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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반장 Jul 05. 2023

옹이

쌩초보 우드 카빙 도전기 ④ 콩 접시

나는 옹이에게 친절하고 싶다.      

나무에 박힌 옹이에게 친절할 일이 있겠냐 싶지만, 이런 건 그럴싸한 이유를 만들어 마음먹는 일이다. 


옹이는 목재에 각인처럼 찍혀있는 나뭇가지의 자국이다. 나뭇가지들이 저마다의 잎을 달고 하늘을 향해 오른다. 잎사귀를 펼쳐 햇빛을 받아 나무를 자라나게 하고 더 많은 다른 나뭇가지를 솟아나게 한다. 나무가 성장해 더 높은 곳의 가지가 무성해지면 아랫가지는 더 이상 햇볕을 받지 못하고 마른 가지가 되어 사라진다. 당연히 세찬 비바람이나 벌레들의 공격을 받아 썩어 부러져 나간 가지도 있을 것이다. 이때 나뭇가지는 자신의 흔적 하나쯤을 남겨 놓는데 사람들은 그걸 ‘옹이’라고 부른다. 

     

꼭 이렇게 자연적인 현상만으로 옹이가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옹이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옹이의 수가 적고 크기도 작으며 썩어서 동그란 모양으로 구멍이 뚫리지 않은 목재를 생산하기 위해 미리미리 가지치기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강제로 잘린 가지의 옹이는 썩지 않고 나무의 결에 단단하게 박힌다. 이런 것을 사람들은 ‘산 옹이’라고 한다. 마치 성장을 멈춘 작은 나이테처럼 보인다.

      

반대로 말라서 죽은 가지가 나뭇결에 자리를 잡게 되면 단단하게 결합되지 못하는데 이건 ‘죽은 옹이’다. 나뭇결과 만나는 부분에 빈틈이 있다. 또 ‘죽은 옹이’가 다 썩어 있다면 ‘썩은 옹이’라 하고, 옹이가 아예 떨어져 나와 버린 구멍 자국은 ‘빠진 옹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목재에 등급을 만들고 유통과 활용을 위해 만들어낸 개념인데 나무들 사이에서 이를 뭐라는 부르는지는 알 길이 없다.

      

사람에게도 옹이가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아온 날들보다 훨씬 더 많은 날을 지구에서 살아온 나무의 삶에 자신들의 희로애락을 빗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가슴에 맺혀 있는 얕거나 깊은 응어리가 ‘옹이’인 것이다. 이제는 잊고 살지만 차마 지울 수는 없는 흐리거나 짙은 상처의 기억도 ‘옹이’가 되었다. 

     

이번에는 작은 콩접시 하나를 깎아본다. 나무의 결을 가늠해 보고 조각도를 움직여 조금씩 조금씩 나무의 살을 덜어낸다. 작은 접시 모양이 겨우 생겨나려는데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옹이가 드러났다. 이건 ‘숨은 옹이’다. 그것도 거의 다 삭아서  부스러져 나간 '썩은 옹이'다. 아마도 나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작은 가지가 꺾여나갔고 이게 썩은 옹이가 되었을 것인데, 나무는 옹이를 속으로 욱여넣으면서 계속 자라나 '숨은 옹이'를 만들었다. 그렇게 옹이를 속에 간직한 채  번성하고 푸르렀을 텐데, 이제 와서 깊이 덮어 놓은 옹이가 드러나게 되었다. 

사람 사는 일이었다면 무슨 이유라도 대야 할 일인데, 무심한 나는 기어이 옹이가 있는 접시를 깎고 말았다. 





콩접시 카빙노트     


1. 월넛(호두나무) 판재에 연필로 작은 동그라미를 그리고 중앙에 맞춰 보링비트를 이용해 구멍을 파주었다. 초보자는 파내는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런 방법을 이용한다 하여 따라 했다. (크기가 작은 접시를 보통 콩접시라 하는데 일본의 반찬 접시인 ‘마메자라(豆皿)’를 그대로 번역한 말이다. 9cm 미만의 작은 접시를 말한다.)     


2. 조각도 환도를 이용해 안쪽부터 모양을 잡아나갔다. 처음에는 넓은 조각도로 작업하고 마지막에는 좀 더 좁은 조각도를 이용해 조각도 자국을 남기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3. 한창 작업 중에 예상 못한 옹이가 불쑥 나타났다. 조금 파내면 없어질 자국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옹이가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버려야 하나 싶었는데 이것도 이 나무의 일부라 생각하니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이렇게 이 작업은 특별해졌다. 




4. 판재에서 동그란 모양을 잘라내고 바닥은 트리머를 이용해 가공했다. 작업이 조금 더 손에 익으면 바닥 부분도 손으로 모양을 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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