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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푸치노 Feb 19. 2022

그래서 부장님은 지금 행복하신 거예요?

입사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이니 20년도 한참 지난 꽤 오래전 일이다. 내가 속해 있던 조직의 최고위층 임원인 소장님과의 간담회 시간이었다. 커다란 강당에서 소장님이 몇 마디 말씀을 하시고 궁금한 내용에 대한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회사의 제도에 관련된 질문을 했다. 그러다 시간이 남았는데도 추가 질문이 없자 소장님께서 질문자를 지정하시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나를 가리키셨다. 예상치 못한 지명에 머릿속이 하얘지고 대강당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으니 심장이 쿵쾅거렸다. 미리 생각해 놓은 질문도 딱히 없었는데, 얼떨결에 내 입에서는 다소 엉뚱한 질문이 튀어나왔다. 

 

"소장님은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높은 자리에 오르셨는데, 지금 행복하신가요? 그리고, 사모님은 행복하신지  궁금합니다." 


예상외의 나의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렸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소장님은 사모님이 음악을 전공했고 어떻게 만났는지에 대한 말로 대답을 대신하셨다. 예나 지금이나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대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법이다.


갑자기 내 입에서 왜 그런 질문이 튀어나왔을까. 나도 의아했지만 평소 내 잠재의식 속에 내재되었던 의문점인 것은 맞았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삶의 목표가 있었지만, 어떻게 사는 게 행복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회사에서 임원이 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행복한 걸까? 그러나,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일만 하다 보면 배우자는 기분이 어떨까? 이런 궁금증의 연장선상에서 갑자기 그런 질문이 튀어나왔을게다. 최근 갑자기 오래전 그 상황이 생각나면서, 지금의 내게 후배가 동일한 질문을 한다면 나는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싶었다. 


"부장님은 25년 넘게 회사를 오래 다니셨는데, 그래서 부장님은 지금 행복하세요?"라고 묻는다면 말이다.


10년 전에 동일한 질문을 받았다면 행복하다고 대답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행복하다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행복에 대한 정의가 달라졌기 때문일 게다. 전에는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뭔가를 많이 가져야 하고, 늘 일상이 똑같은 루틴 한 삶이 아닌 뭔가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야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행복에 대한 내 관점이 달라졌다. 지금은 내가 열중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에 감사하며 행복하다. 행복에 대한 내 기대치가 낮아져, 행복을 거창한 것에서 찾지 않고 하루하루 무언가를 꾸준히 해내는 데서, 삶의 소소한 것에서 찾게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대답이다.  


또한, 몇 년이 아니라 몇십 년 간 한 분야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오래된 맛집, 대를 이어 내려오는 맛집들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도 그렇게 오랜 기간 꾸준히 지켜내기 위해 노력해 온 과정들을 인정하기 때문일 게다. 내가 하는 업무도 오랜 시간 경험해야 보이는 것들이 있고, 오래 한 가지 분야에 전념해야만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그런 영역에 내가 머무를 수 있음에 감사하고, 요즘에도 여전히 새롭게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음에 행복하다. 시간이라는 가치만이 선사할 수 있는 귀중품을 갖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동안 여러 번 포기하고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많았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잘 견뎌온 나 자신에게 격려를 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브런치를 시작한 지 6개월쯤 지났다. 처음 시작할 때의 열정은 많이 수그러들었고, 가끔은 내가 꼭 브런치에 글을 써야 하나? 회의가 들 때도 있다. 브런치에 글을 쓴다고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딱히 칭찬해 주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하지만, 글을 쓰는 것도 꾸준함을 더해 앞으로 10년, 20년, 30년쯤 지속했을 때만 가질 수 있는 그윽한 즐거움을 느끼고 싶다. 그러기 위해 오늘도 나를 다독여가며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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