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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 Mirror May 08. 2024

몸을 움직이기

2부. 변하는 중입니다

"너는 내게 매일 전화하도록 해라. 네 목소리가 행운을 부를 수 있도록. 내가 못 받더라도 빠지지 말고 해라. 그만두라고 할 때까지 매일 하도록 해라. 언젠가 네 목소리가 비단 같아지면 우드스톡의 자유가 찾아온 것이다."


신화학자 조셉 캠벨이 독일 유학 중에 박사 논문을 접고 뉴욕의 우스드톡 숲으로 들어갔다. 1년에 20달러짜리 오두막에 세를 들어 살기 시작했다. 그는 최소한의 생활비 마련을 위해 재즈 밴드에서 색소폰을 부는 시간을 제외하고 4년간 오두막에 처박혀 독서만 했다. 제대로 된 사람이 쓴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캠벨은 독서로 일정 궤도에 오르면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마음이 즐거워지기 시작한다고 했다. 4년의 시간 동안 마음에 드는 작가가 있으면 붙잡고 그 사람이 쓴 책을 모조리 읽었다. 그리고 그 작가가 읽은 책을 또 읽었다.



조셉 캠벨의 우드스탁에서 보낸 시간이 부럽다고 쓴 글에 나의 스승이신 구본형 선생님이 ‘매일 전화하라’는 미션을 댓글로 남겨 주셨다. 당시, 나는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 우울증은 나를 현재, 지금에 머무르지 못하게 만들었다. 과거의 어느 선택 혹은 시점을 후회하고 있거나 영원히 오지 않을지 모르는 미래의 파랑새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내게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의 우드스톡의 시대는 지금이다. 지난날 속에서 찾지 마라. 책 속에만 우드스톡이 있는 것이 아니다. 방황이 있는 곳에, 슬픔이 있는 곳에, 고독이 있는 곳에 우드스톡은 있다. 우드스톡이란 네가 진심을 다하는 곳이다. 그 일 때문에 네 하루가 온통해지는 곳이다. 늦었다 하지 마라. 나도 우드스톡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이기를 바란다.”


나는 전화보다 문자가 편하다. 첫 직장에서 영업을 하면서 전화를 그렇게 많이 했어도 끝내 전화 통화는 익숙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퇴사한 이후 전화로 소통하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 나는 통화를 하더라도 아주 짧고 굵게 필요한 말만 하고 끊는 편이다. 이런 내게 누군가에게 매일 전화를 해야 한다는 건 매우 큰 도전이었다. 


어찌 됐든 사부님에게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번호를 찾고 통화 버튼을 누르고 신호음이 들리기 시작하면 나는 속으로 간절히 외쳤다.


‘받지 마세요, 사부님. 제발.’


음성메시지로 넘어가는 시점까지 전화를 받지 않으시면 나는 기쁜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전화를 받으실 때면 나는 늘 ‘안녕하세요, 사부님!’하고 인사를 드렸다. 하지만 그때부터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긴장했다. 사실 사부님도 평소 과묵하신 편이고, 말씀이 별로 없는 편이다. 그런 사부님은 전화 통화에서 내가 어색해하고 있으면 늘 이렇게 물어보셨다.


“그래, 오늘은 무얼 했니?”


선생님께 ‘오늘 무엇을 했는지’ 말씀드리기 위해서 나는 매일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선생님의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2박 3일간 포도 단식을 하면서 내게 있어 밥보다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찾으면서 나만의 회사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름만 만들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선생님과 전화통화를 시작하면서 회사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리는 것으로 시작했다.


상상력과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회사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과 생각을 발견합니다.

이곳에서 일하는 것은 각자의 라이프 스타일과 가치의 표현이다.


회사의 모습을 정하면서, 회사 도메인을 구입했고, 디자인을 하는 지인에게 부탁해 회사의 명함을 만들었다. 그리고 블로그를 만들었다. 블로그 첫 글에 내가 만든 회사의 모습, 도메인이 담긴 명함 이미지를 올렸다.



그리고 회사의 첫 번째 프로젝트는 광고였다. 당시 즐겨 듣던 팟캐스트 진행자에게 연락을 해 팟캐스트 광고를 광고해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그래도 영업에는 자신이 있는 편이었다. 그 팟캐스트 자체가 인기가 많았기 때문에 광고를 충분히 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팟캐스트 진행자는 내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주었고, 광고문의 관련 메일 등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내 블로그에 올렸다.


그리고 ‘출판사에 맞춤형 광고 제안’을 기획했다. 꿈벗 프로그램 때 사부님이 말씀해 주신 아이디어였다. 매해 수많은 책이 쏟아져 나오는데 모든 출판사가 그 책이 꼭 필요한 독자에게 광고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 마케팅이 쉽지 않으니, 내게 그것을 한 번 해보라고 하셨다. 맞춤형 광고를 제안한다는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두 번째 프로젝트는 ‘뼛속깊이 외로운 영혼을 위한 러브 매칭 프로젝트’였다. 돈, 학벌, 직업, 나이 같은 조건들이 아닌 ‘오로지 그 사람에 대한 느낌’으로만 누군가를 만날 수는 없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프로젝트다. 실제 이 프로젝트에 관심이 있는 여자 4명, 남자 4명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리고 그들의 정보 중 일부를 정리해서 여성과 남성 각각에게 보냈다. 그중 매칭이 이루어진 사람은 있으나 꾸준한 만남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러브 매칭 프로젝트는 참여했던 사람들이 모여 애프터 파티까지 진행했고 서로의 소감을 나누며 화기애애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내가 만든 회사에서 처음으로 끝까지 완전하게 진행한 프로젝트였다.



우울증으로 무기력하게 매일 맥주 한 캔이라도 기어이 마셔야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맥주를 마시고 늦게 잠들었다가 뜨거운 아침 햇살에 눈을 떴다. 움직이기가 싫었다. 그저 나를 향해 쏟아지는 햇빛을 완벽하게 차단해 주는 무언가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랜 시간 누워서 멍하니 있다가 일어나 책상에 있던 성철스님 법문집을 꺼내 들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49재 때 셋째 큰엄마가 내게 가서 읽어보라고 챙겨준 책이었다. 


무심코 펼쳐진 페이지를 읽었는데, 이유를 알 수 없는 뜨거운 눈물이 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 눈물과 함께 가슴속 깊이 심어져 있던 응어리가 눈 녹듯 사라졌다. 어찌해야 할 줄 몰랐던 우울감 역시 눈물과 함께 조금은 사라지는 것 같았다. 법문집의 한 페이지에 정신과 전문의의 글이 실려 있었다. 그 의사는 환자들과 주위 지인들에게 부처님의 금강경과 불탄 법어 독송을 추천했다. 그 결과, 독송이 우울증과 같은 정신과 환자들의 증세 호전에 탁월한 효과가 있었다는 얘기였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이 스쳤다.


‘아, 나처럼 우울한 사람들에게 이 불탄 법어를 읽어줘야겠다.’


세 번째 프로젝트인 ‘정신건강 회복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나는 비교적 실행력이 좋은 편이라 생각한 즉시 목소리를 녹음해 편집하고 팟캐스트의 메인 이미지도 만들었다. 그리고 성철스님 불탄 법어 독송 팟캐스트를 개국했다. 구본형 선생님께도 팟캐스트의 개국 소식을 기쁜 마음으로 알려드렸다. 그리고 선생님이 내게 전화를 하라고 하신 지 100일쯤 되는 날 선생님은 내 글에 댓글을 남겨주셨다.


"어제는 통화하지 못했구나. 이제 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목소리에는 어떤 에너지가 있게 마련이다. 나는 네 목소리에 힘이 빠져 있지 않기를 바란다. 팟캐스트를 하면서 네 방송국 하나를 개국한 것이니 이제 그 목소리가 세상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겠구나. 네가 원하는 인생을 살고, 그 인생으로 세상의 어떤 하나를 좀 더 좋게 했다면 그것은 좋은 인생이다. 너도 나도 그리 될 수 있으면 좋겠구나. 살아있음의 떨림과 흥분이 있는 순간들을 많이 갖도록 해라. 이제 매일 전화하지 않아도 된다. 방송을 통해 늘 세상과 통화하도록 해라. '네가 사부님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그리울 것이다. 그 속에 숨은 세상에 대한 부드러움을 알고 있다."


선생님께 매일 전화를 할 때는 늘 부담스러운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막상 이제 그만 전화해도 된다고 하시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선생님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사부님이 전화하라고 하셨던 그 순간부터, 매일 전화를 하면서, 매일 사부님께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할 것임을 말씀드리기 위해 해 왔던 하나하나의 실행들이 모여 ‘회사’의 모습이 갖춰졌습니다. 사부님께 좋은 목소리로 전화드리기 위해 매일 집 밖으로 나오면서, 우울에서 조금 더 빨리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팟캐스트도 개국할 수 있게 되었고요! 목소리에 힘이 빠지지 않게 노력하겠습니다, 사부님!!


처음 전화드릴 때는 그렇게 부담스럽더니, 막상 이제 전화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시니, 조금 서운하네요. 매일은 아니지만, 가끔 전화드리겠습니다. ‘사부님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는 그리워지실 때쯤이요. 나머지 날들은 사부님 말씀처럼 방송을 통해 세상과 통화하고, 소통하겠습니다. 세상의 부지깽이가 되고픈, 이미 그런 역할을 하고 계신 사부님처럼 저 역시 세상의 어떤 하나를 좋게 할 수 있는 그런 좋은 인생을 살기 위해 매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며, 꾸준히 살아갈게요. 늘 제 곁에서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시는 사부님이, 저는 참 좋습니다. 감사해요, 사부님!!”


인스타그램에서 재치 있는 작명과 사람들 개개인의 진솔한 사연을 한 컷 만화로 재탄생시켜주는 키크니 작가를 좋아한다. 예능 프로그램인 유퀴즈 온 더 블록에 키크니 작가가 출연한 적이 있다. 번아웃인지 공황장애인지 모르겠지만 심장이 마구 뛰고 잠을 못 자고 밥을 잘 못 먹었던 시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때 키크니 작가는 단톡방에 모여있던 14명의 친구들에게 이런 부탁을 했다.


“하루에 한 명씩 나를 강아지처럼 산책을 시켜줘”



이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친구들에게는 충격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친구들은 매일 한 명씩 함께 산책을 해 주었다. 별 얘기 없이 그냥 걸었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의 이 시간이 키크니님의 상태가 나아지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많은 시간을 지나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게 나한테 참 도움이 많이 됐구나.’


키크니 작가는 그렇게 반년 정도를 아예 아무것도 못 하다가 ‘이제는 내가 해 보고 싶은 걸 해보자’는 생각으로 SNS를 시작했다. ‘그림 재밌어요’, ‘만화 재미있어요’ 이런 댓글이 달리면서 그것 자체로 힐링이 되고 감사한 마음에 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꾸준한 활동을 이어올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나 역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선생님이 나를 우울에서 건지기 위해 매일 전화를 하라고 하신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선생님께 전화를 드리면서 매일 하나씩 실행했던 100일의 시간이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사람’ 임을 다시 깨닫게 해 주었다. 


우울할 때는 몸을 정말 움직이기가 힘들다. 책 <우울할 땐 뇌과학>에서는 우리를 소용돌이처럼 휩쓸어 늪의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우울증의 하강나선이 작동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일어난 일과 우리가 내린 결정이 뇌 활동을 변화시켰기 때문이라고 한다. 뇌 활동이 불리한 쪽으로 변하면 부정적인 생각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통제를 벗어나는 상황이 벌어지고, 이는 뇌의 부정적인 변화를 더욱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이어진다. 이 우울증의 하강 나선이 심각한 문제인 이유는 단순히 기분을 저조하게 만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저조한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뇌는 그 상태에 붙잡혀 빠져나오지 못하고 우울증은 중력처럼 인정사정 보지 않고 밑으로만 끌어당긴다. 


하지만 한 발자국을 움직이기 시작하면 조금씩 에너지가 회복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특히 걷기 명상은 기분이 좋아지는 방법 중 하나다.


#명상법을 배우기 전, 나의 걷기 습관

걸을 때 나의 시선과 관심은 늘 밖을 향해 있었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행인, 길가에 있는 가로수, 지나가는 차와 차소리, 배가 고플 때 맛있는 걸 파는 가게의 간판,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 등 눈에 보이는 것들이 바로 내 관심 안에 있었다.


사람들 중에는 스치며 지나간 사람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전부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옆에 누군가가 있다면 방금 본 그 사람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기도 한다.


“야, 봤어, 봤어? 저 사람? 얼굴이 어떻고, 몸매가 어떻고…”


나는 기본적으로 남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타인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지진 않는다. 하지만 걸어 다닐 때 나의 관심이나 주의가 나 자신보다는 바깥의 무언가에 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명상법을 배운 직후 걷기 명상 연습

명상센터 원장님께 늘 나의 내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 주는 명상법을 배웠다. 스님이 지도해 주시는 그 순간만큼은 남이나 바깥 경계가 아닌 나 자신과 나의 내면에 고요하게 집중할 수 있었다. 이렇게 명상을 하고 나면 아무 이유 없이 기분이 참 좋아졌다. 일주일에 1번, 스님과 함께 명상을 하고 나면 늘 즐겁고 기쁜 마음이 들었다. 스님은 앉아서 하는 명상뿐만 아니라 일상에서의 명상을 늘 강조하셨고, 나는 꾸준히 연습하고 싶었다.



명상법 지도를 받은 주말이었다. 짝꿍과 함께 의정부에 있는 백화점에 갔다. 늘 주변 상황과 사람을 의식하고 신경 쓰던 것이 습관이 되어 그런지 사람이 많고 복잡한 백화점에서 일상의 명상법을 실천하려다 보니 정신이 더 어지러워졌다. 눈앞에 보이는 것들에 나도 모르게 신경이 쏠렸다. 그러는 중에 나는 의식적으로 내면에 집중하려 했다. 마치 초점 다른 안경을 두 개 겹쳐 쓴 것처럼 시야가 흐려지고 어지러워졌다. 이 날 백화점에서의 어지러웠던 기억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아주 선명하게 남아 있다.


#명상법을 배운 몇 년 후

스님이 알려주신 대로 한 발, 한 발을 잘 느끼면서 걷기 시작한다. 그렇게 걷다 보면 어느새 나는 나의 내면에 집중하게 된다. 얼마 전 몸의 컨디션이 무척 안 좋은 날이 있었다.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거리다 집을 나섰다. 15분 정도 걷는 거리였는데, 5분 정도 지나자 무거웠던 기운이 싹 사라지고 마치 내 몸 자체가 깃털이 된 것처럼 가볍고 기분이 좋아졌다.



몇 년 전, 백화점에 갔을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오롯하게 걷고 있는 내면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쉬워졌다. 스님은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초점을 잘 맞추어라’ 두 개의 안경 중 바깥을 향하던 안경은 사라지고, 내면을 바라보는 하나의 안경에만 초점이 딱 맞추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는 걷기 명상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내면의 안경에 초점을 맞추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점차 짧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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