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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반장 Jun 27. 2022

나는 참나무가 애달프다.

사적 목공 에세이 ② 참나무 (oak)

 

엄마와 할머니가 보따리로 쓸 커다란 천을 챙길 때는 제법 먼 산까지 도토리를 따러가는 날이었다. 두 분이 대체 어디까지 가서 그 작은 도토리를 그렇게 많이 모아 오는지 어린 나는 알 수 없었다. 집 근처에는 좀 높은 언덕 수준의 산들이 빙빙 둘러서 있을 뿐이고, 그나마 군부대들과 그 부대들의 훈련장, 사격장이 등성이를 벌겋게 깎아내고 자리 잡고 있었으니, 가까운 곳에는 도토리를 딸만한 상수리나무가 흔치 않았으리라 짐작할 뿐이었다. 


엄마와 할머니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서서 저녁 무렵이 되어야 집으로 돌아왔다. 도토리로 가득 찬 커다란 보따리는 헝겊 끈으로 멜빵을 해서 등에 메고, 작은 보따리는 머리에 이고서 묵묵히 돌아오기를 며칠이나 반복했는지 헤아려지지 않는다. 도토리를 따는 날들이 지나면 그걸 다 껍질을 까서 멍석에 펼쳐 말렸다. 말린 도토리는 빻아서 묵을 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묵은 거의 다 읍내 시장에 내다 팔았다고 한다.


어느 날은 저녁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 엄마와 할머니가 돌아오지 않았다. 깜깜한 밤중까지 집 앞 은행나무 아래를 서성이며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데 혹시라도 엄마가 안돌아오면 어쩌나 마음을 졸였었다. 달빛도 없이 저 멀리서 머리 위에 커다란 도토리 보따리가 올려진 두 사람의 검은 그림자가 그제야 나타났는데 마음과는 다르게 괜한 짜증을 부렸다. 그때부터 산에서 놀게 되는 일이 생길 때마다 도토리들을 따서 주머니에 넣어 오고는 했는데 별로 보탬이 되지는 않았다. 내가 놀던 작은 숲에는 엄마가 따오던 실한 도토리는 없고, 길쭉하고 볼품없는 도토리만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건 다 졸참나무 도토리였을 것이라 유추해본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이렇게 도토리가 열리는 나무를 다 ‘참나무’라고 부른다.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가 모두 ‘참나무’다. 목재로 사용할 수 있고 큰 낙엽은 불쏘시개나 땔감으로도 쓸모가 있으며 특히나 도토리가 열리니 참 좋은 나무여서 ‘참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도토리 모양도 다 다른데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굴참나무는 북실 북실 털모자 안에 열매가 들어 있고 신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는 그 시절 미술 선생님이 쓴 걸로 기억되는  동그란 빵모자 안에 열매가 들어있다. 여기에다 가시나무, 종가시 나무, 졸가시나무, 붉가시나무도 ‘참나무’다. 사실 밤나무도 참나무과에 속하지만 열매의 쓰임이 달라 따로 밤나무가 칭하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에는 500여 종이 넘는 참나무가 있다. 


이름의 유래에서도 이 ‘참나무’들이 사람들의 시절과 얽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나무의 열매로 임금님이 드신 도토리묵을 쑤었다 하여 ‘상수리나무’가 되었다고 하고, 짚신 바닥에 잎을 깔고 다녔다고 ‘신갈나무’란다. 늦가을까지 단풍이 들어 ‘갈참나무’고 모양이 제일 작아 ‘졸참나무’라고 했다는 말이 전해진다. 떡갈나무는? 먼길을 나설 때 이파리로 떡을 싸서 ‘떡갈나무’라 했다고 하니 사연 없는 참나무는 없다. 


목공에 쓰는 목재로 부를 때는 ‘참나무’라는 이름을 잘 사용하지 않고 영어 이름인 ‘오크(oak)'라는 표현을 대부분 사용한다. 수입되는 ‘오크(oak)’의 90% 이상이 북미산인데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도토리가 열리는 나무를 모두 다 ‘오크(oak)’라고 칭하는 것이다. 워낙에 종류가 많지만 가공해 놓은 목재의 표면이 붉은색을 띠는 것과 흰색을 띠는 것으로 나누어 크게 ‘레드 오크(red oak)’와 ‘화이트 오크(white oak)’로 구분한다.


‘화이트 오크(white oak)’ 두장을 주문해서 크지 않은 서랍장 하나와 침대 머리맡에 놓을 협탁을 만들었다. 단단하고 변형도 잘되지 않으면서 가공성이 좋아 가구를 만들기에 좋은 나무다. 가벼우면 더 좋겠지만 그런 나무는 없다. 이런 나무는 거의 다 무겁다. 마감을 하고 집에 들여놓고 나니 도토리는 누구에게 다 내주고 여기로 와서 서랍장이 되었나 싶다. 참나무가 애달프니 청승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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