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명상 전 이야기
남동생이 태어나고 온 가족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 주신 집으로 이사를 왔다. 다같이 잠든 어느 새벽 나는 잠에서 깨고 말았다. 다시 잠들려고 하는데 방 안에서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 인생 처음으로 온갖 욕설을 들었다. 엄마를 향해 퍼붓는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양 무릎을 사이에 얼굴을 박았다. 그리고 온 몸을 꽁꽁 묶듯이 힘을 주고 이불 속에 있었다. 혹여 내가 깨어 있다는 걸 엄마나 아빠가 알까봐 숨소리도 죽인 채 말이다.
잠시 후 아빠가 엄마를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퍽, 퍽’
마치 내가 맞는 것 같았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엄마는 그렇게 맞으면서도 아이들이 깰까봐 전전긍긍했고, 아빠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욕을 하면서 엄마를 때렸다. 그렇게 이불 속에서 꼼짝하지 않은 채 그 소리를 들으며 생긴 공포감은 작은 꼬마의 몸과 마음 속에 그대로 각인되었다.
얼마 후 처음으로 엄마와 아빠가 아이들 앞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였다. 그 후로 아빠는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지 않고, 화가 나는 즉시 폭력을 시작했다.
중학교 1학기 기말고사가 있던 어느 여름 날이었다. 시험 기간이라 모처럼 밝은 낮에 온 가족이 집에 모여 있었다.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자동으로 긴장했고, 온몸의 세포들이 꽉 조여 들었다. 이런 긴장과 스트레스 속에서 나는 무기력한 존재라는 참을 수 없는 고통과 두려움으로 꽉 찼다. 그리고 그 고통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고 말았다.
“아빠 죽여 버릴거야!!!”
중학생이었던 나는 부엌에 있던 식칼을 손에 들고 아빠를 향해 달려갔다. 손에 커다란 식칼을 들고 아빠를 향해 달려갔으니 칼 끝은 아빠의 어떤 부분도 건드리지 못했다. 칼끝이 아빠에게 닿기 전에 엄마가 내 손에서 칼을 가져 갔다.
“우리 아가 착하지. 그 칼 이리 줘.”
이불 속에 있던 그 아이처럼 이 날도 나는 펑펑 울었다. 너무 울어서 정신이 흐릿해질 정도였고, 그 뒤의 장면은 필름이 끊기듯 내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책 '내 감정에 잡아 먹히지 않는 법'에서 분노를 부르는 것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정서적, 신체적 고통이라고 했다. 돌아보면 아빠는 늘 그런 고통과 스트레스 상황에 놓여 있었다. 내가 태어난 직후 아빠는 사고로 뇌를 다쳤다. '깨어나기 어렵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아 몇 달간 식물인간처럼 있었다. 다행히 뇌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어렵게 깨어났다. 하지만 사고가 나기 전의 건강할 때와 전혀 다른 삶이 펼쳐졌다. 한 쪽 다리가 짧아져 절룩거렸고, 마른 체형에 가볍고 날렵했던 몸은 살이 붙어 통통해졌다. 뇌 수술로 인해서 그런지 생각하고 결정하는 감각이 조금 둔해졌다.
할아버지가 하시던 사업을 도와 일을 하던 중에 사고가 났기 때문에 아빠가 다친 후에도 우리 집의 경제적인 타격은 크지 않았다. 할아버지 회사에서 가족 생활비를 매달 주셨고, 심지어 아빠 용돈은 따로 주셨다. 다만 아빠가 회사에서 계속 일을 할 수는 없었다.
아빠는 사고 후에도 가장으로써, 사회 구성원으로써 자신만의 일을 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다리를 절룩거리는 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었다. 택시 운전을 시도했다. 하지만 매일 내는 사입금 이상을 버는 것이 힘들었는지 아빠는 얼마 후 일을 그만 두었다. 그리고 참외, 사과를 파는 과일 장사도 시작했다. 할머니는 과일 장사를 하겠다는 아빠에게 회사에 있던 1톤 트럭을 보내주셨다. 하지만 그 과일 장사 역시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사실 아빠에게 찾아 온 가장 큰 문제는 우울증이었다. 사고 전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 아빠에게 우울증이 찾아왔다. 거의 매일 우울증약을 복용했고, 약은 아빠를 더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이전과 다른 삶을 살게 된 고통과 우울증은 아빠 스스로를 ‘자기 자신’에게만 몰두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엄마와의 관계에서 자주 분노라는 감정을 일으켰으며 이는 싸움과 폭력으로 번졌다.
절대 아빠를 닮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내가 중학생이 된 어느 날 아빠와 똑같이 폭력적인 방법으로 분노를 표현하고 있었다. 나의 분노가 폭발했던 그 순간을 본다. 아빠는 왜 저렇게 쉽게 화를 낼까? 도대체 어른인데도 왜 저렇게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늘 아이들 앞에서 엄마를 때리고 욕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까? 항상 의문이었다.
나는 식칼을 들고 아빠를 향해 달려가면서 '제발 그만' 하라고 외쳤다.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든 분노를 표현하는 이유는 상대방이 내 말을 듣게 하기 위해서다. 더 이상 우리들 앞에서 싸우지 말라고 얘기하고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사건 이후로 아빠가 아이들 앞에서 조심하려는 것 같았다. 나는 분노를 표현함으로써 가슴 속의 응어리가 조금은 풀리는 듯 했다.
내 '분노'라는 감정을 표출한 순간을 보니 아빠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동안 나는 아빠에게 맞는 엄마에 대한 연민의 감정만 가지고 있었다. 아빠가 화를 낼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이해는 전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