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흩어진다
나를 감싸고 있던 세계가
웃음과 시간의 방울들이
버티다 끝내 멀어져 간다
오랜만의 선명한 풍경이란
낯설도록 화려한 듯싶다가도
실은 삭막한 공기를 지녔다
불안한 시선으로 나를 훑어보니
옷가지는 오랜 물기에 젖어있고
양 볼은 울음에 덮여있다
그러다 돌부리에 툭,
걸리고서야 남자는 깨닫는다
자신이 뒷걸음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고개를 드니 저 앞엔 여전히
보드랍고 포근한 안개 덩어리가
차분히 앉은 채 흩어지지 않고
떨리는 손으로 자각의 눈물을 닦는 남자
사실은 내가
결국엔 내가
기어이 내가
흩어지고 멀어지는 것이다
고맙고 깊은 품으로부터
스스로 떠나는 걸음이기에
아픔은 더 가혹히 목을 조른다
나를 벌하는 나의 손으로 꾸욱,
이렇게 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