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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여자 Apr 19. 2023

친구랑 시골집 한 동네에 살고 싶다.

- 느지막한 나이에 그곳이 어디든.






 커피 내릴 수 있게 준비해 놨고 성당 미사 다녀오다가 하동에서 재첩국 사가지고 돌아올게. 정원에 나가 꽃들을 보렴. 아직 너도 그렇게 예쁘니까.


-공지영 저. '그럼에도 불구하고' -








 아이들이 학교로 떠나고 조용한 식탁에 앉아 홀로 밥을 먹었다. 아이들과 함께 먹으면 오전 시간도 절약되고 밥맛도 더 좋을 텐데 꼭 아이들이 떠난 자리에 앉아 청승을 떨고 있는 것 같은 그런 아침이다.


 20도를 웃도는 날씨에 앞 산의 나무들은 너나 할거 없이 잎을 틔우는데 장관이다. 눈앞에 펼쳐진 싱그러움을 달리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한 채 넋을 놓고 바라보다 이 시기를 지나면서 점점 더 진해질 향기가 코 끝으로 스미는 기분이 들었다. 앞 산을 가득 품에 안은 황홀한 뷰는 언제나 옳다 생각하며 흡족하게 거실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인스턴트커피를 머그잔에 털어 넣고 정수기의 100도 고온수 버튼을 누르자 "끓는 물 가열을 시작합니다. 뜨거우니 조심하세요." 하는 누군지 모를 단정하고 적당한 톤의 듣기 좋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아이들이 밥 먹는 식탁에 앉아 네이버에 날씨를 검색하니 낮기온이 28도다. 위아래를 반팔로 맞추고 바람막이 잠바를 하나 걸치는 게 오후 시간 더위를 피하기 좋을 것 같다고 말했더니 하얀 반바지에 민트색 반팔 카라티를 입은 딸이 머리까지 높이 올려 묶고 배시시 웃는데 너무 산뜻해 보인다.


그래서였을까. 갑자기 머그잔에 털어 넣은 커피가 마시고 싶지 않다.


다시 노트북과 독서대가 올려진 하얀 식탁에 자리를 잡고 오전 시간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고민했다.


집에서 책을 읽을 계획이었지만 장소와 커피 향을 바꾸고 싶어졌다.


조금 더 설레는 마음으로 울림에 귀 기울이고 싶었나 보다.


학교에 잘 다녀오겠다며 배시시 웃던 아이의 산뜻했던 옷차림이 내내 기분이 좋았기에 나도 어디 좋은 색이 없을까 하고 드레스룸을 둘러봐도 검정 버튼이 길게 달린 베이지색 원피스가 가장 무난해 보인다. 적당한 톤의 팩트와 립스틱을 바르고 서둘러 읽고 싶은 책 세 권을 골라 축 늘어지는 니트 가방에 소지품과 함께 담아 집을 나왔다.



'텐퍼센트의 플랫화이트를 마셔볼까.'


어쩐지 기분이 좋다.








동네 커피점이라 이웃을 만났다. 잠깐 인사를 나누고 딱 하나 남은 자리에 앉았더니 그녀와 마주 보는 테이블이다. 혼자 앉아서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려니 뭔지 모를 쑥스러움이 살짝 올라왔다.


자리에 앉아 서로 몇 마디 더 나누고 그녀는 일행에게 나는 책에 집중했다.


이후 들여다본 책 속에서 '하동에서 재첩국 사가지고 돌아올게.'를 발견했다.








살아보니 아파트가 편하다.


허리 숙여 가위질 한 번 하지 않고서도 미용실에서 갓머리를 자르고 나온 밤톨 같은 아이의 두상처럼 늘 건강한 가지와 푸르른 잎 또 그 옆에 피어나는 예쁜 꽃들이 성가시게 얽히거나 특별히 삐져나온 곳 없이 깨끗하게 잘 다듬어진 상태로 우리 집 앞마당을 가득 채운다. 하지만 여럿이 사용해야 하는 한계가 존재한다.


언제나 깨끗한 주자창과 지저분한 것들은 바로 정리되는 쓰레기 분리수거장, 아이들을 위한 놀이방, 헬스장, 독서실, 도서관까지 그야말로 아파트 단지 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다양한 이곳에 살면서 느낀 만족감에서 헤어 나올 수 없을 줄 알았더니 작은 개울이 되었든 간에 조금 떨어진 곳에 물길이 흐르고 나 혼자 사용할 수 있는 마당이 딸린 시골집에서 귀찮고 힘들지만 작은 텃밭을 가꾸고 마당에 펼쳐진 꽃과 잔디를 관리하는 나이 든 나를 상상해 봤다.


이 책을 보면서 처음으로 말이다.


어쩐지 마음이 평온해지고 행복함에 나른해짐을 느꼈다.


정말 시골을 원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깊숙이 파고들기 시작하면서 기차역으로 친구를 데리러 가는 상상을 했다.


'나 지금 출발해. 너네 집으로.'








아침에 커피점으로 향하면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식적인 전화다. 몇 번의 벨이 울렸는데 전화를 받지 않자 아직도 한밤중인가 보다 생각하고 냉큼 끊었다.


전날 늦은 밤 인스타에 올려둔 막내 아이 사진에 좋아요를 눌러준 시간은 친구에게는 꼭두새벽인 오전 8시.


'뭣 때문에 이렇게 일찍?'이라는 생각과 '벌써 일어났다고? 늙더니 너도 잠이 없어지긴 하는구나.' 생각했다.


걸으면서 늘 그렇듯 6번을 눌렀다.


그녀 옆에서 동생 목소리가 들리는데 동생 비슷한 사람이 옆에 있겠거니 했다.


"꼭두새벽부터 일어났더라? 어딘데?"


"나 제주. 바람이 불어서 배가 안 뜬대. 추자도는 못 들어가겠다."


"제주 갔다고? 왜?"


"엊그제 추자 간다고 얘기했었잖아."


"아 맞다. 그게 오늘이야? 여기 날씨 엄청 좋은데 거기 바람 분다고?"


"바람도 바람이지만 희뿌연 안개가 가득이다. 앞이 안 보여."


"그래? 그럼 어쩌려고?"


"추자는 포기. 그냥 동생들이랑 엄마랑 제주에서 시간 보내야지."


제주도라고 하니 그녀의 일정이 궁금하다.


"그래서 지금 어디?"


"제대병원. 엄마 당뇨 수치랑 인슐린 부작용 때문에 의사 좀 만나야 될 거 같아."


"그래. 잘 다녀와. 오후에 뭐하는지 통신바람."


"오케이."


전화를 끊고 봄 볕 햇살이 따뜻한 길을 가로지르며 아무리 햇 볕이 강해도 봄바람을 느끼기에 이만한 날씨가 없다고 생각하는 오전이었다.


며칠 전 저녁, 친정 엄마의 식후 혈당 수치가 300이 넘었다는 오빠의 말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멀리 사면 이렇지. 뭐 하나 함께 해 줄 수가 없으니. 정말 멀기도 하다.'




오래간만에 엄마와 병원에 동행하그간의 미안함과 아픈 엄마를 향한 안쓰러움을 씻어 내려고 노력하는 친구의 얼굴이 스쳤다.


나와 같은 얼굴.








기차 타고 놀러 오는 적당한 거리에 시골집을 마련하고 부지런히 마당을 정리하는 있을지 없을지 모를 즐거운 상상을 다시 해본다.


한두 시간 거리에 사는 친구가  


'기차 탔어. 지금 출발해.' 내게 문자를 보낸다.


좋다. 꿈은 꾸라고 있는 거니깐 계속 꿈꾸는데 낭만이 조금 없기는 하지만 기차보다는 차로 30분쯤의 적당한 거리에 살면서 틈만 나면 우리 집을 제 집처럼 들락 거리는 모습이 어쩐지 우리 둘에겐 더 어울리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역시 더 좋다.









재첩국을 사가지고 먹이고 싶은 친구.


책을 다 읽고 커피점을 나와 아이를 축구 교실에 보내 놓고 불 볕 같은 이상 기온의 날씨에 숨을 헉헉 고르며 오르막을 오르다가 다시 6번을 눌렀다.


"뭐 해? 의사는 뭐래?"


"뭐 그냥... 함덕 간다. 갯바탕에."


답답함을 줄임말로 일축한다. 그 마음 나도 잘 안다.


"뭐 잡게?"


"소라랑 문어 있나 한 번 가보려고."


"먹고 싶다."


"안 그래도 주희가 너 준다고 고사리 삶아서 쓴 물 빼고 있는데 바로 볶아 먹을 수 있게 손질해서 물캇이랑 보내준대. 다희 올라가는 날."


"역시 주희. 너무 먹고 싶어 군침 나와. 오늘 문어도 잡으면 한 마리 넣으라고 하고."


쉬는 날 취미 삼아 산과 바다에서 나물과 해산물을 채취하고 바다 낚시 하면서 제주도를 만끽하는 어린 여동생이 옆에서 뭐라고 계속 재잘거린다.


이모(친구 엄마)는 친구에게 핸드폰을 건네받더니 한참 동안 우리 가족에 대해 안부를 물었다. 올망졸망했던 아이들은 아픈 곳 없이 잘 자라고 있는지와 못 본 지 오래돼서 무척이나 보고 싶다는 이모에게 몸 관리 잘하셔서 건강하시라는 인사를 드렸다.


친구에게 안개 낀 날이니 갯바위에 조심히 다녀오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재첩국을 먹이고 싶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뜻밖에도 내게 제주도 고사리와 물캇을 먹이고 싶어 한다는 친구 여동생의 마음을 전해 들었다.


가는 마음이 친구에게 채 가기도 전에 동생의 마음이 먼저 와버렸다.









친구는 사 남매다.


맏이인 친구 밑으로 여동생이 둘 있고 귀하디 귀한 아들이 막내 동생이다.


친구네 둘째가 우리 아파트 바로 옆 단지로 이사 온 지 이제 반년쯤 돼 가는 것 같다.


가끔 초대받아 가면 솜씨 좋은 여동생 남편은 참돔회를 떠주기도 하고 육사시미를 내놓기도 한다.


스물세 살에 서울로 상경한 친구가 지금의 의정부에 자리를 잡는 동안 나도 서울을 잠시 거쳤지만 결혼을 하면서 강원도에서 나름 크다는 도시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고속버스로 두세 시간의 물리적인 거리를 거의 매일 통화하면서 채웠고 그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때론 느끼곤 했다.


그래서 나이 들면 한 동네에 살면서 자주 얼굴 보고 사는 게 좋겠다며 친구랑 버릇처럼 얘기했는데 둘째 동생네 회사가 우리 지역으로 이전해 오면서 동생이랑 먼저 이웃사촌이 되었다.


꿩 대신 닭이라 했던가.


친구면 어떻고. 친구 동생이면 어떤가.


둘 다 좋다.


어차피 그 둘은 붕어빵처럼 닮았다.


웃으면 그냥 한 날 한 시에 태어난 쌍둥이다.


그 덕분에 한 동네에 살던 동생과 눈물로 작별 인사를 하고 꺼이꺼이 울던 친구는 내가 혼자 이 동네에 살 때 보다 몇 번 더 횟수를 더해 방문한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동생까지 있는데 너도 오라며 부추겨 보지만 현실은 어렵다는 걸 안다. 더 가까워지길 늘 고대하지만 그렇지 못하는 각자의 사정을 핑계로 늘 뒤로 미룬다. 그래서 이렇게 마음이 아련해지는 날은 이유 없이 전화를 걸어 뭐 하냐고 묻는 걸로 대신하곤 한다.










느지막이 쉰이 넘은 어느 날.


마법처럼 한 동네에 집을 사는 그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곳이 어디든.









'82년생 김지영'으로 공지영 작가를 처음 만났다. 책장에 꽂혀있는 책 기둥을 보면서 작가의 다른 책도 읽어 보고 싶었는데 아이들 학교 도서관 봉사활동을 갔다가 학부모 코너에 있는 이 책을 발견했다. 사실 제목이 너무나 끌려서 꺼냈는데 저자가 공지영이다. 표지도 예쁘다.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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