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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by 문창승

북쪽 그림자 속에 웅크려

저기 햇빛 쥐고 춤추는 꽃길을 바라보니

퍽 황홀하였다


두 발목은 음사한 악령에게 잡힌 지 오래라

그저 야윈 팔을 뻗고 뻗고 뻗고 뻗었다


며칠을 지새워 발악을 하다 보면

손톱보다 작은 꽃잎이 하나, 하나, 하나씩

노래처럼 가벼이 날아와 툭

손안에 앉는 것이었다


그 작디작은 환희에 눈멀어

더한층 거세게 악쓰곤 하였는데


더 이상,

어느 날엔가 더 이상,

아무런 봄도 날아들지 않았다


멀리서 저렇게 꺄르르

어울려 노는 꽃들 수만 송이이건만

이제는 단 하나도, 그 하나의 절반의 절반만큼도

내게로 와 내려앉지 않았다


재밌다며 킬킬대는 악령을 외면한 채

나는 기어이 한쪽 팔을 뜯어낸다

닿지 않는다면 이렇게라도

피가 솟구쳐도 이렇게라도


뜯어낸 왼팔을 오른손으로 잡고

길게, 더욱 기일-게 팔을 뻗는다


이러면 닿겠지

다시금 오겠지

가여운 나를 보아주겠지

내가 기쁨에 겨워 울게, 그렇게 한껏 웃게 해 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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