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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반장 Nov 23. 2022

자작나무 숟가락 깎아보기

사적 목공 에세이 ⑧ 자작나무 (birch)


나뭇가지를 모아 태우면 ‘자작자작’ 소리를 낸다고 해서 ‘자작나무’라고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실제로 ‘자작자작’으로 들릴지 ‘타닥타닥’으로 들릴지는 가지를 태워보지 않는 이상 확인할 길은 없다. 게다가 듣는 사람마다 다르게 들리기도 하니 옳으냐 그르냐를 따져볼 문제도 아니다. 하지만 꼭 ‘자작자작’ 하고 타들어갈 것처럼 느껴지는 것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는데, 이 자작나무가 기름기가 아주 많은 나무이기 때문이다. ‘타닥 타탁’은 왠지 마른 가지가 타면서 터지는 느낌이지 않은가? ‘자작자작’이어야 기름이 타는 소리 같다. 아무튼 자작나무는 껍질에 기름기가 많은 나무인 것이 틀림없다. 결혼을 의미하는 ‘화촉을 밝힌다’는 말이 ‘자작나무 화(樺’)와 ‘촛불 촉(燭)’ 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촛불이 환히 비치듯 밝은 앞날을 기원하는 의미라고 한다. 실제로도 자작나무의 하얀 껍질을 벗겨내 촛불처럼 사용했다.     


기름기가 많다는 말은 습기에 강하다는 의미를 갖는다. 여기에 방부 성분도 섞여 있다면 종이의 역할을 다 할 수 있다. 신기하게도 자작나무의 하얀 껍질은 10~12장의 얇은 껍질이 겹겹이 붙은 형태다. 이 껍질을 하나씩 벗겨내면 썩지 않는 종이가 됐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자작나무 껍질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경주 천마총의 천마도가 바로 이렇게 벗겨낸 자작나무 껍질을 여러 개 겹친 바탕에 그려진 것이다. 나라를 지킨 이순신 장군의 활에도 자작나무 껍질이 쓰였다. 활을 만드는 최종 과정에 자작나무 껍질 ‘화피(樺皮)’를 붙여야 활이 변형되지 않았다. 고로쇠 수액만큼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자작나무 수액도 민간요법, 한방 재료로 사용되었다. 이제는 자일리톨의 주성분으로 더 알려져 있다.      





자작나무가 목재보다는 껍질로 더 유명하게 된 것은 출생의 비밀 때문이다.      


자작나무는 대표적인 ‘선구수종(先驅樹種, pioneer tree species)’ 나무다. 어려운 말은 아니다. 글자 그대로 '먼저 달려가 자리를 잡는' 나무를 말한다. 나무가 없는 빈 땅에 가장 먼저 뿌리를 내리고 숲을 이루는 나무를 뜻하는 말로 자작나무 외에도 오리나무나 보리수 등이 이 수종에 속한다. 빨리 싹을 틔우고 급속도로 성장해 많은 낙엽을 떨구어 유기물을 축적하고 숲의 기반을 닦는다. 이렇게 선구수종 나무들이 숲을 개척하면 ‘후기수종 나무들이 들어와서 비로소 다양한 나무가 사는 숲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지구에 빙하기가 끝나고 춥기도 하고 습하기도 한  북반구에 제일 먼저 자리를 잡은 나무가 선구수종 자작나무다. 눈이 많이 내리는 이곳에는 엄청난 추위와 함께 최대 90%에 달하는 햇빛 반사율 때문에 식물이 얼어 죽거나 타 죽거나 하는 냉혹한 환경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자작나무는 기어이 숲을 이루어냈다. 자신의 껍질을 하얗게 변화시켜 빛을 반사시켜 냈기 때문이다. 핀란드, 노르웨이 그리고 러시아에 눈밭에  새하얀 자작나무 숲이 이렇게 만들어졌다. 이후에 자작나무의 껍질에 ‘베툴린 (Betulin)’이라는 물질이 분포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자작나무의 하얀 껍질에 정령이 깃든 것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서는 백두산 일대에서만 자생한다. 강원도 인제의 자작나무 숲이 유명하지만 한국전쟁 이후 사람들이 조성한 숲이다.      



자작나무 숟가락을 깎기로 했다.      


새로이 우드 카빙(woodcarving)을 시작했다. 카빙 나이프나 조각도를 이용해 나무를 깎아 쓸모 있는 것을 만드는 걸 말하는데, 기계식 장비를 많이 사용하는 기존 작업에 비해 사실 힘이 더 들어가고 효율성은 떨어진다. 왜 힘들게 나무를 깎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도 있다.  효율에 방점을 두면 그리 생각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나무를 깎으며 느껴지는 질감, 냄새, 나뭇결에 따라 달라지는 촉감에 더 집중하려고 한다. 비록 아직 많이 서툴러 깎기에 실패해 나무 조각이 무용한 것이 되어도 좋다. 손기술을 갈고닦는 과정이다. 거기다 지천명이 넘어 어떤 과정에 다시 선다는 긴장감이 아린 손가락을 통해 더해진다.      


카빙 용품을 파는 전시장에서 필요한 도구 몇 가지를 사고 우연히 자작나무 원목을 얻었다. 연습용 목재라 흠이 많지만 처음 만난 이 나무에 온통 정신이 팔린다. 덜컥 사버린 카빙 가이드북의 첫 장도 자작나무 숟가락 만들기였으니 우연이 겹쳐진 필연이라고 과대해석을 해본다. 지난달 우드 카빙 워크숍에서 어깨너머로, 그리고 책에서 본 대로 본을 그리고 오목한 숟가락 머리부터 파나갔다. 그리고 뒷면을 미끄럼 타듯이 곡선으로 깎아내고 손잡이 모양을 잡았다. 자작나무의 신비로운 정령의 힘이 느껴지는 듯했는데.      


실패다. 숟가락 머리는 너무 크고 깊게 파였고, 손잡이는 모양이 바르게 잡으려고 계속 깎아내다 보니 가늘어져 버렸다. 식사용 숟가락은 아니다. 손에는 물집 두 개가 남았다. 숟가락으로 시작했지만  숟가락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비밀이다. 잘할 때까지는. 만들어진 유사 숟가락에는  ‘긴 손잡이 커피콩 스쿱’이라는 새 이름을 붙였다.


이번 겨울, 눈이 오면 자작나무 숲에 다녀와야겠다. 그때쯤에는 좀 더 나은 숟가락을 깎고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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