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이모의 힐링 북클럽, 명상 북클럽에서는 시작 전과 후에 명상을 진행하고 있다. 시작 전에는 호흡명상, 마치면서 진행하는 '하루 마무리 명상'은 가이드 명상으로, 오늘 하루 어떻게 보냈는지 찬찬히 하루를 돌아보도록 한다. 목소리를 따라 명상의 흐름을 타고 가다 보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있다. 각자의 이름을 불러드릴 때.
자, 이제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이렇게 속삭여봅니다.
사과야, 오늘 하루 잘 살았어. 고생 많았어.
성희야, 오늘 하루 잘 살았어. 고생 많았어.
성진아, 정은아, 명훈아, 은경아, 홍신아, 수연아...
오늘 하루 잘 살았어. 고생 많았어.
한 명씩 이름을 부르고 오늘 하루 잘 살았다고, 고생 많으셨다고 말해준다. 명상을 마치고 소감 나눔을 할 때, 늘 이름을 불러주는 부분에서 눈물이 난다고, 설렌다고, 뭉클하고 울컥한다고 마음을 돌려주신다. 나이가 들어도, 어른이 되어도, 회사에서 팀장이고, 박사님이고, 손녀가 있어도, 누군가 내 이름을 따스하게 불러주는 말소리에 힘을 내서 나아가는 사랑의 존재들.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말로 하는 포옹이구나, 사랑이구나 알아진다.
이름을 불러주는 행위는 따스한 '사랑'이기도 하지만 상대를 한 존재로 바라보는 '존중'이기도 하다. 권여선 작가의 단편소설 <실바람 천만사>에는 엄마와 딸의 1박 2일 여행 이야기가 펼쳐진다. 떨어져 사는 두 사람은 오랜만에 모녀 여행을 계획하는데, 딸은 엄마에게 여행하는 동안 꼭 지켰으면 하는 약속이 있다고 말한다. 그중 하나가 서로 엄마, 누구야,라고 부르지 않고 --씨,라고 부르기. 엄마의 이름은 반희였다. 딸은 엄마에게 반희씨,라고 부르고 엄마는 딸에게 채운씨,라고 부른다. 그러다 딸이 이렇게 말한다. "우리 있잖아. 그냥 아빠랑 오빠도 다 누구 씨라고 부를까? 병석씨. 명운씨 이렇게." 그러자 반희씨가 말한다. "그러자. 그래야 내가 흥분해도 감정의 거리가 생길 것 같네. 세상 모든 사람에게 공평해지는 게 좋지."
이름을 부르며 공평하게 존재로 만나는 것. 가족이기 때문에.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그가 해내야 하는 역할에 눈 가려져서, 사는 동안 엉켜있는 여러 감정들 때문에 나는 그를, 그녀를, 한 존재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음이 알아진다. 내가 좋아하는 장항준 감독이 방송에서 아내인 김은희 작가를 부를 때, 꼭 이름을 부르는 게 참 예뻐 보였다. '은희야, 은희야'. 저들의 사랑은 이름 불러주기 구나. 그래서 그들은 가족이지만 한 존재로써 서로를 존중하고, 인간적으로 서로를 좋아할 수 있는 거구나.
언니는 일 잘하고 꼼꼼한 박과장님을 떠올렸다. 오빠는 조용하고 속정이 깊은 연구소에 최팀장님을 떠올렸다.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선배의 어머님을 떠올렸다. 아빠는 인상 좋고 유쾌한 전무님을 떠올렸다. 각각에 어여쁜 형용사를 붙여서 이름 불러본다.
꼼꼼한 지원씨
속정 깊은 정현씨
넉넉한 인자씨
유쾌한 종훈씨
갑자기 두 손을 모으며 공손해진다. 다들 바깥에 나가면 ~씨라고 공손하게 정중하게 대접받을 사람들. 내가 귀찮아하며 전화를 끊고 건성으로 흘려듣고 당연시 대해서는 안 되는 이름들. 공평하게 대접받아야 할 사람들. 존재들. 사랑 그 자체의 존재들.
사랑한다,라고 말하기 부끄러울 때 이름을 불러야지. 고맙다고 말하기 쑥스러울 때, 이름을 불러야지.
사랑하는 인자씨-라고 불러야지. 고마운 종훈씨-라고 불러야지. 그렇게 말로 포옹해 줘야지. 사랑을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