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d Mirror Apr 10. 2024

힘들다고 소문내기,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

2부. 변하는 중입니다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짜기라도 한 것처럼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만 했다. 어느 작은 하나라도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같은 극의 자석처럼 사람들과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계속해서 나를 거부하고 밀어내는 것만 같았다.


그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매일 밤 술을 마시고, 술 마실 사람들을 찾는 것뿐이었다. 내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표현할 줄도 몰랐던 내게 SNS는 대나무숲이었다. 매일매일, 순간순간의 감정과 마음 그리고 나를 둘러싼 상황을 SNS에 계속해서 올렸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진 진실을 사람들을 향해 크게 외쳤다. 

“나 힘들어요.”

“이러다 죽을지도 몰라요.”


우울증이 심해지고 내 마음을 스스로 컨트롤하기 어려운 시기가 왔을 때 주변의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 나의 우울은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 


비교하는 마음

‘끊임없이 비교하는 마음’

‘스스로를 비난하는 마음’

‘기대와 현실의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


이런 마음이 모여서 만들어낸 우울이라는 큰 파도가 내 인생을 덮치기 시작했다. 내 마음속에는 언제나 ‘기대하는 내 모습’이 있었다. 


이름만 대면 알 법한 회사에서 커리어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모습

돈을 잘 벌어 후배들에게 척척 술을 사는 모습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스스로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모습

하지만 정작 지금의 내 모습은 나의 기대와는 정 반대였다. 첫 직장을 다닌 지 3-4년 정도 된 어느 날이었다. 대기업에 막 취직을 한 동기들과 함께 동아리 후배들에게 술을 사러 갔다. 웃고 떠드는 동안 많은 안주와 술을 시켜 먹었다. 안주를 하나 시킬 때마다, 술이 추가될 때마다 나는 불안했다. 결재해야 할 금액을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술자리가 무르익을 때쯤 계산해 보니 1인당 5만 원 정도 내야 할 것 같았다. 통장에 현금이 하나도 없었던 나는 잠깐 화장실에 가면서 밖으로 나가 현금 서비스를 받았다. 내 입은 웃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웃을 수가 없었다. 


‘단돈 5만 원이 없어서, 현금 서비스까지 받니. 돈이 없으면 사람을 만나지 말아야지. 지금 뭐 하는 거야?’


학생일 때 취업한 선배들이 와서 술을 사는 것을 보고 나도 취업하면 저렇게 할 수 있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직장인이 되었으나, 내 상황은 그때 본 선배들과는 달랐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기대하는 모습과 다른 현재의 나를 보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언제쯤 내가 바라는 그런 모습이 될 수 있을까?’


행복이라는 가면

“행복한 척하지 마.”


친구가 내게 이 말을 했을 때, 나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행복하다고 믿었으니까. 아니, 믿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SNS에 쓴 나의 우울한 글을 보고 도와준 지인 덕분에 뿌리 깊었던 나의 무의식을 자각하게 되었다. 


'나는 단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행복하다'라고 믿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행복'이라는 가면을 쓰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였을까?


어린 시절,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았던 나는 초, 중, 고등학교를 거치며 친구들이 할 수 없었던 각종 스포츠와 악기 등을 섭렵하면서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대상이 되곤 했다. 남들이 스키를 타기 시작할 때, 이미 스노보드를 배우고 있었고, 피아노 학원에 다닐 때, 플루트를 시작했다. 무엇이든 '남들이 하지 않는 무언가'를 할 때 생기는 부러움의 시선과 그로 인한 우월감을 즐겼다. 


스위스의 정신분석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칼 구스타프 융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원하는 나의 모습, 사회적 역할에 따라 달라지는 외적 인격인 페르소나가 존재하므로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과 상호관계를 맺고 환경에 적응하며 살 수 있다고 했다. 이 페르소나와 다른 의미로 사람의 내면을 융은 '자기'라고 표현했다. 고대 에트루리아의 어릿광대들이 쓰던 가면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페르소나는 진짜 내면인 자기를 숨기고 '외적 인격'이라는 가면을 쓴 것을 뜻한다. 

자기와 페르소나의 이중생활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됐다. 학교에서는 항상 잘 살고 행복한 아이인 척했다. 하지만 진짜 우리 집은 내게 마치 감옥과 같았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핵폭탄처럼 엄마아빠의 싸움이 일어날까 늘 노심초사하며 집에 있던 시간은 내게는 공포였고, 긴장의 연속이었다. 조금이라도 큰 소리가 날라치면, 내 심장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쪼그라들었다. 


전혀 행복하지 않은 가족이었지만, 남들에게만큼은 그런 내 가족의 모습을 들키기가 싫었다. 그래서 더 우리 가족들을 만날 수 없는 사람들 앞에서는 더없이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의 모습을 보이려 애를 썼다. 우리 가족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었던 동네에서는 '인사 잘하는 예의 바르고 착한 어린이'였다.


중고등학교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늘 조마조마한 24시간이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나의 분노가 극에 달해 칼을 가지고 아빠를 향해 달려간 그 사건으로 부모님에게 엄청난 충격을 준 후, 가족은 서로 조심하기 시작했다. 근본적인 원인들은 제거되지 않은 채, 그저 눈앞에서 핵폭탄이 터지는 횟수가 조금 줄었다. 하지만 긴장감은 나의 일상이 되었다. 보여주기 위한 행복이란 가면은 내 진짜 얼굴인지 가면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점차 나와 하나가 되어 갔다.


심리학에서는 페르소나와 진짜 내면인 자기 사이의 균형을 잘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각자가 가진 역할에 맞는 가면을 제대로 쓰지 못하면 사회적 관계가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페르소나에 너무 치우친다면 가면을 쓴 모습만 알고 좋아하는 이들에게 나의 진짜 모습을 들킬까 봐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나를 떠나거나 비난할까 봐 두려운 마음이 생길 수 있다.

매년 반이 바뀌고, 친했던 친구들과 물리적으로 떨어질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것은 당시의 내게 축복이었다. 행복의 가면을 1년 동안만 잘 보여주면, 그 이후에는 더 이상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도 되고, 가면을 벗은 내 얼굴을 들킬 일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나의 인간관계란 점차 일회용, 아니 일 년용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4년의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는 동기들이 있는 대학이란 공간에 왔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만나는 사람들이 바뀌지 않는 이 공간이 정말 낯설었다. 그래서 나는 대학에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공간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에게 행복한 나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내가 그린 그림, 내가 쓰는 글, 어쩌다 하게 된 심리 검사 등은 감추고 싶은 내면의 모습, 나도 모르는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우울하고 불행한' 나를 여과 없이 보여 주었다. 절대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진짜  나의 모습이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변하고 싶었지만, 여전히 나는 가면을 쓰고 사람들을 만났다.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 가면이 가면인지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어떤 일을 새롭게 시작해도, 금세 싫증이 나고, 이유 없이 하기가 싫었다.

대책 없이 무기력해지자 해야 하는 모든 일들에서 손을 떼고, 그저 집에서 아무 생각 없이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거나, 드라마를 보고, 맥주를 마셨다. 어쩌면 사람 관계에 그렇게 집착했던 것도 그 관계에서 작게나마 위안을 얻어보려고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마저 보험영업을 그만두면서 기존의 관계들과 멀어지고,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면서 그나마 위로받을 수 있었던 것마저 사라졌다. 그렇게 점차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도 잃어갔다. 무슨 일을 해도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융이 자주 말하듯이 "유일하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고통이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무기력감은 말 그대로 고통이었다. 그런데 이제 내 인생의 발목을 잡고 있던 '행복한 적이 없는 나'를 발견했다. 그렇다면, 이제 나는 무얼 해야 하지? 나를 진정으로 행복해 줄 수 있는 것을 찾는 거? 지금까지의 나를 다시 분석하는 것? 일단 행복의 가면을 조금씩 벗겨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까운 사람들부터 나의 진짜 민낯을 보여 줘야겠다. 나 스스로도 어색해지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조금씩 가면을 벗은 모습에 익숙해지면, 다른 것들도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어떤 상황에서도 ‘이래서 행복해요, 저래서 행복해요.’라고 얘기하던 나였다. 그런데 그 행복감이 거짓이었음이 드러났다. 마음속 깊은 곳의 진실을 마주하고 나니, 현재의 내 모습이 그제야 보였다. 


행복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지금의 내 모습을 비로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