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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이모 Jan 17. 2024

당신의 오늘 하루를 분석했습니다.



이유리 소설가의 짧은 소설 <기쁨 목걸이>는 한 편의 동화 같다. 동화가 자주 그렇듯 이 소설에도 엉뚱하지만 사랑스러운 기계가 나온다. '기쁨 목걸이'는 하루 동안 기쁜 순간을 머릿속에 재생시켜 주는 기계다. '착용자의 도파민 분비를 체크해 분비가 늘어나는 순간, 즉 기쁨을 느끼는 순간을 사진 찍듯 캡처해서 원할 때 머릿속에다 역재생해 주는 것.' 세상 무료하고 즐거울 것 하나 없는 날을 살아가던 주인공은 친구에게 '기쁨 목걸이'를 선물 받는다. 똑같은 하루. 똑같은 회사 생활. 똑같은 출퇴근. 과연 그녀에게 기쁨이 있었을까? 


"당신의 오늘 하루를 분석했습니다. 즐거운 순간이 [12번] 있었습니다." 


퇴근 후, 목걸이를 돌려봤을 12번이나 되는 기쁨의 순간이 재생된다. 아침에 커피 모금. 점심식사 후 산책 중 동료 이야기를 듣고 실컷 웃었던 순간. 회의시간 옆자리 직원과 몰래 대표님 흉보았던 쫄깃한 순간.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을 바라보며 떠올랐던 어린 시절. 꽃집 옆을 지나다 향이 좋은 꽃다발...

로또 당첨 같은 기쁨과는 비교도 안되지만 그녀 삶의 곳곳에 작고 소소한 기쁨이 '여깄어요.' 재잘거리고 있었다. 그 작은 것들을 놓치지 않는 것이 오늘 하루, 우리의 작은 의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하루하루가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유리병에 소소한 '기쁨'을 채워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어떨까. 크고 작은 기쁨을 잘 '보존'하고 싶을 때, 얼른 유리병에 담아두는 거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두었다가 여간해서 기쁨이 안 보이는 날은 얼른 나를 '기쁨의 유리병'에 담가버리는 거다. 그러면 오이 절여지듯이 서서히 은은하게 기쁨이 배어들겠지. 그러다 기쁨에 취해버리면 어쩌나. 어쩌긴 뭐 어째. 동그르르 굴러다니며, 은근히 백허그하면서 사람들에게 기쁨을 묻혀줘야지. 생각만 해도 흐뭇하다. :)


이 유리병을 당신에게 선물할 수 있어도 좋겠다! 지금 조금 슬픈 당신에게, '취급주의' 딱지를 붙여서 오래 잘 숙성시킨 '기쁨의 유리병'을 택배로 보낸다. 오늘은 집 앞에 택배 상자를 꼼꼼히 살펴보자. 잘 도착했는가? 오늘 하루 고단하고 지친 당신이, 종일 기쁨 쪽으로 한 번도 몸을 돌릴 여유가 없었던 당신이, 조금 덜 슬프고 덜 외롭고 덜 아플 수만 있다면. 아주 잠깐 미소 지을 수만 있다면. 


당신에게 아주 작은 기쁨의 송이가 될 수 있다면. 

오늘 하루 중 가장 '기쁜 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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