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고요한 허공에서 쨍그랑~ 그릇 깨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들고 있던 유자청 소스 그릇이 처참하게 깨졌다. 내가 그랬다. 맙소사. 그릇을 깨다니. 조심성 있는 편인데.. 몇 년에 한 번도 안 깨는 그릇을 남의 집에 와서 깨다니. 게스트하우스 그릇이었다. 변상하겠다고 말씀드리고 마음이 무거웠었다. 컨디션이 별로라 기운이 없었지만 그 정도로 기운이 없었나. 약간 자책하는 마음. 그 이후로 그릇을 옮길 때면 조심 조심하게 된다. 오늘은 커피를 마시다가 일부러 부은 것처럼 꽤 많이 흘렸다. 다행히 테이블 위에만 쏟아져서 물티슈로 닦고 휴지로 또 닦고 나름 부산을 떨었다. 로션을 바르고 컵 손잡이를 잡았더니 미끄러진 것이다. 칠칠치 못하게 이게 뭐람. 커피를 마시며 최근 엄마가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나이 드니까 자꾸 실수하고 뭘 깜박하고 흘리고 그래서 자신감이 없어져.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내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하는데 마음이 그렇더라. 매사에 자신이 없어지네."
속상하시겠다, 하는 마음이 먼저 들었지만 엉뚱하게 이렇게 말했다. "자신 없다고 말하면 자꾸 자신감이 떨어지는 거야. 나는 자신 있다. 나는 뭐든 자신 있다. 이렇게 말해야 자신감이 생기지. 말이 얼마나 중요한데 그런 말 자꾸 하지 마." 하나도 따뜻하지 않게 말했다. 약간 다그치듯이 말했다. 화가 난 것도 같다. 아니 화가 났다. 전화를 끊고 눈물이 났다. 아니, 무슨 상담한다는 사람이 엄마한테 공감도 못해주고 괜히 심술만 내고... 약간 좌절감도 느껴졌다. 왜 화가 나지. 아 왜 짜증이 나지.. 화와 짜증을 추방시키지 않고 그대로 같이 있어주면서 느껴보았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내가 속상하고 무서웠구나, 엄마가 아플까 봐 겁났구나... 어른들은 무서우면 어린아이가 되는가 보다. 무서워도 무섭다고 말 못 하는 어린 어른은 괜히 화를 낸다. 그럴 때 멈추고 알아채주기. 아 내가 무섭구나... 화나도 괜찮아. 지금 화나는 이대로 있어도 돼. 조금 지나면 흘러가. 그러니 잠시 화난 채로 있어도 괜찮아.
내가 무서워서 그랬구나... 그 마음을 알아주니 마음이 그래, 그거야 그거였어..라고 말하는 듯 감정이 스르륵 옅어진다.
자신이 없는데 자신감을 가지라니 도대체 무슨 말을 한 건지. "그러실 수 있지요. 자신 없는 그 모습 그대로도 괜찮아요. 잘 안아주세요. 나이 들수록 실수가 생기는 건 당연한 거예요. 그럴수록 더 자기 자신을 허용하고 사랑해주세요."라고 말했을 텐데. 따스하게 말로 포옹해 드렸을 텐데. 내담자였다면.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퉁명스럽게 구는 나란 사람. 나는 아직 멀었구나... 라는 생각에 약간 울적해진다.
이런 버튼을 하나 만들어주면 안 될까요. 괜히 밖에 나가서 사람들 공감하고 돌아다니지 말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나의 공감이 필요할 때, 버튼 하나 딱 누르면 공감력 폭발하는 버튼. 엄마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