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변하는 중입니다
지금 짝꿍을 만날 때쯤이었다. 연애를 시작하면 3개월 만에 도망가는 연애 패턴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카페에서 일하고 있어 도망갈 수가 없었다. 그때 나를 버티게 해 준 희망은 계획하고 있던 제주도에서 보낼 3개월의 시간이었다.
카페에서 일을 잠시 쉬고, 제주도에 가서 살기로 했다. 비록 3 달이지만 내게는 가뭄의 단비 같은 시간이었다.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자주 만나는 사람들과 물리적인 거리를 두고 싶었다. 처음 여행을 계획할 때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벌면서 중간중간 쉬는 시간에 짬을 내 여행을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서울에서 미리 결정한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했더니 오전에는 게스트 식사 준비를 하고 청소를 한 뒤에 오후 5시부터 저녁 손님맞이 준비를 해야 했다. 생각보다 자유시간이 너무 적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행 왔는데 또다시 어딘가에 메어 있는 것이 싫었다. 또 다른 인간관계를 맺고 싶지도 않았다. 결국 주인장 언니와 맥주 한 잔을 하면서 내가 기대했던 바와 다르다는 걸 얘기했다. 내 상황을 이해해 준 언니는 오기로 했던 어머니의 일정을 좀 앞당겨 주었다.
바로 제주에서 지낼 월세 집을 구하고 완전한 자유시간을 가졌다. 매일 월셋집 주인장이 운영하는 카페로 향했다. 카페에 가서 하루 종일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매일매일 보고, 듣고, 느꼈던 일들을 기록했다. 그리고 발길이 닿는 대로 다녔다.
제주에 있던 어느 날, 미국에서 충치 치료를 받지 못해 죽음에 이른 아이의 모습을 보았다. 그 아이의 치료를 거부한 병원들 때문에 결국 충치가 치주염으로 발전하고, 뇌까지 번져 죽었다. 세계에서 부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는 미국의 이야기. 이기주의는 과연 어디까지 가고 있는가? 나의 이기주의는 어디쯤 있을까?
내가 이루고자 하는 바가 과연 무엇일까?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모습이란?
과연 이대로도 좋은가?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참 많을 텐데. 함께 잘 사는 것이 그리 어려웠나? 피우는 담배 한 개비, 마시는 커피 한 잔, 매달 나가는 핸드폰 요금. 작지만 이런 것들만 모아도 나누며 살 수 있는데. 그것들을 외면하고, 큰돈을 벌면, 나중에 잘 되면. 이런 생각으로 살아온 것은 아닐까? 그저 내가 지금 처해 있는 상황에서 나눌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되는 것을 뭐가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난 계속 미루고 있었을까?
나 하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되지.
남이야 뭐가 되든 알 게 뭐야.
이런 생각들이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던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어쩌다 이리 매정한 사람이 되어 버린 건지.
꺼져가던 가슴속 깊은 곳의 불씨가 다시 타올랐으면 했다. 함께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대한 작은 불씨. 어느새 이기주의란 물로 꺼뜨리고 있던 그 불씨.
나는 주변에 소중한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에도 그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공감하지 못했다. 내가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낸 뒤에 비로소 그들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항상 나의 모든 생각과 판단의 중심에는 '내'가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왜 힘든지 전혀 보이지 않는 인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