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찬이는 어른스러운 아이였다.
아니, 어른스러운 게 아니라 그냥 어른이었다.
이국종 교수님 말씀으로 애들이 아프다 보면 어른스러워진다고 하던데 은찬이는 아프기 한참 전부터도 그랬다.
두 아이가 연년생이다 보니 특별히 큰 아이에게 무얼 요구하지 않았다.
오빠라고 해봐야 고작 한 살 많은 건데 같이 크는 거라고 생각해 '오빠답게' 같은 기대는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 녀석은 스스로 K장남의 멍에를 뒤집어썼다.
아주 어릴 적부터 동생을 그리도 챙기고 아꼈다.
두 살 동생을 자기 배 위에 앉히고 방방 뛰는 모습을 보며 웃고 있는 세 살 오빠라니...
상상도 못 할 모습이었다.
둘이 손잡고 학교에 갔다가 돌아오는 시간.
1학년 동생은 억울함에 눈물이 그렁그렁하고 2학년 오빠는 화가 나 씩씩대며 들어오는 일이 잦았다.
위험하게 꽃이며 나비 본다며 이곳저곳 구경하고 다니는 동생이 걱정되는 오빠가 잔소리를 하다 하다 결국 손목을 꼭 잡고 집으로 끌고 온 것.
고작 한 살 많으면서 10살쯤 많은 오빠처럼 동생을 챙기는 은찬이가 혼날 일이라고는 하나뿐이었다.
"니가 어른이야?! 왜 동생한테 그렇게 잔소리를 해"
내일부터 같이 오지 말라고 해도 무슨 책임감인지 또 동생손을 꼭 잡고 어르고 달래며 오곤 했다.
엊그제..
딸아이와 오빠얘기를 하며...
"너네 오빠는 맨날 너한테 잔소리해서 혼났잖아. 왜 그렇게 시키지도 않은 잔소리를 했을까?"
하니 딸이
"엄마가 니가 어른이냐고 할 때마다 오빠 얼굴이 어땠는지 알아요? '아 맞다 나 어른 아니지?' 하는 표정이었어요. 인생 2 회찬데 깜빡 잊은 것처럼..."
하며 웃는다.
그러네...
그 말 듣고 보니 이해가 간다.
너는 인생 2회 차였구나. 어쩌면 3회 차, 4회 차일수도 있었겠다.
날 때부터 떠날 때까지 세상을 다 아는 사람처럼 굴던 너는 아마도 인생 몇 회 차였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