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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니고 싶지 않았다

1편

by 승란

그 시절,
내가 나에게 내린 진단명은
‘의욕 상실’이었다.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글을 쓰며 내가 왜 살아가는지를 생각해보려 했지만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것처럼,
끝이 보이지 않았다.

많은 일이 있었다.
나는 그저 아무 일도 없이
평범하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세상은 내가 편한 걸 못 보겠다는 듯
사건과 사고를 끊임없이 던져왔다.

작고 사소한 일들이 모여
산처럼 쌓였고,
그 무게가 나를 짓눌렀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했고,
웃고 떠들던 사람이었던 나는
점점 말수가 줄었고, 대화 속 농담도 더 이상 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아이들의 성공이 곧 내 성공이라고 믿었던
전업주부로서의 긴 시간.
그 시간 동안, 진짜 나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게 20년을 보냈다.

그 시간이 전부 무의미했던 건 아니겠지만,
억울하게 느껴졌다.
보람보다는 허무함이 더 크게 남았고,

거울속의 나는 어느새 이렇게 늙어버렸다.


나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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