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와 산책을 자주 하다 보니 매번 마주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중 장애가 있는 아이와 매일같이 산책 나오는 엄마 두 분에게 자꾸 눈이 간다.
아마도 은찬이가 살아있다면 우리도 저런 모습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인 듯하다.
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최종목표(?)는 아이가 독립적인 어른으로 잘 자라도록 돕는 것이라고 항상 생각해 왔다.
은찬이가 처음 백혈병 진단을 받았을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런데 재발을 거듭하며 몸이 불편해지고 눈이 보이지 않게 되자 그 목표도 달라졌다.
만약 아이가 병은 낫고 부작용만 심하게 남아 평생 침대에 누워있게 된다면... 을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부모로서 나의 목표는 어디서 들어봤던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사는 것'이 되었었다.
보약과 영양제를 꾸역꾸역 챙겨 먹고 내가 아프지 않는것. 그게 내가 아이를 위해 해야 하는 일이었다.
24시간 엄마손이 필요했던 은찬이를 보내고...
적절할 때 아이를 독립시킬 줄 알아야 하는 평범한 엄마의 역할을 맡고 있는 지금.
슬슬 독립할 준비를 하며 엄마를 조금씩 밀어내는 중1 딸아이를 기특해하지 못하고 자꾸만 서운함을 느끼고 있다.
가을의 찬바람과 함께 아이의 싸늘한 말투가 느껴질 때면 왜 이리도 마음이 시린지...
다른 사춘기 아이들만큼 심한 편도 아니거늘 워낙 잘 안기고 살부대끼던 아이라 줄곧 방에 들어가 있고 귀에 항상 이어폰을 꽂고 있는 아이가 낯설기만 하다.
나의 서운함과는 다르게 아이는 잘 자라고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줄도 알고, 혼자 밥 한 끼쯤 뚝딱 차려먹을 줄도 안다.
게으름 피우는 듯싶다가도 연습만큼은 알아서 잘하고,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 어른이 되면 돈을 벌어야 하고, 갖고 싶은 것을 사려면 돈을 모아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으니 졸업하고 유학을 간다 해도 큰 걱정 없이 보낼 수 있을 듯하다.
서로 분리불안이 있는 것이 조금 문제이지만 잘 적응해 나가야겠지.
아침에 감기기운이 있는 딸에게 약을 내밀었더니 알이 커서 먹기 힘들다고 투덜대기에
"요거 한알 가지고? 오빠 소환해?"
하니 군소리 없이 꿀떡 삼킨다.
열 알 넘는 알약도 물 몇 모금으로 꼴딱 삼키고는 낫는 약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냐고 하던 은찬까지 소환하기에는 너무나 작은 알 하나인 것을 너도 나도 잘 알기에...^^;
은찬이는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여러 방식으로 우리를 도와준다.
은찬이가 우리에게 분명히 남겨준 것들이 있다.
힘든 일을 견뎌내는 힘.
어떤 일이 생겨도 그 자리에서 길을 찾아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것.
해결할 방법이 있는 일이라면 별일 아니라는 것.
뭐 그런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