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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보연 Jun 10. 2023

두 번째 하늘 생일

보고 싶다

벌써 2년이라니...
며칠 전부터 머릿속이 멍해졌다.
괜찮은 척해보려 노력했지만 전날 새벽부터 심장이 두근거렸다.
'2년 전 이 시간쯤부터 네가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지...'
그때가 떠오를 때면 기억하지 않으려 애쓴다.
운동을 하고 강아지 산책을 시키도 꽃에 물을 주고 휴대폰을 보고...
갖가지 방법으로 고통스러운 그때를 떠올리지 않으려 애쓴다.

​작년에는 '하늘생일'이라고 미역국 끓여 생일상을 차렸었는데 올해는 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고 제사상을 차릴 것도 아니었다.
'꼭 상을 차려야 하나.. 아들을 기억하는 하루를 보내면 되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내 눈치를 살피던 남편은 아침 일찍 일어나 능숙하게 김치볶음밥을 했다.
은찬이가 있을 때는 주말 아침마다 보던 광경인데 2년 전부터는 거의 없던 일이었다.  
셋이서 달걀프라이를 얹은 김치볶음밥을 먹은 후 딸은 연습방으로 들어가고 나는 어제 사다가 물 올림 해놓았던 꽃으로 꽃다발을 만들었다.
은찬이방에는 늘 있는 꽃이지만 그래도 오늘은 조금 특별하게 하고 싶었다.

어찌어찌 하루를 보내고 저녁은 은찬이가 좋아하던 크림새우를 수원까지 가서 포장해 왔다.

삼성병원에 있을 적, 의식이 돌아오고 잠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뭐가 가장 먹고 싶냐고 물으니 안 되는 발음으로 한 글자씩 또박또박 "크. 림. 새. 우!" 하던 귀여운 아들얼굴이 떠올라 자주 먹기는 어려운 크림새우.

크림새우랑 이것저것 접시에 담아 은찬이방 책상에 놓아주었다.

음식을 책상에 올려두고 나오는데 방문이 꽝 닫혔다.
내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자 딸이
"오빠도 사춘기가 왔나 보네요. 문 쾅 닫는 거 보니"
해서
"그러게"
하고 웃었다.
그 와중에 우린 웃었다.

저녁 먹은 후 2년도 더 된 그때처럼 그때 그 책상에 둘러앉아 그때 그 보드게임들을 했다.
스플랜더도 하고 도미니언도하고 할리갈리에 블로커스... 내친김에 단어 만들기랑 그림 맞추기, 오목까지...
아들이 좋아하던 게임들을 몽땅 꺼내와 몇 시간을 했나 보다.

그래놓고도 딸은 아무도 자기랑 체스를 안 해준다며 심통을 부렸다.
은찬이가 좋아하던 체스 상대를 해주던 것은 동생뿐이었다.
나는 게임규칙을 배워 볼 생각조차 없었기에 체스는 둘만의 놀이였다.
은찬이는 나의 소울메이트이기만 했던 것이 아니라 동생의 소울메이트이기도 했나 보다.
여하튼 폭풍전야처럼 잔잔했던 오늘하루는 딸의 심통으로 가볍게 마무리되었다.
몇 년 전 그때도 보통 그랬듯이...


은찬아,  

네가 엄마 곁을 떠난 지 벌써 2년이나 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운 요 며칠이었어.
희원이는 2년 전의 너보다도 훌쩍 커버렸고 네 친구들은 엄마보다도 훌쩍 커서 중2병 사춘기를 겪고 있는 걸 보면 2년이란 시간실감이 나기도 하네.
엄마는 희원이 돌보며 잘 지내고 있어.
바이올린을 얼마나 잘하는지... 깜짝깜짝 놀랄 때도 있고
공부시키다가 열이 훅훅 올라올 때도 있고
그래도 서로에게 너의 빈자리를 채워주며 잘 지내고 있어.
네가 엄마 곁에 있을 때는 어디 아프진 않을까, 다치진 않을까 항상 걱정이었는데, 이제 아프지 않을 테니 그런 걱정은 없네.
너와 겪었던 괴로운 순간들 대신 너무나도 평범하게 보내고 있는 지금 시간을 너에게 미안해하지 않으려고 해.
은찬이도 그곳에서 잘 지내며  남은 가족들 잘 지내기를 바라고 있을 거라고 믿거든.
그게 은찬이니까...
은찬이 걱정하지 않도록 온 가족 힘내며 살아갈게.
가끔 보러 와줘.
엄마꿈에도 나와주고...
아들...
사랑한다. 보고 싶다.

                   2023년 6월 10일. 두 번째 하늘생일날.
                   은찬이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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