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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성영 변호사 Mar 14. 2024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에 관한 법적 고찰>

최근 정부가 단행하고 있는 의료개혁 정책에 대해서는 여러 측면에서 할 말이 많지만, 각설하고 본 글에서는 철저하게 법적인 관점에서만 말해보고자 한다.

현 사태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가 환자를 포함한 국민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고, 두 번째 피해자는 전공의라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그것이 자초위난인지 타초위난인지의 여부는 별론으로 한다 하더라도).

그런데 정부를 상대로 한 전공의들의 지금까지의 (법적) 대응은 마치 프로 바둑 기사 9단을 상대로 동네 아마추어가 대국을 펼치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동네 아마추어가 프로 바둑 기사 9단을 상대로 대등한 대국을 펼치기 위해서는 신진서 9단이나 이세돌 9단과 같은 전문가의 조력이 필수적이라 할 것인데, 미래를 생각하는 의사들의 모임의 자문변호인단인 '아미쿠스 메디쿠스'가 지금까지 여러 경로로 밝힌 대응 법리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 정치함이나 깊이의 측면에서 아쉬움이 크고, 심지어 변호사 내부 커뮤니티에서 조차도 많은 비판이 나오고 있다.

그 밖에 여타 많은 변호사들이 블로그 등을 통해 정리한 내용도 거의 대부분 읽어보았는데, 최근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전공의들의 사직서 제출에 따른 사직의 효과가 언제 발생하는지'에 대해서 제대로 법적으로 고찰하고 정리한 글은 단 하나도 보지 못하였다.

이하에서는 '전공의들의 사직서 제출에 따른 사직의 효과가 발생하는지? 만일 발생한다면 언제 발생하는지?'에 대해서 법적으로 고찰해보고자 한다.

아미쿠스 메디쿠스를 포함한 대다수의 변호사들이 밝히고 있는 견해는, 민법 제660조에 의해 사직서가 도달한 날로부터 1월 또는 당기후의 1기를 경과함으로써 고용계약 해지의 효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위 견해에 대하여 금일 정부는 반박 보도자료를 내고, 민법 제660조는 기간의 약정이 "없는" 고용계약인 경우에 적용이 되는 조문으로, 전공의들은 기간의 약정이 "있는" 고용계약을 체결한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에 민법 제660조가 적용되지 않고 따라서 사직서 제출 후 1월이 경과한다 하더라도 자동으로 사직 처리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누가 맞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위 첫번째 견해는 틀렸고, 정부가 밝힌 두 번째 견해는 기본적으로 맞는 견해인데 다만 경우에 따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이처럼 법률가 출신이 행정부 수반으로 있는 현 정부는 철저한 법리 검토를 거쳐서 대응을 하고 있는 반면, 전공의들과 의사 집단은 격앙된 나머지 감정적 대응에 치우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고, 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수준만큼의 정치한 법적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위 반박 보도자료에서 밝혔듯이, 전공의들은 각 병원과의 사이에 기간의 약정이 없는 고용계약을 한 것이 아니라 4년 등 일정한 기간을 정한 다년 계약을 하였기 때문에 민법 제660조가 적용되지 않는다(바로 이 지점에서 정부의 위 견해는 옳다).

그렇다면, 전공의들은 계약 기간 동안 고용계약 해지를 하지 못하는 것인가? 4년 계약을 한 경우, 전공의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도중에 사직을 하지 못하고, 사직서를 제출한 경우라 하더라도 위 4년의 기간이 경과하기 전까지는 사직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 것인가?(바로 이 지점이 정부가 침묵하고 있는 지점이다)

그렇지 않다. 기간의 약정이 있는 경우에도 고용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단 '부득이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 민법 제661조가 규정하고 있다.

즉, 전공의들의 경우에는 민법 제661조가 적용된다 할 것인데, 민법 제661조 본문은 "고용기간의 약정이 있는 경우에도 부득이한 사유있는 때에는 각 당사자는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다년 계약을 체결한 전공의도 '부득이한 사유'가 있다면 계약 기간 도중이라도 사직서 제출과 같은 단독행위로 고용계약을 해지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사직의 효력은 민법 제660조의 경우와 달리 사직서 도달 즉시 발생된다(정부는 반드시 병원의 사직서 '수리'행위가 있어야 한다는 듯한 뉘앙스를 계속하여 풍기고 있으나, 그렇지 않다. 고용계약 내지 근로계약의 해지는 일방적 해지와 합의에 의한 해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정부가 말하는 '수리'는 위 합의에 의한 해지의 경우에 있어서 일방 당사자의 고용계약 해지의 청약에 대한 타방 당사자의 승낙을 말하는 것으로, 작금에 문제되고 있는 전공의들의 일방적 해지에 있어서 타방 당사자의 '수리'는 필요치 않으며, 다만 사직 효과의 발생 여부 및 그 발생 시기만이 문제가 될 뿐인데, 민법 제660조는 사직서 제출 후 1월 후에 그 효과가 발생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고, 민법 제661조의 경우에는 그 요건을 충족한 경우 사직서 도달 즉시 사직의 효력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부득이한 사유'이다. 과연 전공의에게 '부득이한 사유'가 있다고 볼 수 있는가?

이와 관련하여 대법원은 "민법 제661조 소정의 부득이한 사유라 함은 고용계약을 계속하여 존속시켜 그 이행을 강제하는 것이 사회통념상 불가능한 경우를 말한다"고 판시하고 있고, 일방이 고의로 '부득이한 사유'를 만들어낸 경우에는 민법 제661조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

위 대법원 판례 및 여타 하급심 판례들의 태도에 비추어 살피건대, 원래 건강이 (객관적으로) 좋지 않아서 사직을 하려던 참이었는데 금번 집단 사직서 제출과 공교롭게 그 시기가 일치하여 함께 제출하였을 뿐 자신의 사직의 진짜 이유는 '건강'이라는 등의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이  위 '부득이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전공의들의 금번 사직서 제출은 무용지물인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위 민법 규정은 임의규정이므로 당사자간의 약정으로 그 배제가 가능하다.

만일 각 전공의가 각 병원과 체결한 근로계약에서 위 민법 규정과 달리 고용계약의 해지를 규정하였다면, 동 내용이 적용된다. 만일 근로계약에서 '고용계약의 해지'에 관한 특별한 내용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아직 절망하기에는 이르다. 취업규칙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취업규칙에 위 민법 규정과 달리 고용계약의 해지를 규정하였다면, 동 내용이 우선 적용된다. 내가 여기서 '우선'이라고 말한 까닭은 만일 취업규칙에서 정한 내용과 근로계약에서 정한 내용이 배치되는 경우(즉 근로계약에서 정한 내용이 취업규칙에서 정한 내용보다 근로자에게 불리한 경우) 근로계약에서 정한 내용은 그 적용이 배제되고 취업규칙에서 정한 내용이 적용되기 때문이다(실제로 여러 취업규칙에서 '기간의 정함이 있는 고용계약'의 경우에도 '부득이한 사유' 없이 근로자의 사직서 제출 1월 후에 사직의 효과가 발생하는 것으로 규정한 경우가 제법 많다).

요컨대, 만일 각 전공의의 근로계약서나 취업규칙에서  '기간의 정함이 있는 고용계약'의 경우에도 '부득이한 사유' 없이 근로자의 사직서 제출 1월 후에 사직의 효과가 발생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면, 동 약정 내용에 따라 해당 전공의에게는 지난 사직서 제출 1월 후에 사직의 효과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바로 이 지점이, 정부의 견해가 경우에 따라 부분적으로 맞지 않을 수도 있는 지점이다).  

그렇다면 각 전공의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우선 자신의 근로계약서와 취업규칙의 내용을 살펴보아야 한다. 만일 그 내용 중 내가 위에서 언급한 내용을 별도로 규정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앞으로의 법적 대응에 십분 활용하여야 한다(만일 그와 같은 내용이 없다면 없는대로 대응 전략을 짜야한다).

내가 위에서 밝힌 내용이, 전공의 집단 내에서 처음부터 제대로 검토가 되고, 그 검토된 내용에 따라 전공의들이 차분하고도 냉정하게 대응을 하였더라면, 상당수의 전공의들은 면허정지처분 자체를 피하거나 또는 면허정지처분이 나온다 하더라도 비교적 높은 활률로 동 처분을 취소시킬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 면허정지처분 자체가 내려지는 것은 피할 수가 없게 되었고, 남은 것은 일단 최대한 그 처분을 경감시키는 것(이는 정부가 발령하고 있는 처분사전통지에 대한 대응을 어떻게 하는지에 달려있다), 그리고 최대한 경감시킨 처분을 행정소송 판결 선고시까지 집행정지 시키는 것(쉽지 않다), 마지막으로 행정소송에서 위 경감된 처분을 취소시키는 것이다(물론 형사 고발되는 전공의는 금고 이상의 형이 선고되지 않도록 형사적인 대응도 하여야 한다).

행정소송에서 면허정지처분을 취소시키기 위해서는 '재량권의 일탈 남용'을 다투어야 하는데, 재판부가 위 처분을 '재량권의 일탈 남용'으로 판단할 가능성을 최대한 높일 수 있는 방법(법령에 맹점이 있다)에 대해서는 지면 관계상 추후 기회가 되면 다시 다루어 보도록 하겠다.

이제 정부의 각 전공의에 대한 면허정지처분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정부는 처분사전통지부터 시작해서 예정된 수순대로 면허정지처분 절차를 밟아갈 것으로 보이며, 동 절차는 비단 전공의뿐만이 아닌 현재 집단 사직을 예고하고 있는 의대 교수 등에게까지도 확장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이 사건은 이제 좋든 싫든 법정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할 것인데, 법정에 가면  "적법 또는 위법 여부"만이 문제된다는 사실을 전공의들은 지금부터라도 냉정하게 직시하여야 한다. 지금처럼 감정만 내세워서는 결코 이길 수 없고, 제대로 된 법적 검토도 없이 승산 없는 각종 여론용 소송을 남발한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게임은 더더욱 아니다.

지피지기여야 백전백승인데, 현재 전공의들은 지피는 물론이고 지기도 제대로 안된 상태에서 프로 바둑 기사 9단을 상대로 너무도 아마추어처럼 감정만 앞세워 승산 없는 대국을 벌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에 몇 자 끄적여 보았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4562934?sid=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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