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호흡, 그 네 번째
며칠 전 친구 D와 서촌을 거닐다 꽃이 만발한 건물 앞에서 멈춰 섰다. 1층에는 카페를, 2층에는 작은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 곳이었는데 입구 앞에 눈이 갈 수밖에 없는 색색깔의 꽃들이 즐비해 있었다. 사진을 몇 장 찍고, 마스크를 뚫고 들어온 선연한 꽃향기의 주인공에게 얼굴을 가까이하며 D가 말했다. 이런 향은 향수로 만들지도 못할 것 같다고.
늘 꽃을 꺾어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니 우리는 향수를 뿌린다. 다양한 가격대와 브랜드, 병 모양과 각기 다른 탑-미들-베이스 노트까지. 인간이 만들어낸 수많은 향들이 서촌에서 마주한 이름 모를 꽃에 비할 수 없음을 깨닫는 내가, 바로 자연 앞에 선 인간의 모습이었다. 꽤나 강렬했던 그 꽃향기가 지금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언젠가 같은 향을 맡게 된다면 서촌을 걸었던 7월의 화요일이 생생하게 떠오를 것이 분명하다. 가끔은 사진보다 향이 어떤 순간을 더 잘 기억하게 한다.
' 어, 이거 어디서 맡았던 향인데. '
' 그때 그 사람이 뿌리던 향수구나. '
잠깐 스치더라도 지체 없이 머릿속을 파고들어 과거의 기억 사이사이를 헤엄친다. 향, 냄새, 내음. 후각을 건드리는 모든 단어들은 때론 다른 감각들보다 빠르고 힘차게 나를 깨운다.
이름은 잘 몰라도 어디서든 단번에 알아챌 수 있는 향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한때 가장 가깝던 사람의 향'이었다. 또 하나는 '동경하던 사람이 자주 뿌리던 향'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아끼던 사람의 섬유유연제 향'이었다. 그 향들은 아직 당시의 시간에 머물러있다. 좋아서 웃음 짓던 어린 내 감정이 듬뿍 담겨있다. 모두가 알고 있는 향수 이름보다 어쩌면 조금 더 멋지지 않은가. 가끔 길을 걷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이름 붙인 향들을 우연히 만나면 근원지를 찾아 고개를 돌리다 잠시 동안 생각에 잠기곤 한다.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 그리운 냄새들이 있다. 유치원 때부터 초등학교 내내 살았던 집에는 짐을 올려놓는 용도의 작은 다락방이 있었다. 문다운 문도 없이 그저 벽에 있는 손잡이를 잡아당기면 성인은 허리를 한참 숙이고 올라가야 하는 판자 계단이 나왔다. 어린 나에게 그 문은 왠지 판타지 세계로 나아가는 입구처럼 느껴졌고, 웅크려 앉아있는 게 전부인 다락방이 나만의 아지트가 되었다. 손을 뻗어 스위치를 누르기 전에는 깜깜한 암흑 같던 그곳에서는, 먼지와 밀폐된 눅눅함이 섞여 오묘한 냄새가 났다. 여전히 떠올리면 코끝에 감도는 아늑함의 냄새는 내 어린 시절의 향을 가져다준다.
지나온 여름들을 안겨주는 풀내음이 있다. 같은 듯 다른 여름의 풀내음은 좋은 기억만 가득한 들숨과 같다. 여름이면 늘 비슷한 단체 티셔츠를 맞춰 입고 출발하던 각종 수련회와 왠지 다 큰 것처럼 느껴지던 열여덟 살 수학여행이 떠오른다. 먹고 자고 숨 쉬던 서울을 떠나, 아침이면 닭이 우는 곳에서 잠이 덜 깬 얼굴로 창문을 열고 숨을 들이마시면 찬 공기가 폐로 들어왔다. 둘째 날 밤 캠프 파이어가 끝나고 친구들과 재잘거리며 걷던 시골길 풀내음과 배경음악처럼 깔리던 귀뚜라미 소리를 기억한다.
그런 의미에서 향은 향수(鄕愁)를 불러일으킨다. 단지 고향에만 국한되기보다 장소, 사람, 내 감정과 시간에 대한 총체적 그리움이 코를 통해 마음으로 들어온다. 투명한 향수병에 사랑스러운 과거의 기억을 담아두었다가 병 입구를 조금 연 것처럼, 서서히 그리고 천천히 퍼지는 향수(鄕愁)는 때론 기분 나쁘지 않은 울적함을 만든다.
값비싸고 마음에 쏙 드는 향수라도 그리운 향에 견줄 수는 없다.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향이 감정을 울렁이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다가온다. 그리움이 향수로 만들어진다면 아마 모든 사람들에게 전부 다른 향을 낼 것이라는 것도.
아무래도 향수의 향은 시골 향(鄕)이 아니라 향기 향(香) 일지도 모르겠다.
2021. 7.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