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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감보다 달달한. 감 건조대 만들기

베란다 곶감 건조대 제작기

by 황반장

건조대가 예쁘다고 감이 더 달고 맛있어지지 않는다. 지나는 사람 여럿을 붙잡고 물어봐도 같은 대답일 것이다. 하지만 딱 하나의 예외가 있다. 그건 바로 내가 직접 그 건조대를 만들고, 손수 감을 깎고 매달아 곶감을 만들었을 때다. 무슨 소리냐 할 수도 있지만 이게 아주 특수한 현상이어서, 1만 개 이상의 위성을 지구 상공에 띄워 놓고 있는 인류의 과학기술도 아직 이 문제의 첫 소절조차 제대로 독해하지 못한 상태다. 사실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별로 없는 이유는 감이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에서는 흔하게 먹는 과일이지만 아메리카나 유럽에서는 잘 먹지 않는 아주 생소한 과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NASA(미항공우주국) 같은 기관에서는 아예 예산조차 책정되지 않아 제대로 된 연구가 진행되지 못한 영향이 있다고 한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이 풀지 못한 난제에 대한 인류 최초의 보고서다.


얻어온 '대봉시' 몇 개가 문제의 시작이었다. 나는 곶감을 만들어 먹으면 좋겠다 했는데 주위에서 이건 곶감을 만드는 게 아니고 홍시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뭣이라! 곶감 만드는 게 따로 있고 홍시 만드는 것이 따로 있다? 감이 잘 자라지 못하는 추운 경기 북부에서 나고 자란 나는 처음 듣는 얘기였다. 순순히 따르는 것 말고는 도리가 없다. 며칠 후, 이번에는 곶감을 만들 수 있는 감이 생겼다. 곶감을 만들지 못해 낙심했다는 소문이 퍼졌는지 단단한 감이 스무 개 남짓 생긴 것이다.


덕분에 공부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보통 농업진흥청이라고 알고 있는 농촌진흥청 홈페이지를 낱낱이 뒤져보니 감 박사님들이 연구한 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 박사님들이어서 그런지 역시나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감은 '떫은 감'과 '단감'으로 나뉜다. 끝! 한국과 중국에서는 주로 홍시나 곶감을 만들어 먹었기 때문에 떫은 감을 많이 재배했고, 일본은 그냥 껍질만 깎아 생과로 먹는 문화여서 단감을 많이 키웠다. 끝! 그렇다. 홍시 만드는 감, 곶감 만드는 감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었고, 우리나라에서는 떫은 감을 많이 키웠지만 일제강점기부터는 일본품종 단감이 들어오면서 숙성해 단맛을 내는 감과 생과로 먹는 감으로 나뉘게 됐다는 얘기였다. 그러니깐 벌써 무르지만 않았다면 어떤 감이라도 곶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단감을 부러 곶감을 만들 이유도 없었을 것이니 대부분 떫은 감으로 곶감을 만든 것이다.


그런데 왜 단감 또는 홍시, 곶감의 종류가 수없이 많은 것처럼 보이는가? 우리나라 감에는 독특한 ‘떼루와 (terroir)’가 있기 때문이다. 동네방네 다른 감들이 있다는 말이다. 떫은 감과 단감뿐이라더니? 그렇다니깐! 하지만 끝까지 읽어보자. 오랜 세월 감이 키워지면서 지역에 토질, 기후에 적응한 감들이 나타났다. 맛도 모양도 조금조금 다르다. 물론 크게 분류하면 떫은 감, 단감인데 여기에 지역의 이름과 모양이나 식감, 맛에 따라 각각 다른 이름이 붙어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경북 경산에서는 동글납작한 감을 키웠는데 그 이름이 ‘경산반시’, 둥글둥글해서 ‘상주 둥시’, 고둥같이 뾰족한 ‘산청 고동시’, 감 표면에 골이 있어서 ‘광주 골감’, 물이 많아 물렁한 ‘함안 수시’, ‘영월 물감’에다 껍질에 검은색이 들어서 ‘장성 먹시’ 같은 것들이다. 이런 지역성 때문에 굉장히 복잡한 세계관을 가지게 되었지만 어쨌든 모두 떫은 감 아니면 단감인 것이다. 떫은 감은 홍시나 곶감을 만들어야 달달해지는 것이고.


이제 곶감을 만드는 시간이다. 일단 기세에서 밀리면 안 되니까 감들하고 눈싸움 한 판을 벌여볼까 싶었다. 하지만 맑고 밝고 발그스레한 감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술술 풀어지는 게 붙어봐야 단판으로 패할 것이 분명했다. 이럴 때는 장비빨이라 했던가. 감으로 유명한 상주 사는 전국 농민회 형님의 SNS에서 본, 곶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익어가고 있는 풍경이 생각났다. 주렁주렁 매달아야 하는구나. 쇼핑몰을 낱낱이 뒤져 곶감 걸이를 찾아냈다. 망설임은 후회만 남기는 법. 감 20개 정도를 매달 것이지만 여유 있게 25개를 당일발송 주문했다. 다음날, 곶감 250개를 걸 수 있는 감걸이가 도착했다. 그러니깐 하나에 10개의 감을 걸 수 있는데 이걸 25개 주문한 것이다. 무료 나눔으로 인심이 좋은 헛똑똑이 아저씨가 되었다.


곶감에 대한 기본 지식도 탑재했고 대형 물량도 처리 가능한 감걸이를 구비했으나 아직 극복해야 할 큰 과제가 남아 있었다. 연역법에 따라 도출된 곶감 만드는 법을 정리해 보면 전제 1, 떫은 감, 단감 모두 곶감을 만들 수 있다. 전제 2, 나는 떫은 감을 가지고 있다. 결론. 그러니 나도 곶감을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몹시 과학적인 결론에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감을 깎아 감걸이에 꽂아 어디에 매달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 감을 말려야 할 곳이 바로 아파트 베란다였던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나 티브이 프로그램 ‘한국기행’ 같은 걸 보면 햇빛이 잘 드는 처마밑에 긴 대나무 장대를 가로로 걸고 거기에 예쁘게 예쁘게 감을 매달던데 당최 아파트에서는 이런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베란다 천정에서 내려온 고정식 빨래 건조대에 달아볼까 했다. 이러려면 감이 다 익어 곶감이 될 때까지는 옷을 갈아입으면 안 된다. 빨래 널 곳이 또 있는 게 아니니깐. 주로 수건을 말리던 이동형 보조 건조대에 매달까 했는데, 여기에 매달면 다 익은 곶감에서 향긋한 샤프란향 섬유유연제 냄새가 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딱 원하는 모양, 딱 필요한 쓰임새는 직접 만드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모퉁이 돌아 몇 걸음, 계단을 돌아 내려가면 위이잉 기계소리가 들리는 공방으로 갔다. 영화 소품으로 나옴직한 곶감 건조대를 만들 대단한 작정을 하고. 디자인은 아주 단순하게 한다. 접어서 보관이 가능하도록 한다. 크기도 작게 하고 싶었지만 감 스무 개를 매달아야 하고 감들이 좌향좌, 우향우 어디로 돌아도 서로 맞닿으면 안 되니깐 크기는 여기에 맞출 수밖에 없다. 그렇게 얼추 설계가 끝나니 건조대 제작은 의외로 빠르게 진행되었다.


곶감이 익어간다. 혹자는 이 현상을 감이 마르는 것이라 할 수 있겠지만, 곶감은 주관적으로 익는 것이지 객관적으로 마르는 게 아니다. 그러니 곶감은 시나브로 익어가는 게 맞다. 지나는 사람 여럿을 붙잡고 물어봐도 같은 대답일 것이다. 이 곶감은 더 달고 달아질 예정인데, 곶감에 적당하다는 감을 얻은 데다가, 직접 깎고, 걸이에 꽂아, 손수 제작 건조대에 걸었기 때문이다. 이 건조대는 세상에 딱 하나밖에 없는 베란다 맞춤형 감 건조대다. 이제는 더 이상 곶감을 만들지 않는 도시의 아파트 생활이지만, 한 겨울 동안 아이들이 몰래몰래 한 개씩 빼먹는 줄 알면서도 기어이 감을 깎고, 나무를 다듬고 꿰어서 숙성된 단맛을 만들어 낸 그 수고로운 마음을 오늘의 목공으로 조금씩 조금씩 복원했으니 당연히 더 달달한 것 아니겠는가! 믿지 못하시겠다면 직접 건조대를 만들어 보시라, 만드는 작업공정 전체를 아래에 밝혀 두겠다.



<작업 일지>


1. 목봉과 자작나무 합판이 주재료다. 자작나무 합판은 잘 휘지 않고 견고 하다. 양쪽의 삼각구조물을 위아래의 목봉이 연결하며 잡아주는 구조가 건조대의 모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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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간단한 모양이지만 이럴수록 구조에 신경을 써야 한다. 여러 가지를 덧붙일수록 강도가 높아지지만 모양은 둔해진다. 모양 단순하려면 계산된 구조로 힘을 분산시켜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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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 삼각 구조의 핵심은 작은 목심 하나다. 삼각대가 벌어지게 하고 스톱퍼의 역할도 한다. 힘을 받는 곳이니 단단한 목심을 사용했다. 이 목심 빼내면 삼각대는 해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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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나사못을 쓰지 않고 튼튼히 조여주는 역할은 작은 쐐기가 해준다. 작은 벌어진 틈을 메우며 아주 단단하게 나무들을 결구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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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단순하고 공간을 차지하지 않지만 감 서른 개 이상을 여유 있게 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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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깎은 감을 걸어주면 인테리어 효과도 있는 감 건조대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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