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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어닝 Dec 26. 2023

크리스마스 솔로의 SBS 가요대전 알바 후기

*처음 해보는 특별한 경험이어서 간단한 후기 남깁니다!


대학 마지막 학기 종강을 했는데 취업을 아직 못했다. 내년 상반기를 위해 준비를 해야되는데 어차피 솔로라 크리스마스 보낼 같이 보낼 사람도 없고 눈치도 보이니 돈이나 벌자는 마음으로 리조트 알바에 지원했다.


내가 지원한 것은 경호팀이었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VIP 경호가 아닌 안내업무라고 하여 가벼운 마음으로 준비했다. 위치는 인천공항 옆에 이번에 새로 지어졌다는 '인스파이어 엔터테인먼트 리조트'. 검정 정장을 입고오라길래 호텔에서 멋있는 일 해보겠구나^^라는 생각에 아침부터 달려서 리조트로 찾아갔다.


직원+다른 알바분들과 섞여 리조트와 아레나로 나누어졌는데 내가 지원한 곳은 아레나 팀이었다. 그리고 안내에 따라 아레나 앞으로 이동했는데 정말 멋진 광경이 펼쳐졌다.


오로라라고 부르는 곳인데 디스플레이 여러개가 유기적으로 움직여서 멋진 광경을 펼치고 있었다. 나중에 보니 여기가 제일 유명해서 모든 관광객들이 한 번씩 사진을 찍어가는 코스였다. 이 앞이 바로 아레나이고 이번 공연 VIP들이 이동하는 통로여서 나는 이곳에서 일반인분들의 통제를 맡았다.


사실 SBS 가요대전이 이날 하는지도 몰랐고 이 장소에서 하는지도 몰랐다ㅋㅋㅋ. 그냥 돈이나 벌자하고 왔더니 SBS 가요대전 인파 통제를 위해서 용병으로 투입된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덕분에 1년동안 볼 일본인과 중국인들을 모두 만나볼 수 있었다ㅎㅎ.


10시쯤 되니 일본인과 중국인을 태운 버스들이 대거 도착하고 단체 관광객 깃발을 든 가이드들이 이들을 안내했다. '아니, 공연은 저녁에 할텐데 벌써 줄을 선다고?' 줄을 어느새 VIP 통로 앞까지 이어졌고 한동안 이들을 통제하느라 진땀을 냈다.


통로 통제 외에도 맨 바닥에 앉지 못하게 하는 역할도 하달 받았는데 처음에는 잘 지켜지다가 사람이 너무 몰리고 다들 앉기 시작하면서 통제를 할 수가 없었다. 사실 나 같아도 공연이 5시 10분에 시작한다는데 10시부터 줄 서면서 또 스탠딩에서 공연본다 생각하면 체력이 안 될 것 같다...


1시부터 조금씩 입장하기 시작했고 직원분들의 안전한 통제로 5시 10분까지 입장이 계속 진행됐다. 안전통제는 정말 잘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게 공연 입장도 긴 시간에 걸쳐 진행하면서 인파가 몰리지 않게 하였고 나갈 때도 우루루 나오지 않고 조금씩 질서정연하게 나오는 게 보였다. 가요대전을 위해서만 투입된 인원이 370여명이라는데 (나를 포함한) 이분 들에게 정말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경찰과 소방관 분들까지 오면서 모두가 안전한 공연을 위해 애쓰셨다.


다시 일 얘기로 돌아가서 우리는 3명이서 돌아가면서 섰고 2명씩 근무해야 돼서 1명씩 쉬었다. 우리가 맡은 게 보안팀이다 보니 리조트 구조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갔는데 VIP 통로 왜 이용 못하냐는 질문과 함께 '레드카펫이 어디예요?, 오션타워는요? 화장실은 어디예요?' 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들었다. 우리도 정말 대답해주고 싶은데 몰라서 답을 못해줬다ㅠㅠ. 그나마 화장실이나 물품보관소 같은 건 우리가 직접 위치를 찾아다녀서 나중에는 설명해줬다. 친절하게 알려주고 싶었는데 알지 못해 못 알려줘서 미안했습니다ㅠㅠ. 게다가 내가 계속 붙잡혀서 대답해 주고 있으니까 경호팀장님이 내 위치 딱 지키고 안내는 다른 분에게 맡기라고 했다.


환기겸 예쁜짤 투척. 여기 꼭 보러오세요ㅠㅠ .진짜 예뻐요.

오후에 인파가 몰리면서 우리는 다른 임무를 하나 더 부여 받았다. 중앙 광장쪽에서 안전을 지키는 임무였다. 근데 이것도 재밌는 게 사실 안전 지킬 건 없었고 이때부터 안내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한국인 포함 온갖 외국분들의 질문 폭탄을 받았는데 이때는 이제 줄을 서고 들어갈 때라 스탠딩석과 지정석이 어디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다. 알 수 없어서 녹색조끼 입은 분에게 물어보라고 계속 보냈는데 어느분이 여기는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고 남에게 떠넘기기만 한다고 지나가면서 말해서 죄송했다. 우리가 생각해도 물어보는 게 어려운 것도 아닌데 아무리 가요대전만을 위해 투입된 용병이라도 호텔의 대략적 구조는 알려주고 시작하는 게 좋지 않았나 싶다.


외국분들의 질문을 처리하면서 정말 신기한 경험을 했었는데 K-POP을 좋아해서 그런지 대부분 한국어로 질문을 주셨다. 무엇보다 일본분들의 열정이 대단했던 게 단 한 분을 제외하고 나에게 모두 한국어로 질문하고 또 한 분을 제외하고는 한국어 답변을 듣고 알아들으셨다ㄷㄷ. 나의 경우 일본에서 일본어로 묻고 일본어 답변을 받아 당황했던 적이 있어서(일본어 1도 못함. 그냥 질문 외서 물어봄) 능숙한 한국어로 물어볼 때는 상관없지만 좀 어눌하면 어떻게 답을 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그래도 외국인이라는 편견에 영어로 답변해 주는 것도 아닌 것 같아서 한국어로 천천히 말해줬는데 딱 한 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흡족해면서 돌아갔다.


중국분들도 재밌었는데 발음이 좋은 편은 아닌 분이 질문을 주셔서 영어로 답변을 해드렸는데 이때 내가 물품보관소를 locker라고 콩글리쉬를 사용했다. 그때는 잘못된 걸 모르고 계속 반복해서 대답했는데 그분이 locker?라고 갸우뚱 하시더니 그냥 한국어로 말해달라 했다ㅋㅋㅋㅋ. 그래서 내가 계단 내려가면 바로 보인다고 했더니 '아, 바로 보여요?'하고는 감사하다 하고 가셨다ㅋㅋㅋㅋㅋ. 체계적으로 배우지 않은 언어를 듣고 말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K-POP을 좋아해서 이게 가능해졌다니 새삼 소프트 파워의 영향력을 크게 체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화나는 일도 있었는데 집에 돌아와서 보니 이런 기사가 났길래 화가 나서 인스타 스토리를 올렸다. 중앙에서 통제를 하고 있을 때 중국인 한 분이 번역기를 돌려 보여줬는데 내용이 'SBS 관계자가 표 사는 걸 도와줬는데 어떻게 받아요?'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SBS 관계자가 도와준 게 말이 안 돼서 고민하다 죄송하다고 모르겠다 했는데 주변 친구들과 함께 표정이 금방이라도 울 것 같고 초조해했다. 그 뒤로는 볼 수 없었는데 아무래도 사기를 당한 것 같다. 나도 정치적으로 중국이라는 나라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K-POP, 우리 문화가 좋다고 오는 어린 친구들에게 사기를 치고 돈을 뜯어먹는다는 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고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화가난다. 외국인뿐만 아니라 한국의 많은 어린 친구들도 당하고 잔뜩 기대하고 왔는데 보지도 못하고 돌아갔다는데 SBS 측에서 이런 일은 일벌백계했으면 좋겠다.


5시 10분에 공연이 시작되고 6시가 넘어가면서 한산해졌다. 이때까지 계속 서있었는데 이때 처음으로 앉을 수 있었다ㅠㅠ. 이때부터 9시까지는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어서 오히려 더 심심했다. 내 주변에는 말할 사람도 없어서 바로 앞에 있는 지도를 보거나 핸드폰 슬쩍슬쩍 보면서 시간을 때웠다.


근데 이때 실수하나 한 게 이쪽으로 지나가려는 가족이 있어서 내가 2번이나 막았는데 알고보니 VIP였다. 직원분이 나중에 VIP였다고 자기가 잘 풀었다면서 나에게 뭐라 하지는 않았는데 죄송하긴 한데ㅠㅠ 내가 VIP가 이마에 쓰여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아냐고요ㅠㅠ. 나중에 보니 다른 직원들은 그냥 사람 없으면 융통성 있게 보내곤 하더라. 난 혼낼까봐 안 했는데 그냥 보낼걸. 사실 사람 진짜 안 지나다녀서 이럴 거면 왜 막았는 지 계속 궁금하긴 했다.


어찌저찌 해서 대망의 9시! 난 이해 휴식시간이어서 근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질서를 지켜서 잘 퇴장하고 있었다. 9시 20분에 마지막 근무를 서기위해 돌아갔더니 거의 다 나와서 그때도 할 건 없었다ㅎㅎ. 이렇게 10시에 퇴근!!! 집에 돌아오니 그냥 서있기만 했는데도 배가 미친듯이 고프고 온 몸이 뻐근했는데 일은 9~6시가 마지노선인 것 같다. 13시간은 너무 길어ㅠㅠ


마지막으로 멋진 영상 투척하면서 마무리!! 내가 브런치를 합격했을 때 쓴 글이 취업 안 하겠다는 글이었는데 여러 번의 작은 창업을 말아먹고 어느새 졸업을 기다리며 취준을 하고있다. 내년에는 취업일기를 한번 써봐야겠다. 많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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