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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여자 Jul 14. 2023

엄마가 고숭이 엄마라서 너무 좋다. 행복해.

아이와 손 잡고 하교하는 평범한 일상이 매일 감동이고 고맙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막내는 3주간 적응 기간을 갖은 후 비교적 이른 시간에 하교를 한다.


오늘은 화요일, 2시 하교다.


독서 모임을 마치고 분홍 진달래가 활짝 핀 큰길을 따라 쭉 걷다가 학교 후문 내리막 길로 접어들었다. 흰색으로 곱게 칠한 철문이 활짝 열려 있다. 


곧 저 틈으로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온 아이들이 두리번두리번거리며 가족을 찾겠지.


혹은 함께 놀 친구를 찾거나 다음 목적지를 향해 혼자서도 척척 잘도 걸어가겠지. 






봄비가 내린다. 


다행히 빗방울이 굵지 않은 가랑비다. 


비가 오니 집으로 바로 가자고 하면 놀이터에 들르고 싶은 아이는 분명 아쉬워할 테다. 


지난 비가 왔던 날,


'엄마 놀이터 가고 싶어'


'비 와서 미끄럼틀 다 젖었을 텐데? 바지랑 속옷 다 젖을걸?' 했더니


'엄마 몰랐어? 다람쥐 놀이터 그네는 지붕이 있잖아. 그네를 타면 되지. 미끄럼틀이랑 짚라인 철봉 말고! 엄마 몰랐구나.(깔깔깔깔)'


엄마와의 대화에서 우위를 점한 아이는 승리의 깃발을 흔들며 오르막을 뛰어 올라갔었다. 


언덕을 오르면서 같이 놀 친구가 어디 없나 하이에나처럼 두리번거렸었다. 

 





후문은 가파른 언덕이다. 


신호등이 있는 꼭대기에서 후문 출입구를 향한 내리막에 들어서 몇 발자국 걸었을까.


주황색 당근 가방을 멘 막내가 저 아래 하얀 철문을 갓 빠져나와 내게 손을 흔든다. 


반가운 얼굴이 담뿍 담긴 아이의 얼굴이 고맙다.


한참 떨어져 있는 거리를 다 좁히기도 전에 아이의 큰 목청소리가 들려온다.


"엄마 우리 머리 자르러 갈 거지?"


"아! 맞다! 우리 머리 자르러 가기로 했었지?"


학교 끝나면 바로 머리 자르러 가자고 단단히 일러뒀는데 글쎄 내가 깜빡했다. 


놀이터에 가자고 하면 뭐라고 대답할지 혼자 괜한 머리를 굴렸다. 








내리막 중간쯤에서 만난 아이 손을 잡고 거꾸로 돌아서 이번에는 오르막을 올랐다. 


경사가 끝날쯤 신호등 초록불이 3초 남았다.


"엄마 3 이니깐 지금 건너면 위험할 거야."


아이가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다음 신호등이 놓여 있는 곳까지 길 따라 걸었다. 3초가 남겨진 신호등 앞에서 발길을 돌린 건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싶어서 이유는 묻지 않았다. 아이가 손 잡아 이끄는 방향대로, 발 길을 내는 그 길 따라 조막만 한 손을 꼭 쥐고 나란히 걸었다. 


또렷하게 말하려고 애쓰는 노력이 담긴 낱말들이 공기 중으로 흩뿌려지면서 내 귀에 착 하고 감겼다. 


늦게 터진 말문에 누구보다 답답했을 아이가 세상을 향해 쏟아내는 말들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들을 수가 없다.


콧등이 시큰했다. 눈물 버튼이 작동하려 하자 눈에 힘을 꾹 주고 얼른 허리를 굽혔다.


"엄마 뽀뽀 한 번만 해주라."


"쪽."


고개를 내밀고 기다리는 내게 살짝 입술을 갖다 댄 아이는 얼른 제 할 일을 하고는 마주 선 나를 보고 씩 웃었다.


깊게 파인 보조개가 만개하는 순간이다.


날 닮아 왼쪽 입꼬리 옆으로 보조개가 쏙 들어가는 아이는 다시 한번 '나는 엄마의 사랑둥이'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 


손을 꼭 잡고 신호등을 건너 예약해 둔 헤어숍에 들어가 그새 많이 자라 눈을 가리는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잘라내고 나니 예쁜 눈동자가 훤히 들여다 보여 좀 전 보다 더 똘망똘망해 보인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어디 한 곳 미운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아이와 다시 손을 잡고 아파트 운동기구가 놓인 꽃 밭 주변을 가로질러 집에 들어왔다. 


"어머니 김에 밥을 주실 수 있으십니까?"


얼마 전부터 요구 사항이 생기면 어머니를 정중하게 부르는 듯 말 장난을 친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녹아내릴 것만 같다. 


아이랜드 식탁 위를 본 아이는 


"마침 김이 여기 있군요. 어머니. 밥만 한 그릇 부탁드립니다. 아참 물도 한 잔 필요합니다."


어제 저녁 참치회를 포장했더니 도시락김 10 봉지를 주셨다. 먹고 남은 김 한 봉지가 식탁에 있었다.


김봉지를 뜯으며 넷플릭스로 마틸다를 재생시키고는 행복한 얼굴을 감추지 못하는 아이에게 하얀 밥을 가져다주었다.


늦은 점심을 차려 아이 옆에 꼭 붙어 앉아 함께 밥을 먹기 시작했다. 


마틸다를 보면서 깔깔 거리는 아이는 작은 손으로 밥을 김에 야무지게 싸서 꼭 꼭 잘도 씹어 먹는다. 


고백하고 싶어졌다. 


한 없이 예쁜 내 아이에게 말하고 싶어서 아이 이름을 진심을 담아 불렀다.


"고숭아. 엄마가 고숭이 엄마라서 너무 좋다. 행복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아들에게 


"왜 그런 거 같아?"


물었더니


"내가 귀염둥이라서? (깔깔깔깔)"


하고 나를 슬쩍 올려다본다. 









비 오는 날 창가에 앉아 바깥 풍경을 보며 운치 있는 분위기를 느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내가 혼자 일 때 비 오는 날 느꼈던 행복은 어쩌면 이것이 최대치였는지도 모른다. 


비 오는 날 작지만 누구보다 따뜻한 손으로 내게 온기를 전해주는 이 작은 아이가 노란 장화 신은 두 발로 땅 위에서 폴짝폴짝 뛴다. 장화 바닥이 물에 젖은 바닥과 부딪히며 내는 소리를 재밌다고 깔깔깔 웃는다.


'엄마 탕탕 소리 들려? 너무 좋지 않아?' 하고 내게 묻는데 가슴을 파고드는 이 행복을 어떻게 글로 다 담아 낼 수 있을까 싶다. (그래서 이 글은 어려웠고 오랫동안 작가의 서랍속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통해 얻는 이 행복이 휘발되기 전에 한 문장이라도 남겨 놓고 싶었다. 


곧 둘째가, 첫째가 집으로 온다. 


모든 감각이 막내 아이에게로 향한 이 시간은 늘 짧지만 내 안의 사랑을 흔들어 깨우기에는 더없이 충분하다. 


계획하지 않은 아이를 셋째로 만났을 때 어떤 기분이었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당혹스러웠던 감정을 이젠 제대로 전달할 수가 없다. 


사랑이 너무 짙어서 그때의 감정은 이미 숨어 버린 지 오래다. 


마치 내가 그런 적이 없었다는 듯. 


아이 손잡고 하교하는 이 길이 하루 중 가장 폭신폭신하고 달콤했다.






이 글을 발행하는 오늘은 새찬 장맛비가 쉴새 없이 떨어진다. 


노란 장화와 곰돌이 우산을 쓰고 학교에 간 아이를 오랜만에 마중나가기로 했다. 


'엄마, 오늘은 엄마가 데리러 오면 좋겠어.'


'그럴까? 후문에서 만나자.'


'잘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잘 다녀와. 근데 오늘은 왜 데리러 오라고 하는거야?'


'그냥. 엄마가 좋아서.'



저 아이의 사랑은 무한대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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