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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세시 칼리 Oct 14. 2023

한 평 남짓 공간이 주는 행복

home in home


두 달째 텐트 안에서 생활하고 있다. 물론 두 달간 야외 캠핑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다.

집 안에서의 텐트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몇 달 전 내가 하고 있는 독서 지도 수업 책 중에 <맛있는 캠핑>이라는 책이 있었다.

여름방학 동안 읽게 된 책이고, 아이가 함께 읽어도 좋을 것 같아 함께 읽다가 우리 집에 방치되어 있던 원터치 텐트 생각이 났다. 구입하고 몇 번 써보지 않고 방치되어 있는 텐트다.






몇 년 전, 집 근처 공원에 갈 때 우리는 늘 돗자리를 들고 다녔다. 텐트 설치가 되는 공원이었기에 곳곳에 텐트가 쳐져 있었다. 우리 돗자리 옆으로 그늘막 텐트와 돗자리를 널찍하게 설치해 놓고 텐트와 돗자리를 넘나들며 여유롭게 누워있기도 하고, 싸 온 음식들을 쫙 펼쳐 놓고 먹는 모습을 보면 왠지 좀 부럽기도 했다.


마치 그곳에서의 돗자리와 텐트는 내가 가진 집 크기인 것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나도 공원 속 편안하고 넓은 내 집이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있어서 돗자리에서의 휴식과 텐트 속의 휴식은 남의 시선을 어느 정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지, 잠시라도 얼마나 프라이빗한 생활을 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척도가 되기도 했다.


물론 신발은 돗자리 밖 한편에 벗어놓고 잠시 돗자리 위에 누워 있을 순 있다. 그런데 벌러덩 편하게 누워있기는 좀 민망하다. 사람들이 내 돗자리를 지나쳐 활보하는 곳에서 그러고 있기란 쉽지 않다.

앉아서 간단히 음식을 꺼내먹을 수도 있고, 돗자리 위에 앉아 쉴 수는 있지만 텐트 속의 자유를 누리기엔 부족함이 없지 않아 있었다.


물론 남의 시선을 많이 신경 쓰지 않는 분들은 돗자리 위에서도 자유롭게 대(大) 자로 뻗어 주무시기도 하지만 나는 그 정도 경지에 오르진 못했었기에, 화장한 봄, 가을에 공원에 갈 때마다 “우리도 저런 작은 텐트 하나 살까?.” 라며 남편의 의중을 떠 보기도 했다.

쓸데없는 걸 사기 싫어하는 남편은 “우리가 얼마나 공원에 온다고, 에이 됐어. 돗자리면 충분해.”라고 했다.

나는 또 금방 남편의 말에 수긍했다. ‘그래, 우리가 주말에 얼마나 자주 공원에 간다고, 괜히 짐만 되지.

사지 말자.’


그렇게 얼마 동안의 시간이 흐르고, 집 근처 공원에 자주 가게 되면서 결국 우리는 내 요구로 2-3인용 작은 원터치 텐트를 구입하게 되었다.

말 그대로 원터치.

접혀있던 텐트에서 손을 놓고 탁하고 던지면, 짠! 하고 텐트 모양이 잡히면서 펴진다. 번거로움이 전혀 없었다. 이렇게 편리한 제품을 누가 만들었는지, 세상엔 참 대단한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했다.



난 또 그 텐트 하나를 장만하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텐트 안에서 편하게 누워 있을 수도 있고, 편한 자세로 책을 읽을 수도 있었다. 지퍼로 된 문만 닫아 놓는 다면 내가 안에서 뭘 하든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으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텐트는 양쪽에 작은 창처럼 밖을 볼 수 있도록 지퍼로 여닫을 수 있는 창이 뚫려 있고, 모기나 벌레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방충망 역할을 하는 촘촘한 그물망이 달려 있다. 물론 그 그물망을 한 겹 더 덮고 지퍼를 닫으면, 다시 텐트 창이 닫히고 프라이빗한 공간이 되기도 했다.

이래서 커플들이 텐트 안에서 애정행각을 많이 하나보다 싶었다.

물론 나에겐 은밀한 공간이 되진 않았지만, 내가 미혼이었다면? 어쩌면...






나는 겉 문은 열어둔 채 그물망만 쳐놓고 바깥 풍경을 보는 게 좋았다.

푸릇푸릇하고 싱그러운 나무들을 보는 것도, 내 몸에 있는 세포들을 하나씩 깨우는 느낌이 들게 조용히 피부를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을 맞는 것, 새소리를 듣는 거도 좋았다.


벤치에 앉아 비둘기들에게 먹이를 던져주시는 어르신들을 멍하니 보고 있는 것도 좋았고,

그러다 푸드덕 날아오르는 비둘기에 몸서리치며 달아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좋았다.


그렇게 잠시 우리는 텐트 속의 즐거움을 알아갔다. 그런 즐거움도 잠시 우리는 지역을 옮겨 이사를 가게 되었다. 이사 온 곳에서는 텐트를 칠 만한 집 근처 공원을 찾지 못해서, 그 원터치 텐트는 몇 년째 베란다 수납장 안에 방치되어 있었다.


그 텐트가 드디어 올해 여름.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이다.

<맛있는 캠핑> 책을 보게 되면서 말이다. <맛있는 캠핑>은 아빠와 아들이 산속에서 캠핑을 하며 서로를 깊이 알아가고, 돌아가신 엄마의 그리움을 달래는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그 책을 읽으니 캠핑이 가고 싶어 졌고, 아이와 집안에서라도 캠핑의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당장 갈 수 없으니 집에서 캠핑 느낌 나게 텐트라도 쳐보자는 생각에 원터치 텐트를 꺼내 거실에 펼쳐두었다. 밖에서 몇 번 사용하지도 않았지만, 워낙 깔끔한 성격의 소유자인 남편은 늘 밖에서 텐트를 칠 때도 텐트를 바닥에 바로 깔지 않고, 늘 돗자리 위에 펼쳤었고, 집에 와서는 꼼꼼히 닦고, 털고 텐트 커버에 이중으로 담아 넣어 두었기에 이미 깨끗한 텐트지만 실내에서 사용할 거라 한 번 더 잘 닦아주었다.


펼쳐진 텐트 안에 작은 캠핑용 테이블, 등받이 의자도 꺼내고, 예쁜 알전구도 달았더니, 캠핑 느낌이 물씬 났다. 아이와 나는 그 안에서 책을 읽기도 하고, 눕기도, 앉기도 하며 방학을 보냈다. 텐트를 접어서 다시 텐트 커버 안에 넣어야 하는데 좀 귀찮기도 하고 무엇보다 텐트 생활이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그 텐트는 거실에서 안방으로 옮겨졌다. 이제 텐트 안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가을이 되니 방바닥도 좀 차가운 듯하여 바닥 매트를 깔고, 그 위에 텐트를 펼치고

텐트 안에는 텐트용 깔개를 깔고 그 위에 다시 얇은 요를 깔았다.


2-3인용이지만 몸부림치며 자는 아이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에 아이와 나는 텐트에서, 남편은 텐트 옆 침대에서 자기를 벌써 2달째다.

텐트 생활에 익숙해졌다. 집안에 작지만 아늑하고 따뜻한 또 하나의 공간이 생겼다.  

home in home 느낌.

겨울에 일부러 난방텐트도 산다던데, 이참에 겨울까지 지내도 좋겠다 싶어 아직도 텐트는 접지 않고 그대로 있다.





토요일 아침. 나는 여느 때와 같이 일찍 일어났지만, 아이는 아직도 꿈나라다.

매일 보는 아이지만, 이 순간 아이가 너무 보고 싶어, 텐트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아늑한 텐트 안을 천천히 둘러보고, 아이의 숨과 나의 숨이 남아 있는 텐트 속 공기와 아이의 숨소리를 느낀다.

살포시 아이 손을 잡아 본다. 따뜻함이 전해온다.

갑자기 뭉클할 정도로 감동적인 건 왜인지.

1평 남짓한 이 공간에서 나는 새삼 또 행복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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