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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여자 Apr 21. 2023

멍게가 내게 완벽한 선물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

그의 용기.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다툼의 결과만 또렷하게 남은 그날의 기억을 꺼내보려 한다. 


남편은 다툼이 생기면 비교적 잘 참는 편이다. 


그가 평소 같지 않게 물러서지 않았고 조금 톤을 높여 할 말을 이어나갔다.


뭐가 그렇게 억울하고 분한지 한참 흥분한 나의 태도와 점점 비슷해지는 그를 보았다.


낯설었다.


내가 그에게 못되게 구는 건 사랑하는 여자의 투정이니 그가 당연히 받아줘야 하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나에게 못되게 구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 여겼다. 


참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날 향한 마음이 식어버린 탓에 더 이상 참지 않는구나.'


'이젠 내 화를 투정으로 귀엽게 봐줄 수가 없는 거구나.'


사랑으로 가득하다 못해 넘쳐흐르던 마음에 순식간에 구멍이 뻥 하고 뚫리더니 시린 바람이 가슴속을 후벼 파기 시작했다. 


가슴이 시리다 못해 눈도 코도 시렸고 손, 발, 머리꼭지까지 시렸다. 


다음날 그가 출근하고 아이들과 일상을 보냈다.


평소보다 이르게 아이들 낮잠을 재웠다. 보통의 날보다 더 고단하게만 느껴졌다. 


평온하던 날들엔 아이들 낮잠 시간이 참 달콤했는데 그날은 심장이 쿵쿵 뛰면서 그와 주고받은 이야기만 머릿속에 맴돌 뿐이었다.


어디부터 꼬인 걸까.


퇴근하는 그를 보며 배시시 웃어주는 마음 넓은 아내가 돼주고 싶어서 상황을 더듬어 꼬인 매듭을 찾아갔다.


그럴수록...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했고 사랑하는데... 어쩜 나한테 이래. 나한테 이래도 되는 거야.' 


차올랐다.


서운함, 속상함, 서러움, 그 끝에 미안함... 어떤 단어로 표현해야 그날의 나를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없다. 없는 것 같다. 


세상에 나와 있는 말들로는 마음을 보여 줄 수가 없다.








이성과 감정은 별개의 것으로 움직였다. 


현관을 열고 들어오는 그를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했다.


마음은 아팠지만 아프지 않은 척했고 그를 외면하는 게 불편했지만 고집스럽게도 시선을 피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이들 앞에서는 평온한 척 연기를 했다.


그럼에도 표시가 났을 불편한 내 심기가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이 느껴져 스스로가 한심했다.


눈치 빠른 아이들은 마치 엄마의 상대 배우가 돼주는 건 어렵지 않다는 듯 차분하게 그 불편한 무대에서 종횡무진 혼신의 힘을 다하더니 천사 같은 얼굴로 쪼르륵 누워 잠이 들었다. 


부엌 뒷정리를 하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 눈물에 수많은 것이 혼재되어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사랑을 잃은 상실감이 깊게 파고들며 걷잡을 수 없었다. 꺼이꺼이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화를 내는 그의 마지막 모습만 내게 남았을 뿐. 


퉁퉁 부은 눈으로 자려고 누웠는데 다 치워 놓은 부엌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방문이 스르륵 열리더니 조심스러운 그의 목소리다. 


"잠깐 얘기 좀 할까?......"


"......"


"괜찮으면 나와. 기다릴게."


"......"


또 눈물이 쏟아졌다. 


소매로 바로 닦아내도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눈물은 그대로 베개 한 통을 다 적시고 말았다. 


삼 남매를 두 살 터울로 낳아 키우면서 지칠 대로 지쳐버린 내 육신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나의 미련함 때문이었는지, 발바닥부터 끌어올려 겨우 채워 넣은 에너지 한 통을 아이들에게 전부 쏟아붓고 헛헛해진 마음을 그의 사랑을 쥐어짜 채우고 싶었던 건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한 참을 울다가 용기 내 부엌으로 나가 마주한 그가 앉아 있는 식탁 위에는 주황빛에 붉은 끼가 감돌고 크고 검은 점이 박힌 멍게가 올려져 있었다. 맥주와 함께.


안주도 없이 소주를 털어 넣고 있던 그가 나를 보더니 멋쩍게 웃었다. 


하얀 접시에는 손대지 않은 손질된 멍게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나도 그만 픽 하고 웃어버렸다.


복받쳐 올라온 마음은 다시 두루마리 휴지로 받아내야 했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시린 바람이 그토록 나부끼던 커다란 구멍이 작아지기 시작했다. 


결국 아주 작은 점이 되더니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눈물샘은 내 감정을 숨기는 법이 없다.


표정은 감출 수 있지만 눈물은 감출 수 없는 나라는 사람은 그와 멍게를 아직도 여전히 많이 사랑하고 좋아한다. 


예나 지금이나.







그와 나는 바다 음식을 참 좋아한다. 회는 물론이고 수많은 해산물 중 그 어떤 것 하나 가리지 않는다. 


속초 중앙시장에서 함께 먹던 회, 털게. 대포항 포구 난전에 앉아 먹었던 가리비와 조개구이, 새우튀김.


주문진 수산시장 좌판에서 사 먹었던 오징어회. 시시때때로 즐겨 먹던 건어물까지. 





그와 앉아 비린내 나는 것을 한 입 물고서 바다 향이 혀 끝의 감각을 일깨워 준다고 갓 잡은 생선이 팔딱팔딱 내 몸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고 엄지를 올리곤 했었다. 


좋은 안주에 어울리는 술도 한 잔씩하고 서로를 바라보며 누구보다 행복해하던 우리였다. 


스끼다시로 멍게가 올라오면 나의 행복은 그 끝을 달렸다. 


회만 먹어도 물론 너무 좋지만 멍게까지 더해지면 행복지수가 110프로 완충이었다. 


늘 항상 멍게를 내 앞으로 다 밀어주던 그였다. 


이렇게 맛있는 건 나눠 먹는 거라며 밀어준 접시를 다시 그와 중간 지점으로 돌려놓곤 했지만 기껏해야 한 점, 많아야 두어 점만 먹고 내게 전부 양보했다. 


눈물로 범벅인 내게 그가 멍게로 화해를 구할 줄은 단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은 그림이었다. 


나를 지독하게 잘 아는 사람이 내 남편인 게 미치도록 좋은 순간이었다. 








이 지역으로 이사 오고 단골로 다니는 횟집이 있다. 


물고기 스티로폼 쟁반의 랩을 벗겨낼 때면 하루의 고단함도 한 꺼풀 벗겨지는 기분이 든다. 


36시간 만에 만난 그가 검정 봉지를 달랑거리며 귀가했다. 


보나 마나 광어회다.


냉장고 야식 창고로 바로 들어가야 할 검은 봉지를 그가 주섬주섬 열었다. 


작은 접시 하나를 보여주며 말했다. 


"사장님이 서비스래."


아일랜드 식탁 위에는 갓 손질한 싱싱한 멍게가 놓였다. 

 

"어머! 이걸 왜 주셨지."


비빔밥이 담긴 냉면기를 살짝 치우고 멍게 포장지를 건성으로 찢어 하얀 식탁 위에 올렸다. 


초장 뚜껑도 열지 않은 채 날 것의 그것을 그대로 냅다 입으로 집어넣었다. 


픽 하고 웃어지는 맛이 아니다. 


"어머! 웬일이니? 하하 호호."


박장대소해야 할 맛이다. 


술 없인 안 되겠다 싶어 맥주를 따라 한 모금 마셨다.


입 안 가득 퍼지는 멍게 향이 기분을 끌어올렸다.


호텔 룸 업그레이드로 기분 좋아진 손님 마냥 즐거웠다.


"어떡하면 좋아. 이만이천 원짜리 광어 한 마리 팔고서 이 비싼 멍게를... 너무 맛있다."


"정말 좋으신 분들 같아."


"사장님? 사모님? 누가 이걸 담아 주신거지?"


"사장님이 손질하고 사모님이 담으셨어. 누구의 진심인지는 나도 모르겠네. 사모님이 자기 안부 묻던데?"


"뭐라셔?"


"추여사 못 본 지 너무 오래됐다고."


마음에 따뜻한 온기가 돌았다. 


아이들 재워놓고 그와 바다향으로 향하던 발길.


검은 봉지 한 손에 쥐고 다른 한 손은 내게 내어주던 그의 따뜻한 손길.


그런 우리를 언제나 반겨주시던 사장님 내외의 따뜻한 눈 빛.


다른 동네로 떠나와 홀로 드문 드문 찾아가는 그를 여전히 반기고 그의 아내의 안부를 물으시는 다정함.


멍게가 내게 완벽한 선물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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