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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고양이 Jul 06. 2021

정말 오랜만에 하는 비건 식사, 너무 맛있다

고기 없는 한 끼, 오랜만이야

‘간헐적’ 채식을 하기로 마음먹은 첫째 날, 나는 오늘 비건 식사를 했다. 주 4회는 비건 식사를 하는 비건지향러가 되기로 했으니 첫날부터 고기를 먹을 수는 없다. 이번 주는 오랜만에 친구를 만날 예정이기에 ‘고기 먹는 날’은 그때를 위해 아껴두기로.


나는 어릴 때부터 할머니가 해주신 음식들을 먹고 자랐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할머니 댁 근처에 아직도 살고 있고, 어쩌다 보니 아직도 할머니 댁에서 점심 식사를 할 때가 많다.


할머니 댁에서 먹는 밥은 맛있다. 항상 밑반찬이 있고 구워둔 고기나 생선이 있고 국이나 찌개가 있어서 그냥 꺼내서 데워 먹기만 해도 맛있다. 오늘은 냉장고에 있는 소고기와 굴비와 멸치볶음은 모른 채 하며, 그 외 맛있는 반찬들을 꺼내 먹었다. 조개 없는 미역국과 함께.

두부는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따뜻하게 해서 반모를 다 먹었다. 사실 버섯볶음은 원래도 매우 좋아해서 이거 하나만 있어도 한 끼는 뚝딱 한다. 거기에 흐물 아삭한 오이지무침, 열무김치까지 있으니 고기랑 생선이 없어도 이렇게 잘 먹을 수가 없다. 어쩌면 채식하기 너무 편한 조건을 갖추었다.


나는 커피가 없이는 일을 시작하지 못하는 편인데, 다행히도 내 커피 취향은 온리 아이스 아메리카노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일명 ‘얼죽아’… 라떼파 였다면 그것도 자제하는데 꽤 힘들었을 것 같다.


내가 일을 하면서 뭔가를 먹는가? 에 대해 오늘 생각을 해보았다. 오전에 집에서 일할 때는 커피와 가끔 과자나 과일 같은 것, 사무실에서는 딱히 커피 외엔 먹는 게 없는 편이다. 그럼 내가 먹을 수 있는 간식은 뭐가 있나?로 생각이 옮겨 갔다.


중독적이고 절대 끊을 수 없는 감자칩, 이건 몸에는 좋지 않겠지만 어쨌든 채식이다.

집에 항상 구비해 두는 맛밤, 이거야 말로 채식 간식으로 최고다.

엄마손파이나 롤리폴리 같은 쿠키류, 앗 이런 건 버터나 계란이 들어갈 것 같으니 안된다.

월드콘이나 찰떡아이스, 우유가 들어 있을 테니 안되는데 스크류바는 되려나? 자세히 봐야겠다.

모든 과일류, 다 먹을 수 있다.

빵은? 베이글, 치아바타는 괜찮을 테고 식빵이나 햄치즈가 들어간 건 안 되겠지.


본격적으로 채식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앞으로 비건 식당, 비건 빵집 등을 많이 찾아둬야겠다. 10년 전보다 훨씬 더 많이 생겼겠지 하는 기대감이 막 생긴다. 얼마 전에 사둔 비욘드미트의 햄버거가 냉동실에 있는데, 이런 것도 잘 활용한 레시피들이 매우 다양해졌을 것 같은 기대감도 생긴다.


저녁은 어떻게 먹어야 하나 고민을 하면서 퇴근을 했다. 최근에 친구가 알려준 오이무침(?) 레시피가 너무 맛있어서 가끔 먹는데, 오늘은 그거랑 냉면을 먹어야겠다 생각하면서 신나게 집에 왔다. 한창 곤약에 빠져있던 와중이라 곤약 국수에 동치미 육수를 넣어서 가볍게 냉면을 만들고, 연두, 소금, 들기름, 참깨를 넣은 오이무침을 만들어서 먹었다.

앗 그러고 보니 동치미 육수에도 소고기맛 분말 뭐 이런 게 들어 있으려나..? 그것도 고기로 만드는 것일까? 앞으로 알아볼 것이 많아졌군.

곤약 국수가 아니어도 냉면사리를 넣어도 채식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먹으면 곧 배가 고파진다. 주말에 사 온 11킬로짜리 수박을 모두 썰어서 냉장고에 보관하며 한 그릇을 따로 덜어 후식으로 먹었다.  


오늘은 채식의 스타트를 비로소 끊으며, 앞으로 펼쳐질 나의 ‘비건 지향 간헐적 채식 라이프’를 시작하는 아주 멋진 날이었다. 그를 응원이라도 하듯 브런치 작가 선정 알림이 와서 오후에 잠깐 놀랐었다. 더 열심히 채식을 하라는 의미겠지. 벌써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진 느낌이 드는 것은 기분 탓일까?  


내가 평소 먹던 것들을 다시 살펴보니 당연히 비건 음식 일 줄 알았던 것들이 의외로 아닌 경우가 많았다. 포장지의 뒷면까지 꼼꼼히 읽은 습관을 들여야겠다. 다음에는 비건으로 속으면 안 될 음식들을 하나하나 파헤치는 글을 한번 써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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