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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 Mirror May 29. 2024

진짜 나와 만나는 시간, 선요가와 명상

2부. 변하는 중입니다

행복이 자기 내부에, 만족이 자기 내부에, 빛이 자기 내부에 있는 사람이 요기고 브라만과 하나 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신적인 의식에서 영원한 자유를 얻는다. - 바가바드 기타


2013년 3월의 어느 아침

독립한 나만의 공간에서 감독 ‘데이비드 린치의 빨간 방’이란 책을 읽었다. '첫 명상'이란 글에서 그는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처음 명상에 대해 들었을 때 난 전혀 관심이 없었다. 호기심조차 없었다. 명상이란 그저 시간 낭비처럼 보였다. 그런데 나는 ‘진정한 행복은 자기 내부에 있다’라는 문구 때문에 명상에 관심을 두게 됐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좀 치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왜냐하면 그 ‘내부’가 어디인지 그곳에 어떻게 도달할 수 있는지를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책을 덮자마자 데이비드 린치가 했다는 초월명상법을 찾았다. 


눈을 감고 나의 몸은 우주의 눈앞 벽에 작은 검은색 점을 만들어 지구점이라고 이름 붙인다. 매일 아침 10~20분씩 과거의 기억들, 좋은 기억도 나쁜 기억들도 모조리 하나씩 떠올린다. 떠올린 기억들을 곱씹은 후 멀리 지구점으로 버린다. 그렇게 현재의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을지도 모르는 과거의 기억들을 하나씩 지워 나간다. 


어떤 날은 아침부터 괴로운 기억을 떠올려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기억 하나를 지우고 나면 왠지 몸도 마음도 가뿐해졌다. 이렇게 나는 명상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나의 명상 스승님은 일상에서도 실천할 수 있는 명상법을 알려주셨다. 일상의 명상과 수련은 예전처럼 지치고 힘들 때 그냥 그 감정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마음먹는 순간 즉시 그런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명상은 항상 ‘지금, 여기’에 존재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습관처럼 ‘미래의 어딘가’, ‘내가 상상하는 어떤 모습’에 머무르던 마음을 ‘현재’로 옮겨 주었다. 


현재에 존재하는 마음에는 욕심이 없다. 어떠한 욕구나 욕망도 없다. 그저 그 자체로 존재할 뿐이다. 그 자체로 있으면 기쁜 마음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기쁜 마음에 다시 끌려가지 않고 ‘이 마음’에 온전하게 있으면 비교하며 괴로워했던 마음의 흔적마저 사라져 버린다.


명상 센터에 나를 데려간 짝꿍의 도움으로 명상요가 지도자 수업을 같은 시기에 듣기 시작했다. 요가 동작을 배울 줄 알았는데 명상 이론을 가르쳐 주셨다. 첫 수업을 듣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찾아온 ‘나’를, 데이비드 린치가 얘기했던 ‘자기 내부’를 이곳에서 찾게 될 수도 있겠구나.”


담배를 끊다

제주에서 3개월의 시간을 보내고 서울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제주 자연 속에서의 편안함은 서울에 도착하고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곧 복잡한 상태에 이르렀다. 한시도 고요한 상태로 있을 수가 없었다. 일하고 있던 카페에 손님이 오는지 계속 출입문을 향해 신경을 써야 했고, 잠깐 여유가 생기면 노트북 앞에서 작업을 했다. ‘산란함’ 그 자체였다.


산란함을 도저히 견딜 수 없겠다 싶을 때 제주도로 가기 전에 잠깐 들렀던 명상요가센터의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스님이 지도해 주시는 대로 명상을 했었는데 그 30분의 시간은 아무 생각도 없는 ‘온통 고요함’뿐이었다. 나는 본격적으로 명상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항상 산란함 속에 있다가 일주일에 한 번 스님의 지도를 받는 이 시간이 내게는 마치 뜨거운 사막 속에서 마시는 물과 같았다. 명상의 시간을 통해 다시 숨을 쉴 수 있었고 이 시간이 일주일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하버드 의대의 하버트 벤슨 박사는 <이완반응>이라는 책에서 마리화나와 해시시라는 약물을 사용한 사람 1,450명을 대상으로 명상의 효과를 측정했다. 21개월 간 규칙적으로 명상을 하였더니 매일 1회 이상 약물을 사용하던 고도 사용자가 28%에서 1명으로 줄었다.


나 역시 명상을 시작하자마자 10년 넘게 피우던 담배를 완전히 끊을 수 있었다. 그리고 2013년 여름에 내 인생 처음으로 찾아온 불면증도 완벽하게 사라졌다.


일상의 명상법

6개월 간 지도자 교육을 들으며 일주일에 세 번은 새벽의 명상요가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평일의 저녁 하루는 주지스님이 진행하시는 초심자법회와 명상반에 참여했다. 매주 초심자 법회가 끝나면 명상 수업이 시작되었다. 흔히 명상이라고 하면 반가부좌나 가부좌로 앉아서 두 손등을 무릎에 올려놓고 눈을 감은 채 하는 명상을 많이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내가 배운 명상은 선요가, 명상요가였다. 앉아서 명상을 하면 이완하기가 쉽지 않고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긴장이 가중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스님은 요가 동작을 통해 명상을 할 수 있도록 지도해 주셨다.


칼 구스타프 융은 자기 안으로 깊이 몰입함으로써 외부 세계를 몰아내고 문을 닫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명상이라고 했다. 요가 매트 위에 바르게 누워 눈을 감고 명상 지도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따라 가다 보면 평소 많은 긴장으로 꽉 조이고 있는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전신의 호흡이 느껴진다. 어느새 몸을 인식하지 않게 되고 스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따라 하는 마음만이 뚜렷해진다.


이렇게 선요가와 명상을 시작하고 1년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나는 명상에 진심이었다. 어떤 시점에 이르러 스님은 일상생활에서 언제든지 명상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시겠다고 하셨다. 나는 명상법을 배우기 위해 100일간 108배를 시작했다. 명상 수업 시간에 경험하는 '가벼움 그리고 존재 자체만으로도 충만한 느낌'을 일상에서도 영위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108배를 했다.


두 손을 모아 합장하면서 손바닥을 느끼며 머릿속을 한 번 비웠고, 두 손바닥을 바닥 내려놓으면서 무릎을 꿇을 때는 현재 이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고개를 숙이고 두 손바닥을 하늘을 향해 들어 올릴 때 지도를 잘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사 기도하는 마음이었다. 다시 두 손을 내려 합장을 하고 일어서면서 계속해서 도망가려는 마음을 붙잡았다. 


드디어 명상 지도를 받는 날이 왔다. 스님과 단 둘이 수련실에 있었다. 나는 요가매트 위에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머리를 내려놓고, 턱을 떨구고 전신의 긴장을 완전히 내려놓았다. 스님의 말씀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정신은 바짝 차렸다. 30여분의 시간 동안 스님을 따라갔더니 데이비드 린치가 말한 ‘나의 내부’에 도달하는 듯했다. 그리고 이유 없이 기쁜 마음이 마구 솟구쳤다.


매일 새벽 예불

일상의 명상법을 배우고 나는 짝꿍을 따라 ‘수행’이라는 것을 내 삶의 큰 부분으로 가지고 오게 되었다. 몇 번의 이사 끝에 절 바로 옆에 있는 집으로 오게 되었다. 눈을 뜨자마자 달려가면 30초 만에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절 건물의 2층은 명상센터였고, 5층은 법당이었다. 매일 새벽 4시에는 스님들이 예불을 하셨다. 


짝꿍과 나는 매일 새벽 3시 30분에 알람을 맞춰 놓았고, 알람이 울리면 눈을 떴다. 후다닥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서 절에 갔다. 한 발 한 발 계단을 내디딜 때마다 발바닥을 잘 느끼며 남아 있는 잠에서 깨려고 노력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건물의 법당에 올라가 법당 문을 열고 정면에 보이는 부처님을 향해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했다. 일찍 도착하면 앞쪽부터 주지스님 방석, 스님들 방석, 그리고 새벽 예불에 참석하는 도반들의 방석을 차례로 깔았다. 


잠이 워낙 많아서 8시간은 자야 했다. 거의 매일 저녁 9시 30분쯤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일찍 잠들어도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야 했기 때문에 내가 잘 수 있는 시간은 6시간뿐이었다. 그래서 매일 새벽 예불 시간에는 내 눈에 잠이 가득했다.


예불을 드릴 자리에 서서 부처님을 향해 3배를 올린다. 그리고 잠을 깨려고 애를 쓰다 보면 스님들이 법당에 도착하셨다. 시곗바늘이 4시를 가리키면 어김없이 예불이 시작되었다. 


“계향 정향 혜향 해탈향 해탈지견향

광명 운대 주변법계 공양시방 무량불법승

계향․정향․혜향․해탈향․해탈지견향


온 누리에 광명 가득하신

시방에 무량한 불·법·승께 공양합니다.”


예불문으로 시작하는 새벽 예불은 이산 혜원 선사 발원문으로 이어진다. 


“저희들이 참된 성품 등지옵고 무명(無明) 속에 뛰어들어 

나고 죽는 물결 따라 빛과 소리 물이 들고 

심술궂고 욕심내어 온갖 번뇌 쌓았으며, 

보고 듣고 맛봄으로 한량없는 죄를 지어 

잘못된 길 갈팡질팡 생사고해(生死苦海) 헤매면서 

나와 남을 집착(執着)하고, 

그른 길만 찾아다녀 여러 생(生)에 지은 업장(業障)

크고 작은 많은 허물 삼보 전에 원력 빌어 일심참회(一心懺悔)하옵나니, 

바라옵건대 부처님이 이끄시고 보살님네 살피옵서 

고통(苦痛) 바다 헤어나서 열반(涅槃) 언덕 가사이다.”



30여분 정도 새벽 예불 시간이 끝나면 법화경 새벽 법문이 있었다. 하지만 새벽 시간이 너무 힘든 나는 법문 시간에 완벽하게 깨어 있던 적이 거의 없다. 주지 스님이 법문을 시작하면 스님의 목소리가 저 멀리에서 들리는 듯했다. 더 자야만 한다고 인식하는 내 눈꺼풀은 계속해서 바닥을 향해 떨어지려고 했다. 다행히 법화경 법문은 참가한 모두가 스님의 목탁 소리에 맞추어 법화경을 읽는 것으로 시작했다. 


큰 소리로 독송을 하는 동안 잠에서 깨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 바람은 대체적으로 잘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매일 30분에서 1시간 정도 법문이 끝나면 법문을 마친 자리에서 20-30분 정도 좌선 지도를 해 주셨다. 나는 눈을 감는 즉시 혼탁해지고 잠으로 떨어질 것이 뻔했기 때문에 54주 염주를 꼭 챙겨갔다. 좌선을 시작하면 주머니에 있던 염주를 꺼내 손에 들었다. 그리고 엄지 손가락으로 한 알씩 굴리기 시작했다. 염주알을 굴리고 있는 손가락의 감각을 놓치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하지만 내 마음은 염주를 느끼는 것에서 달아나 저 멀리 안드로메다에 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너무 심하다 싶을 때 스님은 한 번씩 이름을 불러 주셨고, 다시 정신을 차리려고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새벽 시간에 정신을 차리는 건 정말이지 고양이가 물을 좋아하게 되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법문과 좌선 시간이 끝나면 스님이 전날이나 새벽에 준비해 놓으신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먹는 공양 시간이었다. 공양을 하고 정리까지 마치면 대략 아침 6시 반에서 7시 정도가 되었다. 아침 수련 시간이 모두 끝나고 짝꿍과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출근 시간까지 여유가 있는 짝꿍은 잠을 청했고, 회사에 다니던 나는 그때부터 출근 준비를 시작했다.


스님들이 지방으로 절을 옮기기 전까지 4-5년 정도 거의 매일 새벽 예불에 참석했다. 


‘지금 여기’에 있는 훈련

매일 새벽 예불에 참석하면서 저녁에 사람을 만나는 횟수가 거의 줄어들었다. 명상을 시작하면서 담배를 끊었고, 거의 매일 마시거나 한 번 마시거나 엄청 취할 정도로 마시던 술 마시는 양과 횟수도 많이 줄었다. 인간관계도 많이 정리됐다. 이렇게 사는 걸 아는 한 선배는 내게 물었다.


“무슨 재미로 사냐?”

“음.. 이것도 재미있어요.”


스님들이 지방으로 절을 옮기신 후로 짝꿍과 내 인생에 새벽 예불 시간이 사라졌다. 다른 사람들처럼 늦게 잠들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명상을 게을리하지는 않았다. 밥을 먹을 때 입 숫자를 세면서 꼭꼭 씹어 먹기, 걸을 때 발자국마다 발바닥을 잘 느끼면서 걷기, 하루 한 번 이상은 좌선하기, 선요가 수업 듣기와 같이 일상에서 명상을 꾸준히 실천하려고 애를 썼다. 


일상의 명상을 실천하다 보면 순간순간이지만 ‘이유 없이 기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마약을 하면 사람들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하지만 정신이 온전치 않은 몽롱한 상태에서 그런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명상을 할 때는 내 정신이 또렷하게 맑은 상태에서 기쁜 마음이 난다. 비록 그 순간은 찰나이지만 가슴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뜨거운 마음이 올라오면서 환희심이 느껴지는 그때는 정말 짜릿하다. 나의 스승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순일한 마음이 될 때 기쁘다”


몸은 여기에 있고, 정신은 과거의 어딘가 혹은 미래의 어딘가에 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있어 심신일체가 이루어질 때 느낄 수 있다.


스님들처럼 완전히 세속의 인연을 끊고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 ‘수행’이라는 단어를 내 인생에 가져다 쓴다는 것이 참으로 민망하고 부끄럽다. 예전처럼 매일 새벽 예불을 드리는 것도 아니라 느지막이 잠자리에 들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하루 24시간 중 잠자는 8시간을 빼고 16시간 중 극히 일부만을 나름대로 ‘수행’이라는 것에 쓰고 있다. 그래도 어쩌다 한 번이지만, 찰나의 기쁜 마음이 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무척 감사한 일이다. 그 순간만큼은 스님의 말씀처럼 내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순일해졌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기쁜 마음을 쫓다 보면 ‘수행한다’ 혹은 ‘수행하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구본형 선생님은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산에 오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오른다는 생각 없이 계속 올라라”


‘하고 있다’

‘한다’

‘내’가 한다


이런 것들에 사로잡히는 순간, 내 몸과 마음은 일체 되기가 어려워진다. 그냥 한다는 생각이나 ‘나’라는 것에 묶여 버리게 된다. 마치 불면증이 있는 사람이 ‘자야 한다’는 생각에 꽁꽁 묶여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다가 결국 밤을 새워 버리는 것과 같다. 정말로 잠을 자고 싶다면 ‘자고 싶다’ 혹은 ‘자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비워 버려야 한다. 


스님에게 ‘일상의 명상법’을 배운 뒤로 100일간 회사를 그만두고 절에서 먹고 잤다. 배운 직후 이 방법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100일간 절에서 수행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스님의 말씀을 듣고 내린 결정이었다.


그런 결정을 내린 내가 기특했는지, 스님은 바쁜 일정 중에 틈을 내서 계속 좌선이나 선요가 지도를 해 주셨다. 대중방에서 9시나 10시쯤 잠이 들었고, 매일 3시 40분쯤 일어나 공양간에 가서 청수를 떠서 법당으로 올라갔다. 새벽 예불 준비를 했고, 새벽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오전 프로그램이 끝나면 잠깐 쉬는 시간을 가졌다가 공양 준비나 청소 같은 울력을 했다. 11시에 사시 예불을 드렸고, 점심 공양을 했다. 오후에는 근처 산으로 산책을 갔다. 산책을 하며 걷기 명상을 했다. 산책 후에 돌아오면 스님이 시간이 되실 때는 좌선을 하면서 지도를 해 주셨다. 그리고 저녁 5시나 5시 30분에 저녁 예불을 드렸다. 그리고 저녁 공양을 하고, 절에서 운영하는 명상요가 센터의 선요가 수업을 들었다. 저녁에 잠시 자유시간을 가진 뒤에 잠자리에 들었다. 100일간 이런 생활을 반복했다.


잠깐이었지만, 스님들과 함께 한 이 시간이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상의 명상을 실천하는 데 큰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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