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이 시작됐다. 아이 방에 놓아줄 원목 침대 만들기다. 목공을 시작하면서부터 계속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는데 이제 때가 된 것이다. 어떤 모양으로 만들까? 나무는 뭘 사용하지? 높이는? 색상은? 여러 가지 궁리하다 보니, 침대를 만들겠다는 계획은 훨씬 더 오래전부터 마음 깊은 곳에서 세상으로 나갈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티브이에서 ‘전설의 고향’을 방영하는 날이면 장롱 속의 이불 서너 채를 끌어내려야 했다. 이불을 덮고 덮어서 에스키모들이 산다는 이글루처럼 만들어 파고 들어가 웅크리고서 머리만 쏙 내밀었다. 그러다가 외다리 귀신이라도 등장하는 장면에선 솜이불 이글루의 입구를 딱 닫아버리고 소리도 들리지 않도록 귀를 막아야 그 진땀 나는 순간을 무사히 지나갈 수 있었다. 어린 내게 제법 무겁고 큰 솜이불은 기댈 곳이고 의지할 곳이었다.
어느 날인가 집에 삼단 매트리스가 들어왔다. 절대 변할리 없을 것 같던, 요를 깔고 이불을 덮는 생활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쓰지 않을 때는 접어두었다가 잠을 잘 때 펼쳐서 사용하는 제품이었는데 요를 깔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도 편리함이지만, 푹신푹신한 스펀지에 누우면 푸욱 꺼져 내려가는 기분이 자꾸자꾸 이 스펀지 매트리스에 몸을 밀착시키게 했다. 접으면 제법 높이가 있어서 일상생활에서도 여러 용도가 있었다. 원래는 쓰지 않을 때는 세워두라고 엄마는 말했지만 이걸 눕혀 놓으면 색다르게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 앉아서 티브이를 보기도 하고, 배를 깔고 엎드려 목만 내놓고는 방바닥에 펼쳐 놓은 책을 읽기도 했다. 그냥 멍하니 누워 천장만 바라보아도 좋았다. 이 엉성한 스펀지 매트리스는 내겐 아주 신나는 반려가구였다.
스물이 넘어 서울의 이곳저곳을 전전하면 살 때는 방에 매트리스 하나 덜렁 놓고 생활했다. 주인집에서 쓰던 걸 준 것인지, 이사 가는 옆집이 버린 것을 들고 들어온 것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이 매트리스에 몸을 누이면 또 하루를 잘 버텨냈구나 싶었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라는 유사과학적 주장이 성행하던 때였다.
목공을 배우면서 작은 소품과 가재도구 같은 소소한 가구들을 만들었지만 여전히 마음에만 자리 잡고 있던 큰 가구는 선뜻 제작하기 힘들었다. 크기도 크기지만 쓸만한 가구를 만들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은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오래전부터 자리 잡았던 침대 제작의 욕망은 이젠 더 이상 욕망으로만 존재하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마침 공방의 전시회에 출품한 뭔가도 만들어야 한다는 계기가 신호탄이 되었다. 드디어 시작.
가장 먼저 결정해야 하는 것은 나무의 종류다. 수종에 따라 무늬와 색상, 옹이의 유무, 단단하고 무른 정도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정도의 가격대인지도 수종에 따라 차이가 크다. 이번에는 흔히 ‘레드파인(red fine)’이라고 부르는 소나무 종류를 선택했다. 우리가 익히 아는 그 소나무다. 보통 북유럽과 러시아에서 많이 자라는 소나무로 나뭇결에 살짝 붉은색이 감돌고 옹이가 또렷하게 보인다. 상대적으로 가공하기 쉽고, 생산량이 많이 가격도 저렴하다. 또 지난번에 아이 방 수납장을 이 ‘레드파인’으로 만들었으니 같은 수종으로 하는 게 서로 어울릴 것 같았다.
소나무 종류가 이 '레드파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북미에서 생산되는 것은 ‘미송’이라 하고, 뉴질랜드에서 생산되는 것은 ‘뉴송’이라고 한다. 그럼 ‘레드파인’은 왜 ‘북송’이나 ‘유송’이라고 하지 않았는지는 나는 모른다. 물론 우리나라 소나무도 있다. 궁궐을 짓는데 쓰였다는 ‘금강송’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런 걸로 아이 침대를 만들어주려면, 전생에 나라를 구했으니 조만간 그 보상이 따를 것이라는 두둑한 배짱이 있어야만 가능한, 그런 후덜덜한 지출을 해야 한다. 그러니 이번 생에는 ‘레드파인’이다.
색상과 옹이의 조화로 아름다우며 가성비도 좋은 소나무. 레드파인
다음으로는 크기와 쓰임새를 고려한 디자인이다. 맞춤 가구의 크기는 공간이 결정한다. 원하는 자리에 딱 들어앉게 만드는 게 매력이다. 하지만 침대는 이미 크기가 결정되어 있다. 매트리스 사이즈의 표준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사용하는 매트리스는 싱글형이다. 최근 구매한 것이어서 새로 다시 구비할 것도 아니기에 이 크기에 맞추기로 했다. 싱글 매트리스의 크기는 1,000 ×2,000mm다. 높이는 제조가마다 차이가 있는데 요즘은 좀 높아지는 추세여서 200~300mm까지 다양한다. 슈퍼 싱글매트리는 폭만 100mm 더 긴 1,100 × 2,000mm다. 만약에 현재 싱글 매트리스를 사용하지만, 향후 아이의 성장에 따라 슈퍼싱글을 구매할 생각이 있다면, 침대는 처음부터 슈퍼 싱글로 만드는 것도 고려해 볼만하다. 100mm 정도 더 나와 있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침대 프레임에는 수납용 서랍을 만들기로 했다. 아무래도 방이 작아 수납이 많지 않으니 매트리스 아래 공간을 비워두는 일은 낭비다. 헤드 설치 문제를 며칠 고민했는데 좀 더 복잡한 작업이 생기더라고 꼭 하기로 마음먹었다. 헤드가 있으면 훨씬 더 침대다워 보이기 때문이다.
가장 큰 특징은 침대를 3 분할해서 제작하는 것. 2,000mm를 통으로 만들지 않고 3개의 박스 형태로 만드는 것이다. 각 박스마다 서랍이 있다. 상단부 박스에는 헤드가 설치되고, 하단부 박스에는 매트리스가 밀리지 않도록 돌출부가 있는 것이 차이다. 통으로 만들어도 제작에는 별 문제는 없지만 공방에서 만들어 집으로 가지고 가는데 어려움이 있고, 원목으로만 만들면 무게가 상당하기 때문에 혼자서는 설치도 쉽지 않은 것을 고려한 제법 파격적인 결정이다. 셋으로 나누면 미관상이나 기능상 문제가 없는지 우려하는 분들도 있었는데 실제로는 매트리스가 위에서 눌러주기 때문에 흔들리거나 할 일은 없다.
줄눈 노트에 대강대강 스케치
제작 돌입. 기본 프레임은 박스 구조이므로 제작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런데 막상 박스형태 3개를 다 만들고 나서 서로 연결해 보니 이게 무슨 일! 3개가 딱 직사각형이 되지 않고 살짝 기울어지는 것이다. 박스 중 하나가 직각이 제대로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의 하지 않는 실수인데 쉬운 작업이라고 방심했다. 결국 하나는 다시 제작. 다음 작업은 서랍 만들어 넣기. 일단 무게를 좀 줄이고자 서랍 안쪽은 ‘레드 파인’으로 만들지 않고 ‘오동나무’를 사용했다. 이 나무는 처음 사용해 봤는데 가볍고 제작이 쉬운 편이다. 이건 무난히 통과. 서랍의 손잡이가 좀 고민이었는데 결국 동그란 구멍을 파고 다른 색상의 손잡이를 안쪽으로 밀어 넣는 디자인을 택했다. 매트리스 아래 부분이어서 손잡이가 돌출되어 있으면 사용하다 발이 걸리는 일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박스 3개를 나란히 놓은 모습
서랍의 안쪽은 무게를 고려해 가벼운 오동나무로 만들었다.
손잡이가 돌출되지 않도록 안쪽으로 가공해 넣었다.
이번 작업에서 제일 어려운 부분은 침대의 헤드다. 3개의 기둥을 세우고 이 사이를 22개의 좁고 길게 재단한 나무로 연결하는 것이다. 창살이 많은 창문을 제작하는 것과 같은데 ‘도미노 조이너’를 이용해 기둥 부위와 각각의 빗살들에 도미노칩을 넣을 구멍만 78개를 뚫었다. 문제는 이게 하나씩 순서대로 조립할 수 있는 게 아니고 한 번에 딱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실수가 있어 잘 되지 않는다면? 최악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다시 제작이다. 재단한 목재를 펼쳐 놓고 각 구멍마다 목공풀을 넣었다. 여기에 도미노 칩을 넣고 한 번에 딱 조여서 맞으면 된다. 은근히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결과는? 아주 아주 아주 다행이었다.
헤드 제작. 도미노 칩을 넣는 구멍이 몇 mm라도 틀리면 전체 조립이 불가능하다. 제법 긴장한 작업
헤드를 설치한 모습
바니쉬를 칠해 마감을 내놓고 보니 온갖 생각이 밀려온다. 자꾸만 만져보다가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한다. 이게 뭐라고 자기가 만들어 놓고 스스로 이리 감상적이라니. 사실 이 감회는 머리 희끗희끗한 나의 것이지, 이 침대를 사용할 아이의 것이 아니다. 몇 주간의 침대 만들기를 통해 뚜렷이 빛바랜 오랜 나의 감회는 끝이 났다. 다만 나는 다시 소망한다. 아이에게 전달된 이 침대가 아이가 일상을 살아내는 유용한 도구이길. 그런 기억으로 성장해 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