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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 Mirror May 01. 2024

독립

2부. 변하는 중입니다.

‘이러다가 엄마랑 나 둘 다 죽겠어’


엄마와의 갈등이 극심했던 어느 날, 통장 잔고는 ‘0’이었지만 독립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독립에 대한 의지와 간절함으로 SH공사나 LH 공사에서 하는 임대 주택 공고가 뜰 때마다 지원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임대 주택 원룸에 덜컥 당첨되었다. 흐릿한 안개 속에 있던 ‘독립’이란 꿈이 선명한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보증금 1,300만원의 ‘돈’이라는 장애물이 나타났다. 이번이 바로 내가 독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어떻게 해야 할까. 



엄마는 예전부터 엄마가 밥 먹여주고 재워줄 때 돈이나 모으라면서 독립할 때 절대 도와주지 않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엄마 말대로 독립을 하면 생활비와 월세 등으로 저축할 돈은 없겠지만 정신적인 자유와 여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었다. 그리고 그 정신적 자유와 여유는 내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용기와 에너지를 만들 것이다. 고 박원순 시장이 만들어 놓은 청년을 위한 대출이 가능했다면 바로 신청했겠으나, 2012년에는 일자리가 변변치 않은 젊은이에게 대출을 해 주는 제1 금융기관은 없었다.


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법을 찾았다. '일을 하고 있는 동생 이름으로 대출을 받을 수 있을까?' 싶어 은행에 알아보니 ‘본인이 반드시 와야만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하지만 동생은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고, 동생에게 고민을 전하자 겨울방학 때 한국에 온다고 했다. 돈이라는 장애물을 넘을 수 있는 방법이 눈 앞에 나타났으나, 그 방법이 실현되기까지 아직 두 달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하루도 길게 느껴지는 내게 두 달의 시간은 마치 영원히 오지 않을 것처럼 길게만 느껴졌다. 


‘과연 두 달 동안 엄마와 함께 있는 이 공간에서 심신을 편안하게 유지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루라도 일찍 독립할 수 있을까? 고민을 끝없이 물고 늘어지다 보면 어느 새 머리 속에는 해결 방법이 그려지곤 했다. 


‘그래, 계약금이 1,300만원이니까 10만원씩 130명에게 투자를 받으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곧장 홍대 카페로 향했다. 카페 2층에 앉아 길가의 가로수를 바라보며 노트북을 펼쳤다. 햇빛 쨍쨍한 오후에 들어가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독립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기획안을 써 내려갔다. 쓰면서 구체적인 내용들이 떠올랐다. 기획안을 쓰고, 서포터즈 신청서를 마지막으로 만들었다.


'신치의 독립자금을 모으기 위한 130명의 서포터즈를 찾습니다'

130명에게 10만원씩 소셜 펀딩을 받아보기로 했다. 내게 펀딩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에 두 가지 조건을 걸었다. 하나는 나를 만나서 1시간 이상 대화를 나눠 본 사람, 그리고 두 번째 조건은 나에 대한 기대감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었다.


2012년 12월에 입주가 계획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때부터 매달 최소 1명에게 10만원씩 연단리 4%로 상환할 계획을 밝혔다. 처음 신청할 때 각자가 정한 회차의 순서대로 상환한다. 그리고 상환 소식은 블로그에 매달 업데이트하고 130명의 서포터즈에게는 개인 이메일로 소식을 전하기로 했다. 경제적 상황에 따라 매달 상환 금액이 늘어나거나 한 번에 상황하게 될 수도 있다. 목표는 3년 이내애 전체 상환하는 것으로 정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궁금해할만한 내용을 QnA로 작성해 보았다.


Q1. 10만원보다 적게 혹은 많이 투자할 수는 없나요?

네. 10만원, 130명. 필요자금 덕분에 우연히 나온 숫자이긴 하지만, 현재 꾸려질 130명의 서포터즈와 함께 나중에 무언가 재미있는 프로젝트들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더 적은 금액으로 투자하고 싶은 분들은 아마 그만큼 경제적 여유가 없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부담 드리고 싶지 않아요. 마음으로 응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0만원보다 많이 받으면 당연히 더 빨리 독립자금이 모일 수 있겠지만, 더 큰 금액은 저한테도 부담이고 금액보다 서포터즈 숫자에 좀 더 의미를 두고 싶기 때문에 더 투자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더 크게 응원해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다른 분들에게 널리널리 소문 내 주셔도 큰 도움이 되겠지요.


Q2. 소셜 펀드치고 금리(4%)가 너무 낮은 것 아닌가요?

네. 많이 낮습니다. 사실 기존의 소셜 펀딩 업체들에서는 더 많은 금리(10% 이상)를 주거나 색다른 보상방식(예를 들어 여행 경비를 펀딩 받고, 여행지에서 직접 그린 그림엽서를 선물로 보내는 등의)을 채택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은행권을 통한 대출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출이 가능한 시기가 12월입니다. 사실 이 프로젝트를 한 가장 큰 이유는 하루라도 빨리 ‘독립하고자 위함’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돈을 마련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로써 나온 것이 독립자금을 모으기 위한 소셜펀딩 프로젝트입니다. 그래서 은행 금리랑 거의 비슷하게 책정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고정지출이 현재도 많아서 제가 현실적으로 상환시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책정된 금리입니다. 한 마디로 ‘이기적인 금리’인 것이죠.^^;


Q3. 서포터즈에게 다른 혜택은 없나요?

실험하는 아이디어 컴퍼니나 저의 개인적인 미래는 ‘언제나 불투명’하기 때문에 ‘무엇을 해드리겠’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불투명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저의 서포터즈가 되어주실 분들께 생에 한 번쯤은 보상을 할 기회를 반드시 만들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Q4. 상환이 끊기게 되면 어떡하죠?

제가 살아있고, 건강하게 경제활동을 하는 동안은 절대 끊기지 않게 처음의 약속을 지킬 것입니다. (그럴 일은 절대 안 만들테지만) 혹시 상환을 할 수 없게 되는 달이 생기면, 사전에 메일 등을 통해 양해를 구할 것입니다. 잠수타거나, 몇 억도 아니고 1,300만원으로 130명에게 신뢰를 잃는다는 것은 참 바보 같은 짓이죠. 해외 도피 등의 일은 절대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불의의 사고로 경제활동을 못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보험금으로 어느 정도 충당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 이런 일은 없어야겠죠.)


Q5. 만나서 얘기해 본적은 없지만 투자하고 싶으시다고요?

‘서포터즈’를 저의 지인으로 정한 것은 저를 알고 계신 분들이 제게 가지고 있는 신뢰를 믿기 때문이고, 그런 분들이 도와주셔야, 저도 더 큰 용기를 내어 앞으로 제게 닥쳐올지도 모르는 힘든 상황들을 잘 이겨낼 수 있을거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모르는 분에게 받는 돈은 저로써도 부담스럽죠.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새로운 인연을 만드는 것도 꽤 의미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투자 결정을 하기 위한 1시간 이상’의 미팅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Q6. 서포터즈 모집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 계획인가요?

저의 지인들 대상이므로 제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분들 평소에 보내던 메일링 리스트, 페이스북을 통해 모집할 예정입니다.


Q7. 직장생활 꽤 했는데, 1,300만원도 못 모았나요?

네. 부끄럽지만 개인 사정으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졸업하고 사회생활 7년차에 접어들었는데 수중에 돈이 있기는 커녕 빚만 잔뜩 있네요. (금융권 빚은 없으니 안심(?)하세요) 사실 엄마에게 빌붙어 살다보니 좀 안일한 마음으로 산 것도 없지 않아 있고요. 정신 차리고 내 몸 하나는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스스로 건사하고자 하는 것이 독립의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합니다.


Q8. 집은 구한건가요?

네. 일이 잘 되려고 했는지, 저의 간절함을 신이 알아주셨는지 다행히 얼마 전 모 공사에서 운영하는 임대 원룸에 당첨되어 현재 보증금의 10%를 내고 계약을 한 상태입니다. 남은 보증금을 내면 10월 29일부터 입주가 가능한 상황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들어가고 싶어, 이러한 무모한 도전을 기획하게 된 것이죠. 


130명이 모두 모이면 일주일간 투자금을 받기로 했고, 130명이 다 모이지 않을 경우 프로젝트는 취소하겠다고 공지했다. 드디어 서포터즈 신청 시작! 신청이 한 명씩 들어오고 사람들이 내게 써 준 '서포터즈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를 보고 울컥 눈물이 났다.


'그대의 도전정신과 삶의 방식을 통해 대리만족을 위해 기꺼이.'

'거창한 이유는 없음. 그냥 이게 되나? 싶어서...'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모습이 아름다워서...'

'난 언제나 니편이니깐.. ㅋㅋ 뭐해도 지지한다'

'독특함, 재치, 창의적인 생각들에 흥미와 재미 그리고 자극을 받습니다. 앞으로도 즐거운 일들이 많을 거 같은 예감이 들어요.'

'힘내서 멋진 인생을 꾸려 나갈 것이라는 믿음으로~!!'

'아는 분 링크 따라 우연히 봤습니다. 잊고 있던 '청춘'이란 단어 다시 생각이나마 할 수 있게 된 작은 고마움의 표시, 그리고 그런 제 자신에게 서포팅하는 마음. 그 뿐입니다. 님의 결말이 어떠하더라도, 분명 지금 이 순간 당신, 꽤 아름답다는 걸 잊지 말길. 그걸 응원합니다. 그리고 제게도.'

'독립프로젝트라는 것이 마음에 들어서'

'독립이 간절해 보여서'

'어떤 삶을 살든 그녀의 삶을 응원하기로 했으니까. 둘. 그녀의 독립플젝이 왜 그녀에게 필요한지 인지하고 있으니까. 셋. 그녀가, 서포터즈를 모집하고 있으니까.'

'독립에 힘이 되고 싶어서요. 독립은 정말 마음 먹었을 때 확 해버려야 하는 것 같습니다. 화이팅'

'언니의 독립을 응원합니다. 가족과의 스트레스 부분이 참 공감됐어요!'

'도전을 응원하기 위해서'

'힘들 때 서로 도와야쥐~'

'독립의 쓴맛을 알았으면 함. 집에서 엄마랑 함께 있을 때가 행복하다는 걸 알게해주기 위해.'

'아이디어가 상큼해서. 혹시 투자금에 알파가 많이 나올 것 같아서. 작은 돈으로 생색낼 수 있어서.'

'재미있어서~'

'독립 생활자의 기쁨과 고난을 알기에, 그대와 함께 그것을 나누고 싶은 마음에'

'독립을 위한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시도와 용기를 지지하며'


서포터즈 신청 기간은 한 달이었다. 페이스북에 올리고, 첫 직장 때부터 메일 보내던 분들에게도 간절한 마음을 담아 소식을 전했다. 올린지 이틀만에 첫 번째 서포터즈가 나타났다. 한 달의 모집기간이 끝났고 나의 간절함에 총 31명의 서포터즈가 응답해 주었다. 애초에 약속한대로 130명 모두가 모이지 않아 프로젝트를 취소해야할 상황이 되었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만들어 주었던 공사의 임대 원룸에 입주하기는 어려워졌다. 하지만 독립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하고 싶었다. 처음에 공지한 계획을 변경하기로 했다. 만약 이렇게 바꾸겠다고 하면 서포터즈가 되기로 한 사람들 중 일부는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최소한 20명은 계속해서 서포터즈가 되어 주지 않을까?


서포터즈 신청 결과를 알리기 전에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친구에게 소개 받은 부동산 사장님에게 나름 절박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사장님 친구 소개로 연락드렸는데, 혹시 보증금 200만원짜리 집이 있을까요?"

"휴~ 쉽지는 않겠지만 한 번 구해보죠!"


다행히 몇 시간 후 사장님에게 전화가 왔다.


"집이 몇 개 있네요. 언제 시간 되요?"

"내일 갈게요!"


다음 날 집을 네 군데 정도 보여주셨다. 첫 번째 집은 역에서 도보로 10분정도 거리에 있는 집이었고, 반지하였다. 작지만 아담하고 깔끔했다. 하지만 역에서 너무 멀고, 집으로 가는 골목길이 좀 무서울 것 같았다. 


두 번째 집도 지하였다. 지하철역에서 그리 멀지는 않았다. 지은지 얼마 안된 집이라, 깨끗했으나 햇빛이 너무 안 들었다.


세 번째 집은 2층에 새로 리모델링한 원룸이었다. 큰 창이 두 개 있고, 햇빛이 잘 들어왔다. 옆집에 두 여자분이 살고 있다는 것도 왠지 안심이 되었다. 게다가 '이 조건에 2층이라니?' 놀라웠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집은 오피스텔 3층에 있는 집이었다. 1층은 식당이었고, 방이 긴 직사각형의 원룸이었다. 원래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40만원인 집인데, 200만원에 30만원에 주기로 하셨다고 한다. 아마 방을 놀리기보다 싸게라도 내놓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그런데 왠지 1층 식당과 길가로 나 있는 창을 통해 차 지나가는 소리 등 소음이 심할 것 같았다. 


4개의 집을 보고, 부동산으로 돌아가 어느 집을 선택할지 사장님이 물었다. 


"사장님이라면 어느 집을 선택하시겠어요?"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세 번째 본 2층 집으로 할게요!"


사장님이 환하게 웃으며,

"잘 생각했어요!!! 햇빛도 잘 들어오고, 그 집 괜찮죠? 이 돈에 그런 집 구하기 힘들어요." 


계약서 쓸 날짜를 정하고, 뒤돌아 나오려는데 부동산을 같이 운영하고 있던 동생분에게 집을 급하게 구하고 있는 다른 사람에게 네 번째에 봤던 그 집을 얼른 보여주라고 말하고 있었다. 1년이 지나서야, 이 장면이 이렇게 생생하게 떠오르는 건 그 때 내가 선택해야 했던 집이 바로 네 번째에 본 오피스텔 3층이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계약서를 쓴 뒤, 독립 프로젝트 기획안을 썼던 그 카페에 앉아 서포터즈를 신청해 준 한 명, 한 명에게 메일을 보냈다. 처음 기획할 때와 바뀐 상황 그리고 1,300명은 안 모였으나 프로젝트를 그대로 진행하기로 결정하게 되었음을 밝혔다. 메일 끝에 계좌번호를 적었고 ‘독립’이라는 흐릿한 꿈을 선명한 현실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도와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서포터즈 중 한 분이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대가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내려올 때 보았네.

이 투자를 받는 결과로

세상을 다시 볼 거에요.

성공하든 아니든..

잘 되야 해..”


결국 나의 독립은 최종 22명의 서포터즈가 입금해 줌으로써 성공했다. 독립이라는 이기적인 나의 욕망에서 시작한 ‘독립자금 마련을 위한 소셜 펀딩 프로젝트’에서 올라갈 때 보지 못했으나, 내려올 때 볼 수 있었던 그 꽃은 과연 무엇일까?


그 꽃은 아마도 '사람'인 것 같다. 나의 꽃이 되어준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실제로 표현해주신 분들, 말 없이 지켜봐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감사라는 단어로는 많이 모자라지만, 나를 향한 이 에너지들이 모여 결국 나는 살아낼 것이고, 내 삶의 어느 부분에서 나 역시 누군가에게 '꽃'이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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