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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반장 Nov 01. 2022

나무를 쇼핑하는 사람들

사적 목공 에세이 ⑦ 산벚나무 (Wild Cherry)

하필이면 오늘. 자동차 에어컨이 고장 났다. 예정된 일정이니 일단은 에어컨 계통 휴즈만 갈아 끼우고 출발하려고 했는데 웬걸! 새로 교체한 것도 바로 끊어져 버린다. 에어컨에서는 그냥 상온의 바람만 폴폴 나온다. 출발을 안 할 수도 없다. 약속한 공방 회원들이 이미 나와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6월 중순에 접에 들어 햇빛이 만만치 않지만 일단 차 창문을 열고 길에 나서본다.      


처음에는 견딜만할 거라 생각했는데 고속도로에 들어서자마자 차창으로 엄청난 양의 후회가 밀려들어 왔다. 더위는 말할 것도 없고 여기에다 예상치 못한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매연과 어마어마한 소음이다. 차창을 닫으면 순식간에 찜통 열기가 올라오고 창을 내리면 고막을 찢는 소음이 귀를 때린다. 이러다간 귀가 떨어져 창밖으로 날아가버리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다. 허나 어쩌랴. 길은 가야 하고, 이미 고속도로인걸. 무조건 용인까지 가야 한다. 아직 30분은 더 남았는데 이 길을 거슬러 다시 돌아올 걱정이 엎친 데 덮쳐서 올라온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경기도 용인에 있는 목재소다. 도마를 만들 수 있는 나무들을 잘 정리해서 진열해 놓은 곳이다. 나무의 종류가 다양하고 고르기 좋게 진열이 되어 있어서 공방 회원들과 자주 찾는다. 이것저것 나무 구경을 하다 보면 한두 시간은 금방이다. 헌데 옹이가 없고 갈라짐이 없으며 잘 말라있는 도마재를 찾아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이미 좋은 것은 더 일찍 온 사람들이 차지하는 때도 있고 항상 같은 품질의 나무가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은 ‘캄포’와 ‘올리브’는 몇 점 되지 않고 질도 좋지 않다. 대신 느티나무가 크기도 큼지막하고 무늬도 좋은 것들이 나와 있다. 고르고 골라 ‘느티나무’ 도마재 몇 개와 ‘편백’ 하나, ‘월넛’ 하나를 샀다. 물욕은 없는 인생 같았는데 이곳에 오면 달라진다. 맘껏 나무 쇼핑을 하다 보면 가산탕진이 현실이 될 수 있으니 자제해야 한다. 찜통에 소음을 견디면서까지 이곳에 오는 이유다.           




전화벨이 울린다. ‘운전 중이야.’, ‘어디 가는 길인데?’, ‘응. 캄포 보러 가’, ‘김포?’, ‘김포에 가기는 하는데 캄포 나무 사러 가는 길이야. 도마 만들려고’, ‘아이고, 김포에 땅 보러 간다는 줄 알았네’      

경기도 김포에 땅 보러 갈 일이 전혀 없는 인생에 살림살이인데 이런 소리를 듣는다. ‘아, 땅이란 무엇인가?’ 생각이 스치기도 하지만 어차피 내가 신경 쓰고 욕심낸다고 가까워질 일이 아니다. 우스갯소리로는 이 정도가 적당하다.      


이번에는 김포에 있는 목재소에서 미리 부탁해 놓은 ‘캄포’ 도마재를 가지러 가는 길이다. 나무에도 유행이 있는데 몇 년 전부터는 무늬가 도드라지고 향이 강한 ‘캄포’가 인기다. 도착한 곳은 다른 공방 회원이 종종 거래하던 곳인데 나는 오늘이 처음이다. 많은 양을 다양하게 전시해 놓고 판매하는 곳은 아니지만 미리 주문해놓았고, 목재소를 운영하는 사장님이 직접 골라놓은 것이어서 그런지 나무의 품질이 상당히 좋다. 이렇게 크기가 크면서도 나뭇결이 아름답고 갈라짐과 휨이 없는 나무를 만나는 건 제법 운이 좋아야 한다. 아니면 이번처럼 오래 거래하는 곳에 미리 부탁해 놓아야 한다. 결국, 발품을 팔고 시간을 들어야 좋은 물건을 손에 쥘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구한 나무가 땅처럼 자산가치가 올라가는 건 아니다. 시세 차익 따위는 더더욱 아니고. 나뭇결이 굽이굽이 흐르던, 나이테 색이 짙고 결이 고운들 그저 도마 아니겠는가? 헌데 그저 그걸 것 같은 이 무늬와 결에 빠져들면, 이만 원짜리 나무 한 토막이 이백 평 땅 부럽지가 않게 된다. 내 손으로 자르고 다듬어, 쓸모 있고 아름다운 도마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현실 행복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지금껏 가보지 않았던 목재소로 향하고 있다. 경기도 포천에 있는 곳인데 매월 마지막 주에는 할인판매를 해서 유명해진 곳이다. 우리 뚝딱이 목공방의 다른 회원들은 한두 번 다녀온 곳인데 나는 시간이 잘 맞지 않아서 가볼 기회가 없었다. 포천에 간 김에 산정호수에라도 들러서 점심이라도 먹을까 했는데 목적지는 포천의 초입이다. 산정호수는 여기서 한 시간은 더 가야 하는 것으로 나온다. 이번에 같이 가는 회원들은 40대, 50대, 60대로 연령이 다양하다. 세대로 보면야 공통의 관심사가 별로 없을 것 같고, 또 대화를 해보면 실제로도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으니 바로 같은 목공 동호회의 회원이라는 것. 목재에 대한 부분에서만 대화가 되고 각자 자기 말을 하는데도 차 안이 시끌벅적하다. 신기한 세대 간의 화합이다.     


우드 빅 마켓 (경기도 포천)


나무를 고를 때는 아무래도 서로의 경험이 도움이 된다. 혼자서는 엄청나게 많은 나무의 종류에 놀라기도 하고, 도대체 어떤 걸 골라야 하는지 난감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딱 내가 찾는 쓰임새에 맞는 걸 찾아야 하는데 이것도 좋아 보이고 저것도 좋아 보이니 정신이 없다. 이렇게 나무를 사면, 살 때야 좋지만 돌아와 나무를 펼쳐 놓고는 내가 이걸 왜 샀을까 미궁에 빠지기 십상이다. 나도 처음에는 늘 이런 식이 었다. 오늘 온 곳은 대형마트처럼 카트가 있어서 여기에 나무를 담아 쇼핑하고 계산대에서 정산하는 방식이다. 자칫 잘못하면 나무를 한 차 가득 사 오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행사 매대에서 ‘산벚나무’를 하나 골라 주저 없이 카트에 담았다. 처음 대하는 나무다. 솔직히 이 나무의 물성이나 가공성에 대해 잘 모른다. 어떤 걸 만들겠다는 계획도 물론 없다. 그렇게 욕심을 버리자 다짐을 했건만 부질없이 이렇게 돼버리는 날이 있는 것이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 하지 않았는가. 오늘은 나무 이름이 너무 예쁜 게 문제였다.           




선(先) 구매했으면 후(後) 공부라도 잘해야 한다. 벚나무는 누구나 아는 벚꽃이 피는 그 나무를 말한다. 봄이면 흐드러지게 꽃이 만발하고 꽃이 지면 버찌가 열린다. 벚나무, 왕벚나무, 산벚나무, 겹벚나무, 수양벚나무 등 수십 종류의 벚나무가 있다. 산벚나무는 이름처럼 전국의 높은 산에서 자라는데 키는 20미터에 달한다. 건축재로도 사용하지만 악기를 만들거나 조각용으로 더 많이 사용된다. 너무 딱딱하지도 않고 너무 무르지도 않아 조각용으로 적당하기 때문이다. 이런 특성이 가장 잘 나타난 것이 팔만대장경이다. 팔만대장경 제작에는 돌배나무, 거제수 나무, 층층나무, 자작나무 등 다양한 수종이 사용되었으나 이들 나무들은 소량이고 산벚나무가 가장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장복산 조각공원 (경남 진해)



반쯤 충동구매한 산벚나무를 며칠 물끄러미 보고만 있다가 역시 도마를 만들기로 했다. 사실 보자마자 예쁜 플레이팅 보드를 만들려고 마음먹었었다. 하지만 만들어진 결과는 늘 아쉽다. 어느 시인이 언어처럼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경박해지지 않고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요란하지 않은’ 묵묵함을 담고 싶었는데 아직은 멀었다는 걸 또 확인하니 말이다.      



산벚나무 도마


* 인용한 詩는 도종환 시인의 '산벚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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