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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 Mirror Oct 10. 2024

엄마와 떠나는 여행

3부. 내 마음을 바라보다

"나 죽으면 제사 안 지내도 되니까, 한 달에 한 번씩 같이 여행 가자"


백만년 만에 전주로 함께 여행가는 기차 안에서 엄마가 내게 말했다. 이때부터 엄마와의 여행이 시작됐다.


# 엄마의 '나를 찾아 떠나는 제주 여행'

설 연휴를 앞두고 엄마와 함께 제주도 여행을 계획했다. 이번 4박 5일 엄마와의 여행 테마는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엄마가 좋아하는 것을 먹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가고 싶은 곳을 찾아 가기로 했다. 제주도를 다녀온 사람들이 추천한 장소, 식당 등을 검색해 리스트를 만들고, 에어비앤비에서 체험 리스트를 정리해 엄마에게 미리 공유했다. 엄마에게 하고 싶은 것을 3가지 정도 고르라고 했더니 다음의 세 가지를 골랐다.


"탄산온천, 반지 만들기, 가방 만들기."


평소 목욕을 좋아하는 엄마라서 탄산온천은 예상했고,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걸 좋아하는 엄마는 반지와 가방 만들기를 선택했다.


여행 첫날 제주 공항에 도착해 근처 비건 식당인 다소니에서 들깨죽과 묵무침을 간단히 먹고 은반지 공방으로 갔다. 엄마와 내 손가락 길이에 맞게 은막대기를 잘랐고, 끓이고 망치로 치고 붙이는 등의 여러 공정을 거처 드디어 은반지가 완성됐다.

셋째 날 아침은 라탄 공방에 갔다. 나는 라탄 조명을, 엄마는 동백꽃 천으로 라탄 가방을 만들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걸 어려워하는 편이라 나는 쉽지 않았으나, 엄마는 척척 잘 만들었다. 

무릎이 아픈 엄마를 위한 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탄산온천에 갔다. 이번 여행의 만족도는 거의 200%였다.


# 세 모녀의 여수 여행

엄마, 여동생과 함께 2박 3일 여수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숙소 근처에 가면 좋을 곳, 그리고 여행 전문가 성주님에게 추천받은 곳만 몇 군데 정해 놓고 떠난 여수 여행. 이번 여행 때 엄마와 꼭 해 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엄마의 자서전 쓰기다. 지난 어버이날에 엄마에게 준 선물이 있었는데, 엄마에게 50여가지의 질문을 하는 작은 책이었다. 엄마 혼자서 써 보길 바랐으나, 선물 준 후로 책은 구석에 쳐박혀 있었다. 그래서 이번 가족 여행 때 책 한권을 완성해 보기로 했다.


여행 둘째 날 아침. 가족 통화를 시작했고, 간단한 서로의 근황을 전한 뒤에 첫번째 여행 장소인 순천만습지로 이동하면서 엄마에게 자서전에 있는 내용들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Part 1. 엄마 소개

이름 : 지나씨

신체 사이즈 : 상의 95 M 하의 28 발 사이즈 245

좋아하는 영화 : 완벽한 타인

좋아하는 색 : 흰색

좋아하는 계절과 날씨 : 4계절, 비오는 날


요즘 기분은 어때?

A+야. 딸들이 와서 즐겁게 해 주니까.


요즘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무릎 안 아프고 예전처럼 촐랑촐랑 다닐까.


노후에는 어떤 삶을 살고 싶어?

안 아프고 건강하게 여행만 다니면서 살고 싶어.


꼭 가보고 싶은 여행지는?

산티아고 순례길


꼭 한 번 배워보고 싶은 게 있다면?

바이올린. 근데 손이 말을 안 들어


Part 2. 꿈 많은 소녀 시절

엄마의 취향 : 짬뽕, 탕수육소스 찍어먹기, 비빔냉면, 커피, 찍어먹는 양념치킨, 맥주, 계란 반숙, 닭고기, 회는 된장과 와사비, 여름, 자유여행, 호텔에서 편하기 쉴 땐 쉬고 온 김에 다 보고 가는 여행.


어릴 때 자주 가서 놀았던 곳은?

학교 운동장 마당에서 공기놀이, 고무줄 놀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하고 놀았어.


어린 시절 가장 좋아했던 노래는?

조개 껍질 묶어


학창시절 별명은?

눈에 띄는 아이가 아니라서 별명 같은 건 없었어.


학창시절 좋아했던 연예인은?

남진, 나훈아


학창 시절 장래희망은?

체육 선생님


제일 자신 있었던 과목과 어려웠던 과목은?

자신 있었던 건 수학, 어려웠던 건 역사.


어릴 때 드시던 추억의 음식은?

6살 때 방앗간 할 때는 부자여서 쌀밥을 매일 먹었어. 그런데 망하고 나서는 쌀밥이 먹고 싶었지만 보리도 없어서 밀밥을 먹었어. 귀리처럼 길쭉하게 생긴 밥 있어.


젊을 때 하지 못해서 후회한 것이 있다면?

성공하려면 하기 싫었던 공부를 진득하게 했어야 했어. 부모님 말을 잘 들었어야 하는데…


Part 3. 엄마와 아빠의 연애

엄마 아빠는 어떻게 만났어?

할머니 계원이 이모 옆집에 살았어. 이모가 자기가 소개해주는 사람 아니면 결혼하지 말라고 했거든. 이모 소개로 대구에서 만났어. 


보자마자 결혼하게 될 것 같았어?

아니. 근데 그 전에 선을 스무 번 넘게 봤어. 아빠 보러 갈 때는 어디 아픈 거 아니면 결혼해야겠다고 생각했지.


프로포즈는?

처음 만난 날 아침 10시에 만나서 밤 11시까지 하루 종일 대구 곳곳을 돌아다녔어. 일주일 동안 대구에 있으면서 매일 만났지. 그리고 일주일 뒤에 결혼하자고 하더라.


누가 먼저 반해서 따라 다녔어?

서로 합의 하에 만났지. 합의하고 보니 니네 아빠 온 동네에 썸씽이 많더라고. 주변에 아빠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서. 내가 그때 좀 괜찮았지, 서울 사람이기도 했고. (웃음)


기억에 남는 데이트가 있다면?

멸치 잡아서 빙어튀김처럼 해 준데가 있었는데, 정말 맛있었어.


아빠의 매력 포인트는 뭐였어?

없었어. 돈 많은 집 아들이라서 한거야. (ㅋㅋㅋ)


Part 4.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

우리 태몽은 뭐였어?

막내는 아들 낳으려고 했는지 벼 사이로 뱀이 휙 지나갔어.


우리 임신한 거 알았을 때 어떤 생각했어?

첫째 때는 세계 최고 천재를 낳아야겠다고 생각했고, 둘째 때는 또 딸이구나 싶었고, 셋째는 또 딸이면 어쩌지 했는데 아들을 낳고 기분이 괜찮았어. 사실 엄청 좋았어.


우리 배속에 있을 때 뭐가 가장 먹고 싶었어?

입덧이 심했어. 첫째 둘째 때는 멍게만 먹으면 입덧이 사라졌고, 막내 때는 비빔 쫄면을 먹으면 입덧을 안 하더라구.


우린 어떤 아기였어?

애들 다 착했어. 말 안 들으면 맞으니까. (ㅎㅎㅎ) 엄청 잘 먹었어. 귤 한 박스 사면 이틀이면 없어지고, 오렌지 8kg도 금방 사라지고, 김치도 많이 없어졌지.


우리 키우면서 미안했던 건 없어?

많이 때린 건 미안하게 생각해. (왜 때렸어?) 아빠 몸이 아팠잖아. 다른 집은 아빠들이 잡아주는데. 건들건들거리는 걸 내가 싫어했어. 그래서 애들이 '저런 아빠 때문에 저렇다' 이런 말 듣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랬지.


우리가 가장 자랑스러웠던 순간은?

건강하게 잘 자라줘서 고마워. 공부도 잘 하고. 가장 평범하게 살아주는 거. 범사에 감사한 게 감사한거야. 


엄마에게 우리는 어떤 존재야?

금보다 중요한 존재.


Part 5. 엄마의 부모님

할머니 할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는?

항상 보고 싶지. 결혼해서 힘들 때 집에 혼자 있으면 엄마랑 매일 통화했어. 할머니 편찮으실 때 목욕을 자주 못 시켜드려서 죄송해. 


할머니 할아버지와 꼭 하고 싶었지만 못 해 드린 것?

할머니 차 멀미가 심해서 여행을 거의 못 갔어.


할머니 할아버지가 연세 드셨다고 느꼈을 때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고 말씀하실 때, 어디 아플 때.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못다 한 말이 있다면?

좀 더 좋아한다고 얘기할 걸.. 왜 안 했을까. 


Part 6. 나의 아이들에게

우리랑 같이 해 보고 싶은 거 있어?

다리 안 아플 동안 맛집 돌아다니면서 여행하고 싶어. 


우리가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면 좋겠어?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것 마음껏 펼치면서 살면 좋겠어. 혼자도 좋고, 둘도 좋고, 셋도 좋고.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면서 살면 좋겠어.


차로 이동하는 시간 동안 60개의 질문을 했고, 엄마는 신나게 답했다. 끝나고 나서 소감은 엄마는 질문해 주어서 고맙다고 했고, 아이들 셋은 모두 엄마에 대해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되어 재미있었다. 엄마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니, 엄마가 하는 행동들에 있어서 이해가 되지 않던 부분들을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엄마 죽은 후에 제사는 안 지내도 되니까 살아 있을 때 매달 한 번씩 같이 여행 가자고 했던 말, 무릎도 아픈 엄마가 테니스를 가르쳐 주고 있어서 무리되니까 계속 그만두라고 했는데, 왜 그만두지 못 하고 있는지, 어릴 때 왜 그렇게 우리 셋을 엄하게 키웠는지 등등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어떤 인생을 살고 싶냐고 물은 그 질문에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면서 살면 좋겠다'는 대답이 역설적으로 '엄마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며 살아온 것'으로 들려 마음이 아팠다. 


# 두 번째 제주 여행에서 돌아오며 그리고 에피소드

여행 중 엄마의 친한 친구가 내게 카톡을 보냈다.


“엄마랑 모든 것 다 잊고 자연과 함께 어우려져 즐거운 시간 보내고 와~~ 엄마랑 다투지 말고”


예전에 엄마와 둘이 시간을 보낼 때면 시도 때도 없이 가슴 속에서 욱하는 것이 올라와 그것을 진정시키기 바빴다. 1시간을 같이 있기도 어려운 사이였다. 엄마는 무언가 계속 주제를 꺼내 딸과의 대화를 시도한다. 하지만 그걸 듣는 딸은 엄마가 무슨 말을 하든 ‘화’가 났다. 용기를 내어(?) 말을 걸어 보거나, 엄마의 말에 대꾸를 하지만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한 마디만 하면 계속 화가 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는 다행히 욱하는 마음도, 화나는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엄마가 계속 다른 사람 이야기를 반복해서 해도, 운전 중에 내게 하는 말의 80%가 ‘속도 낮추라’는 것이어도 화가 나지 않았다. 그저 ‘그러려니’ 하며 엄마와 시간을 보냈다.


지난 1월에 엄마와 둘이 제주도 여행을 왔을 때가 생각난다. 그 때도 출발하기 전부터 짝꿍이 내게 ‘엄마와 싸우지 말고 잘 놀다 오라’며 신신당부를 했다. 4박 5일의 여행 일정 중 단 한 번 싸웠다. 미리 예매해 두었던 공연을 보러 가야하는데 다른 주소로 가는 바람에 공연 시작을 놓쳤다. 공연 중간에는 들어갈 수 없다고 해서 공연 끝에 있는 식사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는 사람에게 얘기해 중간에 들어가겠다며 고집을 피웠고, 나는 그럼 서울로 돌아가겠다며 화를 냈다.


다행히 식사 후 저절로 화해가 되었다. 그리고 8개월만에 다시 찾은 엄마와의 제주. 태풍이 지난 뒤 고요한 제주 바다처럼 두 사람의 여행은 크고 작은 파도의 일렁임 없이 잔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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