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좋은 날의 불길한 시작

by 썬이

햇살이 유독 맑은 느지막한 오전 어느 날.

오하라 가에선 호외로 온 신문을 정리 중인 하녀 마리가 분주해 보였다.

그녀는 매일 청소해도 더러워지는 카펫을 보면 머리가 지끈 아려왔다.

구정물이나 탄 자국은 어쩔 수 없다 한들 핏자국까지 있다면 그날은 빨래방에서 하루를 보내야 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탄 자국에 핏자국까지 있는 발자국에 이마를 턱 하니 짚은 마리가 한숨을 뱉었다.


“오, 세상에, 신이시어. 오늘도 시련을 주시나이까.”


오늘도 하루가 길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던 마리는 창가 쪽을 바라보며 한 폭의 그림을 감상하듯 위안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 우리 아가씨라서 그런 게 아니고 정말 여신 같으셔. 누가 우리 아가씨를 15살로 보실까나.”


마리의 칭찬에도 표정 변화 없는 멜리아는 오늘치 피아노 연습을 이어 했다.

그리고 모든 연주가 모두 끝나고 나서야 고개를 주억거리며 감사 인사를 표했다.


“고마워. 마리. 줄리아는?”


마리는 작게 벌린 입술 사이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줄리아 아가씨는 아직 주무시고 계실 거예요….”

“아직?”

“네…. 깨우고 오겠습니다.”

“하…. 아직이라.”


멜리아의 시선이 창밖을 향했다. 구름 사이를 기민하게 살피던 그녀의 시선이 다시 집안으로 내려왔다. 아주 짧은 한숨이 나왔다. 부모님 모두 자리를 비우셨다. 자신이라도 정신을 차려야 했다. 테이블 위 시계를 잠시 바라보던 아이는 쉬는 시간의 여유를 파악한 뒤 생각을 정리했다. 더는 지체 할 시간이 없었다. 부모님이 정해주신 시간표를 떠올리던 멜리아가 다시 걸음을 움직였다.

* * *


날개가 아주 큰 비행기가 굽이굽이 친 산을 넘어가다 휙 하고 내게 날아왔다. 그 비행기는 아주 빠른 속도였다. 너무 빨라서 어디로 피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긴박한 상황이었다. 나는 주위를 살폈지만 도통 피해야 할 곳을 찾지 못했다. 거대하고 집채만 한 비행기에 충돌할뻔한 나는 두 손을 뻗었고 손바닥에서 금색 빛이 솟아났다. 아주 눈이 부실 정도의 빛이었다. 빛을 쏘고 있던 당사자인 나도 눈이 부셔 눈을 뜨지 못할 정도였으니 고개를 돌려 살며시 눈을 뜨니, 비행기가 서서히 쪼개지고 있었다.

그렇다. 두 손으로 비행기를 쪼개는 나는 무시무시한 금색 손을 가진 괴물이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비행기란 서 대제국에 갈 때나 사신들이 탄다던 그것을 내가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이지? 아 그래. 책에서 보았지. 어제 사전에서.


뭐 사전?


우당탕. 둔탁한 것이 튀는 소리가 들렸다.

마룻바닥에 찍힌 세 곳을 바라보던 줄리아는 왼쪽 머리를 부여잡고 눈물을 찔끔 흘렸다. 그리고 떨어진 침대를 붙잡고 일어나 앉으며 애써 부딪힌 곳을 다시 비비며 털어냈다.


“하……. 재밌었다. 진짜·책에서 보던 거였어. 분명.”


종이로만 보던 게 눈앞에 있으니 더욱 웅장해 보였다.


줄리아는 박동하는 심장 위에 손바닥을 올렸다.

한동안 그 순간을 즐겼다. 아직도 방안이 꿈속 같았다. 주변은 수풀이 우거진 것 같았고 산들바람이 부는 것 같았으며 풀잎 내음이 폐부를 가득 채우는 기분이 들었다.

잔뜩 늘어난 폐를 진하게 수축하며 뱉어낸 줄리아가 기분 좋게 웃었다.


“우하하하. 좋은 아침이다!”


마침 햇살도 좋고. 아마, 아침일 껄?

똑똑.

그때 누군가가 줄리아의 방안을 두드렸다.

하나. 둘. 셋. 속으로 숫자를 세던 줄리아가 방문을 열며 놀라게 했다.


“우악! 마리! 좋은 아침!”

“아이고머니 나!”


마리가 뒤로 넘어지며 들고 있던 빨래를 뒤로 던져 버렸다.

결국 힘들게 개킨 빨래가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졌고, 그것이 재밌다며 줄리아는 웃었다. 바보래요! 바보래요! 매일 당하고도! 또 당한대요!


“13살이 되시면 철이 드실 줄 알았거든요……. 제 착각이셨네요.”


십 년 뒤엔 과연 다를까.

주인이 모르게 한숨을 내쉬던 마리는 중얼거리듯 빨래를 주우러 내려갔다.

정말로 힘이 빠지게 하는 주인이었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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