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창승 Apr 25. 2023

살짝 어두운 토막글

 평범한 우리가 지니고 있는 것은 ‘장점’이지 ‘재능’이 아니다. 굳이 우리가 재능을 가졌다고 표현한다면, 그 재능은 소위 ‘애매한’ 재능이다. 애매한 재능을 가진 일반인들은 끝내 그 재능을 살린 직업을 갖지 못하거나, 그런 직업을 가지더라도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다.


 애매한 재능은 그저 소소한 장점으로서 이따금 미미하게 꿈틀거릴 뿐, 우리는 그것을 외면하거나 쥐어짜면서, 평범한 인간 A 혹은 B가 되어 살아간다. 삶은 다 그런 것이라고 되뇌면서 평범함에 대한 예찬을 터뜨릴 수도 있겠지만, 실은 이런 삶은 참으로 비참하다.


 꽃을 피우지 못하는 풀로 살다가 죽는 것은 얼마나 안타깝고도 흔한 사태인가. 풀의 초록이 진하고 싱그럽다며 자족하는 웃음의 이면엔 만개하지 못한다는 울음과 좌절의 과거가 앉아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탁월한 재능을 펼치는 예술가에게 찬양을 보내는 관객들의 마음 한구석엔 감히 질투조차 품지 못하는 열등감이 자리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감동과 감탄을 주는 것은 다수의 꿈이자 소수의 현실이다.


 ‘이게 내 팔자지, 뭐.’라는 한심한 자기 진단은 사실 그 어떤 격언들보다도 옳다. 늘 분노하고 감내하며 보람 없이 쳇바퀴를 굴리는 이들에게, 여태 빛나지 않았던 재능을 발견하여 마침내 크게 발휘하게 될 내일은 끝내 오지 않는다. 이들에게 인생이란 그저 욕지거리 내뱉으며 버티고 견디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축복을 받지 못한 것일 뿐, 그렇다고 하여 저주를 받은 것까진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축복받은 이들의 요란한 광명 아래에서 이름 없는 개미로 살며 느끼는 수많은 부정적 감정들은 결국 우리가 자기 자신을 저주하고 탓하게 만든다.


 이러한 우리의 삶에 과연 진정한 탈출구가 있는가. 죽음을 제외하고는 없다. 우리는 무채색 인생 속의 어느 ‘순간’ 혹은 어느 ‘부분’에 행복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부여하고, 그 자그마한 것들을 붙잡은 채 살아간다. 이것은 삶의 지독한 우울을 애써 잊기 위해 부리는 일종의 기교이자,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발버둥이다.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하는 순간, 회색 인간은 어둠에 가슴팍이 짓눌려 질식의 공포를 느끼게 된다. 이것은 영영 빛날 수 없는 자가 그 진실을 보려 할 때마다 폭발하듯 피어오르는 감정이다. 이토록 삶이란 비극적인 것임에도, 우리는 최악까진 아니라고 자위하며, 종종 미소까지 지으면서, 그렇게 또 하루를 살아낸다. 이 처량하고도 놀라운 적응력과 인내력이야말로 평범한 이들이 가진 최고의 재능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이전글 어떤 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