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목공 에세이 ⑩ 호두나무 (walnut)
정월 대보름 아침이면 땅콩이며 호두, 밤, 은행 같은 껍질이 딱딱한 것들을 준비해 이로 깨물어 먹었다. 이름하여 ‘부럼 깨기’. 이걸 꼭 해야 이를 튼튼하게 해 준다고도 하고 부스럼이 생기지 않는다고도 했다. 어릴 적 부스럼이 몹시 심했었기 때문에 엄마가 준비한 부럼을 깨는 일이 내겐 예방주사를 맞는 일처럼 느껴졌다.
지금이야 정월 대보름 즈음에 마트 앞 길거리 매대에 즐비하게 부럼이 등장해도 사람들의 큰 관심을 못 받지만 그 시절엔 아마 달랐으리라. 엄마는 그렇게 가난했던 살림에도 부럼을 마련했으니 말이다. 밤이나 은행은 가을에 미리 주워 갈무리해 둔 것 일 테고, 땅콩은 어느 밭인가 한 귀퉁이에 조금 농사지은 소출이었을 것이다. 우리 동네에서는 그냥은 구할 길 없는 호두는 아마도 읍내 시장에 나가 무언가와 바꿔 오거나 돈을 주고 사 왔을 것이다. 그 수고로움과 정성 때문에 나는 부스럼에서 해방되었다. 아니 그렇다고 믿은 지 꽤나 오래되었다.
부럼 중에 제일 크고 딱딱한 호두는 바로 깨물지 않았다. 경기 북부에는 호두나무가 자라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호두나무와 나무에 달린 열매를 볼 적이 없었다. 일 년에 한 번, 부럼으로만 볼 수 있는 호두는 신기하고 재미난 장난감이기도 했다. 커다란 호두알 두 개를 손에 넣고 굴리면 ‘오도독오도독’ 하는 소리를 내며 부딪치는 게 재미있어 종일 손에 쥐고 있었다. 사실은 한 입에 넣기에 너무 크고, 어린 내가 깨물기에는 너무 딱딱했다. 엄마가 망치 같은 것으로 이 단단한 껍질을 깨주어야 안에 있는 고소하고 기름진 속살을 파먹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호두가 이를 튼튼하게 하고 부스럼을 막는 부럼인 것처럼, 서양에서도 이 호두는 특별한 취급을 받는다.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그 첫 수확한 호두는 제우스에게 바쳤다는 전설이 있다. 이탈리아에는 결혼식 때 신랑 신부에게 호두를 던지는 풍습이 남아있는데 호두가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기 때문이란다. 여기에 성모 마리아가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에 호두나무가 잎을 펼쳐 비를 막아 주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호두나무가 사람들과 오랜 세월 동안 귀한 환대(歡待)의 관계를 유지해 왔으리라 유추해 본다.
열매 호두만큼이나 사람들과 돈독한 것이 목재로써 호두나무다. 목재로 사용할 때는 ‘월넛(walnut)’이라고 부르는 게 보통인데 우리나라에서 지금 목재로 사용되는 건 대개 북미산 ‘블랙 월넛’을 말한다. 조직이 치밀해서 가공 시 뜯기거나 부서지는 일이 적고, 사포로 조금만 샌딩작업을 해도 광택이 좋다. 진한 초콜릿 색상도 장점 중의 하나다. 가구나 도마로 만들었을 때 색상과 광택이 우선 눈에 들어오고, 단단하지만 살뜰한 촉감도 고급스럽다. 오랜 세월 동안 가구로 만들어져 온 이유가 다 있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작은 호두나무로 서빙 보드 (serving board)를 만들었다. 호두나무는 화려한 모양을 만들지 않아도 나뭇결과 색상만으로도 충분하다. 다만 조금 더 수고스러움을 담고 싶어 손잡이 부분은 조각도로 깎아 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환대의 식탁’이라는 이름을 레이저로 각인했다. 옹색한 마음에 비해 말이 너무 거창하지 않는가 싶지만 이렇게 라도 생각을 담아두려고 한다. 환대에 조금 더 가까이 가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