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명상 전 이야기
“엄마랑 아빠랑 맨날 그렇게 지지고 볶으며 싸우는 걸 봤는데. 결혼한 남동생이나, 결혼할 생각이 있는 내가 이상한거지. 언니가 정상이야.”
3주간 여행을 온 동생이 ‘결혼’하지 않고 사는 내가 마음에 안 든다는 엄마의 말에 한 말이다.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여동생을 향해 엄지척을 날리고 하이파이브를 하며 함박 웃음을 지었다. 역시 내 마음을 알아주는 건 여동생 밖에 없다.
나는 왜 결혼하기가 싫었을까?
아빠와 엄마가 싸울 때마다 이불 속에서 울며 생각했다.
‘사랑하고 행복하자고 결혼을 했는데 도대체 왜 원수 대하듯 저렇게 매일 싸우는 거지? 저렇게 싸우면서도 헤어지지 않고 같이 사는 이유는 도대체 뭐야? 아이들 때문에? 아이들 앞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오히려 정신 건강에 안 좋다는 생각은 안 드는건가? 이혼하고 각자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이 아이들 정신 건강에 더 좋을 것 같은데…나를 이렇게 괴롭힐거면 나는 또 왜 낳은거냐고!’
어린 마음에 부모님이 싸우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조금 커서는 아빠를 말리기도 했지만 나는 여전히 아빠 앞에서 너무나 작고 약하고 무력했다. 내 의지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이렇게 괴로운 하루하루를 보내느니 차라리 확 죽어버리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님이 원망스러웠다. 두 사람을 저주하는 마음까지 생기기도 했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가 잘못인 것 같았고, 나의 존재 자체를 부정 당하는 듯 했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아이가 태어난 것 같은 느낌 말이다.
"나는 결혼 안해!"
결혼에 대한 나의 의지는 어릴 때부터 확고했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나 싸우지 않고 살아갈 자신도 없었다. 또 마음 한 켠에는 ‘내가 과연 한 사람만 영원히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도 있었다. 어찌됐든 결혼이라는 것을 하고 법적으로 부부가 되면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죽을 때까지 평생 한 사람의 짝이 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어떻게 하지? 한 사람만 평생 사랑할 자신이 없어.’
달콤 쌉싸름한 밀고 당기는 연애의 감정을 결혼하는 순간 다시는 경험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나는 연애 시작 전의 밀고 당기는 연애감정과 연애초기의 화르륵 불타오르는 사랑의 감정이 좋은데, 다시는 그런 감정을 경험하지 못한다니 생각만 해도 왠지 우울했다.
어느 날 직장 선배가 내게 소개팅을 해 보겠냐고 물었다. 소개팅을 한 번도 해 본적이 없었기에 나는 좋다고 했다. 그리고 선배에게 물었다.
“근데 왜 저를 소개해주시는거에요?”
“그 친구 이상형이 ‘담배 피고 결혼 생각 없는 여자’거든”
“아. ㅋㅋㅋ”
이상형이 독특한 그 사람인지 몹시 궁금했다. 대개 소개팅은 남자가 먼저 연락하는 편이지만, 연락처를 받아서 내가 먼저 연락을 했다. 큰 키에 굉장히 젠틀하고 조용한 성격의 남자 분이었다.
소개팅을 하고 우리는 두세 번 정도 만났다. 담배를 피고 결혼 생각이 없다는 이상형의 조건은 맞았지만, 다른 것이 그리 잘 맞지는 않았다. 나는 술을 좋아했고, 그 사람은 술을 거의 안 마셨다. 함께 있을 때 나눌 수 있는 대화의 주제에도 공통점이 적었다. 두 사람 모두 내향적인 성격이었다. 나는 사람들과 있으면 말을 주로 듣는 편인데, 상대방도 그랬다.
나는 술을 마시면, 그제서야 말이 조금씩 많아졌다. 하지만 약간의 취기가 돌기 전까지 둘의 대화는 계속해서 뚝, 뚝, 끊겼다. 결국 내 인생 최초이자 마지막(?) 소개팅남과의 만남은 다섯 번을 넘기지 못하고 끝이 났다.
그 사람과의 대화에서 기억에 남는 부분은 전 여친에 대한 내용이었다. 꽤 오랜 시간을 만나고 많이 좋아했지만, 여자 친구가 결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본인은 결혼 생각이 없어서 결국 헤어졌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쵸. 상대가 결혼을 꼭 하고 싶어 한다면, 그 사람을 위해 헤어져 주는 게 맞죠.”
결혼을 꼭 해야만 하는 사람이 있고, 결혼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사람, 결혼은 절대로 하기 싫은 사람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결혼을 하고 싶어도 제도적으로 할 수 없는 사람 역시 존재한다. 결혼에 대한 생각이 맞지 않으면 오랜 시간 연애를 하고 결국 헤어져 버려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더 슬픈 상황은 이 사람을 정말 사랑하고 좋아하지만 ‘결혼’ 때문에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 사람의 얘기를 들으며 그 여자를 생각했다.
‘과연 그 여자 분은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을까?’
나는 기본적으로 ‘남들처럼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숙제처럼 결혼해야겠다는 생각도, 남들이 하니까 나도 꼭 결혼을 해야된다는 생각도 전혀 없다. 진짜 좋아하는 사람, 이 사람이라면 평생을 함께 할 수 있겠다는 사람이 생긴다면 고민해 볼 수는 있겠지만, 과연 내 생에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어찌됐든, 결혼이라는 장벽이 많은 연인들 사이를 가르고 있는 것 같다. 여러 번의 연애에서 짧은 시간 안에 도망쳐 버린 이유 중 하나는 무의식 중에 결혼에 대한 거부하는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연애를 오래 하고 이 사람과 더 이상 헤어질 수 없는 상황이 닥쳐 버렸을 때 ‘결혼 아니면 이별’ 두 가지 중에 선택을 해야 한다면 과연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선택해야 하는 상황 자체를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 때 결혼은 거부했으나 아이는 가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세상에서 어떤 조건도 없이 항상 든든한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이 바로 자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편은 없어도 되지만 아이는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싱글맘이 되는 것도 고려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친구들 중에 빨리 결혼하는 아이들이 생겼다. 그리고 그 친구들은 곧 아이를 낳았다. 아이를 낳은 친구집에 놀러 간 적이 있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가에게 엄마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였다. 울면 가서 밥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안아서 재워주고, 아이를 케어하는 순간만큼은 내가 아닌 엄마였다. 아이를 낳고 얼마 동안의 시간은 아이를 전적으로 돌봐야 한다. 그리고 아이를 선택한 시간만큼 나는 사회에서 점점 멀어질 수 밖에 없다.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회사로 복귀할 수 있지만, 맡길 곳이 없어서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예쁜 이 존재를 보면서 생각했다.
‘과연, 나는 내 인생과 아이를 바꿀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너무나 명확했다.
“아니.”
세상에서 제일 힘든 게 육아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육아의 과정에서 겪는 모든 고통을 단박에 상쇄시키는 것 역시 아이라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 존재를 제대로 키워낼 자신이 없었다. 한 생명을 세상에 내어 놓고, 이 사회에 한 명의 몫을 할 수 있도록 정신이 제대로 된 아이로 키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 자신도 케어하기가 어렵고, 나라는 존재도 이렇게 불안정하고 불완전한데, 이런 내가 과연 아이를 책임질 수 있을까? 하는 이 생각이 가장 컸던 것 같다. 아이라는 존재로 인해 희생하는 내 인생보다, 더 큰 걱정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제대로 키울 수 있을 것인가?’
아이를 잘 키우려면, 엄마인 나부터 건강한 심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기엔 나는 아직 너무 나약하고 건강하지 못한 상태에 있었다.
엄마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노후에 아이가 없으면 얼마나 외로운데.”
나의 노후와 외로움을 책임지게 하기 위해 아이를 세상에 내 놓는다는 건 너무 이기적인 생각인 것 같아.
“아이는 괜찮습니다. 제 노후는 제가 책임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