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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횸흄 Nov 17. 2023

[생각일기]나에게도 구덩이가 있다

아침 출근길에 전자책으로 황보름 작가의 [매일 읽겠습니다]를 읽고 있다. 매일 조금씩 다른 이의 독서에세이를 읽으며 나의 독서를 떠올리고, '독서에세이란 이런 것이구나' 감탄을 하면서. 그러다 오늘 독서와는 무관한 이 문장에 마음이 움직였다. 다른 사람의 그림자를 보듬어 주는 사람에게 경외의 마음을 가지면서도 나도 모르게 느꼈던 질투의 본질이 이거였구나! 그들이 남들보다 선한 사람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들의 구덩이는 다른 이들보다 깊지 않은 것을지도 모른다는. 그러면서 잠시나마 이 말을 주변 사람의 그림자를 외면하며 느꼈던 죄책감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삼았다. 


최근 보이스피싱에 낚여 원격 앱까지 설치하도록 놀아난 행동이나 냉동실의 고기에 발이 찧어 금이 간 것에 내가 크게 우울해하지 않는 것도 실제로 내가 허우적대는 구덩이는 이것보다 깊고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아마 내가 이 두 사건 정도의 구덩이에만 허우적댔더라면 나 역시 다른 이의 그림자를 맘껏 보듬는 이가 되어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구덩이는 유년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 가난 보다도 지긋지긋했던 부모의 불화, 동생의 죽음으로 인해 깊어진 가족 간의 골, 변하지 않은 채 자식들에게 의존만하는 현재의 부모라는 데까지 깊게 파였다. 부모님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며, 위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저 그건 이번 생에 나완 무관한 것이라며 씁쓸해하곤 한다. 아니 그 이상으로 괴롭다. 


아침에 이 글을 읽으며 친구 하나를 떠올렸다. 구덩이에 빠진 사람도 자기보다 더 깊은 구덩이에 빠진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는 법이다. 부모님의 건강 악화와 돌봄으로 인한 신체적 정신적 붕괴를 겪고 있는 친구에게 어제부터 아침마다 문자를 보내는 중이라 이 글귀를 함께 보내며 내 구덩이를 살짝 드러내 보였다. 내 구덩이를 조금 본다면 친구의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지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친구를 만나게 되는 날, 나는 꽁꽁 숨겨 왔던 나의 구덩이를 가감없이 이야기할 참이다. 내가 얼마나 오래전부터, 우리가 처음 알게된 스무살의 그날보더 훨씬 오래전부터 구덩이에 빠져있었는지를 자랑할 참이다. 비록 지금 너의 구덩이가 더 깊을지 모르지만 내 구덩이도 만만치 않다고 겨뤄볼 참이다. 


나는 그 구덩이에 마음을 모두 빠뜨리지 않기 위해 책을 읽는다. 가족으로부터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해 책을 깊게 읽고 공부를 했다. 보이스피싱을 잊기 위해 추리 소설을 읽었고, 연이어 일어나는 불행에 우울해하지 않기 위해 업무 관련된 책을 읽었다. 친구는 그때마다 기도를 한다. 내가 책을 읽는 마음은 친구가 예수님을 찾는 그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황보름 작가가 매일 읽는 마음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구덩이가 있다면, 나 역시 구덩이가 있어도 그리 문제될 것은 없다는 것이 아Q의 정신승리같아 보이지만 나는 그래서 아Q를 좋아하므로 그렇게 승리한 정신으로 살아가련다. 그러다가 오늘처럼 나보다 더 깊은 구덩이를 가진 이를 만나면 그 사람을 위해 기도든, 노래든, 문자든 그의 그림자를 보듬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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