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 원래부터 완벽주의가 있었다. 옛날엔 그게 좋은 거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계획적이고 철저한 모습은 뭔가 완벽해 보이고 더 열심히 사는 것처럼 느껴졌다. 은찬이가 아프면서 완벽주의는 더 심해졌다. 모든 치료과정을 일지로 쓰고 모든 만약을 대비해야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토할 것을 대비해 모든 옷 주머니와 가방에는 비닐봉투가 준비되어 있었고, 만약의 입원을 대비해 입원가방 역시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했다. 노로바이러스 감염 이후에는 병원에 있을 때면 살균제로 아이의 손이 닿을만한 모든 곳을 수시로 닦아야 불안감이 조금 떨쳐졌고, 경련이 있은 이후부터는 아이를 지켜보기 위해 잠을 거의 자지 않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완벽주의는 불안에서 시작된다. 완벽주의 자체가 사실은 불안하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그렇기에 무조건 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강박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은 필요하다.
강아지와 산책을 나갈 때면 배변봉투 세장을 바로 쓸 수 있도록 펼쳐서 준비한다. 한번 나가면 보통 대변을 세 번까지 보기 때문... 사실 롤로 된 봉투는 하나씩 뜯어 쓸 수 있도록 되어있기에 통째로 들고나가도 무방하다. 그걸 알면서도 항상 봉투세장은 저렇게 따로 들고 간다. 심지에 중간에 봉투를 사용하면 다시 개수 맞춰 채워놓는다; 또 시작되었군...
완벽주의가 올라오려 할 때쯤 생각한다. '별일 아니잖아. 그게 별거라고. 큰일 나는 거 아니잖아'
봉투세장이 항상 준비되어있지 않아도 괜찮다고 집에 샴푸린스 한두 번쯤 떨어져도 괜찮다고 하루이틀 청소 안 해도 된다고 물건들이 가지런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에게 자꾸만 일깨워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