제 삼아 책을 집필하는 모습

온 가족이 오스트리아 스키장에서 일렬로 스키 랠리를 타며 신나게 내려오는 모습


꿈속의 꿈일 뿐이라고 아쉽기보다 오히려 순수한 기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상상이지만 깊은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온 이 순간, 내 인생의 모든 이야기가 바뀌는 느낌이에요.”

“맞아요.” BDJ가 동의했다.

“미래의 궤도를 바꾸었군요! 축하합니다.”

뭐라고 미래가 바뀌었다고? 아 맞아 이건 꿈이구나.


BDJ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지금 하신 말들은 글로 직접 적어보고, 눈으로 읽고, 말로 되뇌면서 귀로 들어보세요. 실제로 무언가를 적는 행위는 사고를 활발하게 하고, 원초적인 감각인 오감을 모두 자극함으로써 눈앞에 적혀있는 당신의 목표와 목적을 보고 시각화할 때 현실에 한걸은 더 가까워집니다."


그리고, BDJ는 나의 손을 잡고 힘을 꽉 주며 기를 불어넣듯이 이렇게 말했다.

“이제 당신의 미래는 바뀌었습니다. 소극적인 방관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참여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원하는 미래를 곧장 가족과 친구에게 들려주세요. 당신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상관없습니다. 주변인에게 당신이 생각하는 미래를 말해주기만 해도 미래를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은 모습으로 변화시킬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네트워크망을 넓혀보세요. 세상 밖으로 나가보세요. 당신을 도와줄 팀원을 찾고, 전문가를 만나보세요.”

“저는 아는 사람이 없어요.” 

실제로도 내향적인 성격이지만, 섬유근육통으로 이제는 가족마저 나에게서 등을 돌린 느낌이다.


BDJ는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손가락을 들어 컴퓨터를 가리켰다.

‘광고 투성이에 온갖 사기꾼, 너무 뻔한 이야기들이 가득한 온라인으로 들어가 보라고?’

 

나의 꿈의 기억은 여기까지이다.

선물 받은 책의 한 챕터처럼 BDJ와 나눈 대화는 비록 다른 꿈들처럼 희미해지겠지만 꿈속에서 로또번호를 듣고서 흥분된 마음으로 복권가게에 달려가는 것처럼 야릇한 흥분이 한동안 나를 사로잡았다.


며칠 전 딸아이가 학교를 다녀오면서 가방에서 인형을 꺼내 보인다.

"엄마! 학원 선생님이 오늘 책 끝냈다고 선물로 유니콘 인형을 주셨어요. 한번 봐보세요. 너무 예쁘죠!"

아니 집에 인형이 넘쳐나고 아무 데나 던져놓고 찾지도 못할 거면서 또 인형을 받아왔네 하고 퉁명스러운 말부터 나갈 나이지만, 오래간만에 기분 좋은 나는 해맑은 딸아이의 웃음을 망치지 싫기도 해서 "오 최고 딸! 축하해! 열심히 했더니 좋아하는 인형도 생겼네. 대박인데!" 하고 맞장구쳤다.


"엄마 엄마 그치 너무 예쁘지요? 이름을 뭐로 지을지 생각 중이에요."

"귀여운 유니콘을 주여서 '귀유콘'이 어때?" 요즘 다들 단어들을 줄여서 말하길래 나도 한번 거들어 보았다.

"너무 어려워요."

"그럼 '코니'는 어때?"

"코니, 코니 흐흐 좋은데요. 우리 코니야~"

딸아이는 코니라는 이름이 마음에 드는지 인형을 가슴에 꼭 안고 방으로 들어간다.


번쩍 머릿속에 드는 생각이 있었다.

나도 나에게 별명을 붙여볼까?

말라버린 황량한 사막일지라도 우리는 오아시스의 물을 찾아가야 하는 것처럼 나에게도 '섬유근육통'이라는 꼬리표가 붙여버렸지만 힘겨운 발걸음이지만 걷지 않을 수는 없다.


우리 딸아이에게 지금 최고의 기쁨은 '코니'와 함께하는 시간처럼 나에게도 또 다른 이름을 붙여 불러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 정했다!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나의 또 다른 자아는 이제부터 '근통이'로 부르며 성장시키려고 한다.


'근통아~ 근통아~' 왠지 입에 착착 감기는 별명에 안쓰러운 애잔한 웃음이 지어진다.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정신의 차려 바라본 현실은…


3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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