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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한 편,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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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중효 Aug 31. 2022

경계에서 듣고 말하다

코다 (2021)


 ‘비(非)’라는 글자의 어원은 좌우대칭인 새의 날개에서 왔다고 한다. 그런데 이 글자가 앞에 붙으면 모든 단어는 반대말이 되어버린다. 새의 한쪽 날개 입장에서 보면 반대쪽 날개만큼 자신과 닮은 것은 또 없을 텐데, 말이란 참 희한하다. ‘비 장애인’이라는 말은 ‘비 정상인’이라는 말과 좌우대칭을 이룬다. 벽을 지우려는 시도임에도 불구하고 ‘말’은 이렇게 여전히 장애인과 정상인을 구분 짓는다. 우리는 그제야 말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코다(CODA: A Child of deaf adult)는 이들의 어느 한쪽에도 속하지 않은 경계인이다. 영화 <코다>는 이들에게서 견고한 경계를 허물을 가능성을 찾는다.


 아마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없다면, 듣지 못하는 것은 장애가 아닐 것이다. 본인을 제외한 모든 식구들이 청각장애를 갖고 있는 ‘코다’ 루비(에밀리아 존스)는 그런 환경에서 나고 자랐다. 그녀는 가족들에게 외부의 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쓴다.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은 수어(手語)를 통해 대화하는데, 소리가 없을 뿐, 수어는 의사소통 수단으로 부족함이 없다. 서로 대화하는 그들의 표정과 몸짓은 오히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온전히 담아낸다. 그녀의 부모 프랭크(트로이 코처)와 재키(말리 매트린)는 서로 몸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것에 스스럼이 없다. 이 사랑스러운 가족은 매 순간 온몸으로 서로에게 마음을 전달한다.


 루비는 자신이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루비의 엄마 재키는 루비가 음대에 가는 것을 반대한다. 또 재키는 루비가 태어났을 때, 그녀가 농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실망했다고 말한다. 루비가 다른 가족들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 여긴 것이다. 어쩌면 재키는 ‘같은 조건이 아니라면 서로를 결코 이해할 수 없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말은 ‘장애가 없으면 절대 장애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없다’라는 뜻이기도 하다. 한편 루비의 아빠 프랭크는 그녀가 가족을 떠나 자립하는 쪽을 지지한다. 이 말은 그녀의 가족이 루비 없이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다는 아빠의 ‘자립 선언’이기도 하다. 생각은 다르지만, 재키와 프랭크 모두 루비를 위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마일스(퍼디아 월시)는 우연히 이들의 세계를 방문한다. 그는 루비와 듀엣 콘서트에서 부를 노래를 연습하기 위해 그녀의 집을 찾는다. 마일스는 외부인의 눈에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가족의 모습을 관찰한다. 그리고 다음날 그는 자신이 본 것을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고, 이야기는 학교 전체에 퍼진다. 마치 마르코 폴로가 동방을 별세계로 묘사하는 것처럼, 그는 ‘악의 없이’ 이런 일을 저지른다. 그 후 마일스는 루비와 멀어지고, 이 관계가 회복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우리도 살면서 종종 이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나. 아무런 악의 없이 상대방에게 말로 비수를 꽂았던 순간들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타인의 마음에 상처를 내는지 알게 되는 과정일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타인을 향해 한 걸음 건너갈 수 있는 가능성이 우리에게 열린다.


 루비는 우여곡절 끝에 버클리 음대 입학 오디션을 보게 된다. 오디션 무대의 객석은 1층과  2층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1층의 객석에선 심사위원들이 예민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는 다소 긴장한 채 노래를 시작하는데, 노래 중간에 그녀의 가족들이 몰래 2층의 객석으로 들어온다. 그 순간 그녀는 수어를 시작한다. 이때, 그녀의 수어는 가족들을 향한 날갯짓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녀의 몸짓은 1층과 2층의 경계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장애를 겪지 않고 우리는 장애인의 삶을 함부로 이해한다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우린 그들에게 닿을 수 있다. 그들이 외치기 전에 우리가 먼저 경계를 건너갈 순 없을까.

/글 임중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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