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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 Mirror Mar 06. 2024

자존감이 낮은 나의 연애

1부. 명상 전 이야기

첫사랑을 만난 건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여고를 다니던 나는 남고 친구의 제안에 반팅을 주선했다. 반팅을 하러 온 아이들 중에 얼굴이 까무잡잡하고, 약간의 곱슬기가 있는 시커먼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던 아이가 있었다. 키는 나와 비슷했고, 웃을 때 한 쪽 볼에 보조개가 들어가는 잘 생긴 아이였다. 친구들이 나를 그 아이 옆으로 계속 밀었다. 둘이 잘 해보라고 하는 말이 싫지 않았다.


왠지 호감이 갔다. 그렇게 우리는 번호를 주고 받았고, 그날부터 매일 연락하기 시작했다. 세 명 중 첫째로 태어나 몹시 무뚝뚝한 나와 달리 규원이는 큰 누나 한 명에 형이 두 명이나 있었다. 넷 중 막내로 사랑을 아주 듬뿍 받으며 자란 아이였다. 그래서 애정표현을 정말 잘 했다.

전화 통화를 하면 항상 ‘보고 싶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처음에는 규원이의 ‘보고싶다’는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너무나 난감했다. 몇 개월의 시간이 지나 겨우 입밖으로 꺼낸 말은 바로 이거였다.


“응. 그래. 나두.”


또 규원이는 전화를 하면, 오늘 무슨 일이 있었고, 주변의 친한 친구들에게도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내게 하나하나 이야기 해 주었다. 나는 계속 들었다. 하지만 내 얘기를 많이 하지는 않았다. 사실 규원이에게 할 얘기가 없었다. 아니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한 시간을 통화하면 거의 듣다가 끝이 났다. 고등학교 입학 초반에 만나서 1년 내내 통화를 했지만, 사귀지는 않았다. 그래서 규원이는 늘 전화를 끊을 때마다 내게 물었다.


“언제 넘어올래?”


만난 지 1년이 조금 안 된 겨울 방학 즈음부터 우리는 사귀기로 했다. 사귀기로 한 그해 겨울 방학 때 친구들과 스키장에 갔다. 스키를 타고 내려오는데, 친구들이 내게 말했다. 


“야야, 저기 김규원!”


순간 나는 얼음이 되었다. 그리고 내 표정도 굳었다. 멀리서 규원이가 내게 손을 흔들며 정말 반갑게 달려왔다. 하지만 내 표정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니가 도대체 왜 여기 있는거야?’


스키장 사건 이후로 ‘못생겼다’고 규원이를 놀리던 내 친구들은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해도 환영 받지 못하는 불쌍한 아이라고 얘기했다.

첫사랑을 만나는 2년동안 규원이는 내게 정말 아낌없이 마음을 표현했다. 하지만 나는 정말 그 아이가 너무나도 좋았으나 어떻게 내 마음을 표현해야 할 지 전혀 몰랐다. 그렇게 아낌없이 주던 사랑을 받기만 하던 어느 날, 고등학교 3학년 진학을 앞둔 겨울이었다. 연말이라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들떠 있던 시기에 나는 집에 있었다. 휴대폰 음성 메시지가 도착했다. 규원이었다.


“우리 이제 헤어지자. 나를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만나는 거 더는 못 하겠어. 미안해.”


규원이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심장 한쪽이 조이면서 숨이 막혔다. 그리고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나는 규원이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아니.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래서 헤어지자는 말에 이렇게 아프고 슬픈데. 니가 나한테 어떻게 이래.'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규원아, 사랑해. 나 너 없으면 안 돼. 정말이야.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내가 표현을 못해서 그렇지. 나 정말 너 많이 많이 좋아해.'


하지만 가슴 속으로만 외칠뿐 실제 규원이에게 그동안 내가 표현도 잘 못하고 못 해줘서 미안하다고, 제발 계속 만나자고 얘기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음성 메시지를 듣고 우리의 관계는 끝이 났다.

자존감이 부족하면 우리는 삶에 간절히 원하는 바로 그 사람을 밀어내게 된다. 왜 그 사람이 나처럼 사랑스럽지 못한 인간을 좋아하는지 도무지 헤아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애정이나 친절이 밀려들어도 진정한 위안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우리를 혼란에 빠뜨린다. 자아의 명령은 간단명료하다. '타인을 밀어내라. 그들이 우리를 밀어내기 전에.' 


내 첫사랑 규원이는 처음으로 ‘내가 이렇게 사랑받아도 되는 사람인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해 준 사람이었다. 하지만 책 <내 감정에 잡아 먹히지 않는 법>의 데이비드 J. 리버만의 말처럼 나처럼 사랑스럽지 못한 인간을 좋아해 주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 부모도 나를 이렇게 까지 사랑하지 않는데 이 아이는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거지? 


주는 능력과 받는 능력이 모두 자존감에서 나오기 때문에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호의를 받아들이고 감사를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도움을 구하거나 받는 것이 무능하다는 감정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베푸는 사람 때문에 자신의 불안과 결점이 더 강하게 인식되기 때문이다.


나는 아낌없이 주었던 첫사랑의 애정 표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친구들은 그냥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해 주면 ‘기뻐하면 되고, 고맙다고 얘기하면 되지.’라고 쉽게 얘기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호의적인 감정을 받아본 적이 없어 너무 어색했다. 그리고 그 감정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도 전혀 몰랐다.


첫사랑 규원이가 나를 보고싶다며 친구들을 데리고 같은 날짜에 스키장에 예고 없이 온 게 전혀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친구들 앞에서 내가 남자 친구와 있는 모습을 보여주게 한 것이 정말 싫었다. 김규원의 서프라이즈로 인해 내가 감정 표현을 얼마나 못하는 사람인지, 애인의 마음씀에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인지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런 상황을 만들어 버린 규원이가 미웠다. 그래서 당시에는 친구들이 규원이를 불쌍하다고 하는 말에도 전혀 공감할 수가 없었다.


# 첫사랑의 그림자

규원이와 헤어진 뒤 지긋지긋한 집구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를 했다. 다행히 서울로 대학을 가게 되었다. 내 인생 처음으로 그토록 바라던 자유가 주어졌다. 그리고 대학에서 새로운 연인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나의 연애 패턴은 다음과 같이 늘 비슷했다.


(1) 혼자서 상대방을 좋아한다.

(2) (운이 좋게)상대방도 나를 좋아해 준다.

(3) 사귄다.

(4) 매일매일 만나고 전화와 문자를 주고받는다.

(5) 이 사람을 더 깊이 좋아하게 되면 첫사랑에게 받았던 상처를 다시 받게 될 것 같아 두려운 마음이 든다.

(6) 도망치고 잠수를 탄다.

(7) 상대방은 영문도 모르고 연락이 안 되는 나를 걱정하며 계속 문자와 전화를 한다.

(8) '미안, 더는 못 만날 것 같아' 라고 문자를 보낸다.

(9) 그리고 연애는 끝이 난다.

(10) 몇 달 후에 다시 웃으면서 만나 연애 이전의 관계로 돌아간다.


어제까지 잘 지내던 내가 갑자기 연락을 끊어버리고, 얼마 후 이별 통보를 하면 상대방은 매우 당황스러워했다. 그리고 도대체 이유가 무엇이냐고 내게 계속 물었다. 자신이 무언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얘기해 달라고 본인이 고치겠다고 제발 한 번만 전화나 문자라도 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왜냐하면 헤어진 이유가 상대방에게 있지 않았으니 말이다.


나처럼 낮은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에게는 자신에게 마음을 써 주는 사람들을 조종하고, 도를 넘어 그들을 함부로 대하고 싶은 강력한 무의식적 욕구가 생긴다. 스스로의 모습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자신에게 화가 날 수밖에 없고 그러면 우리는 그 화를 주위의 세상에, 우리에게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풀어낸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지낸 기간에는 사랑을 많이 받으며 자랐다. 엄마 말에 따르면 어린 동생들을 잘 돌보고 챙기는 착한 누나였다고 한다. 하지만 분가해 엄마와 아빠가 계속 싸우는 걸 보면서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아이’가 되어 있었다. 어릴 때는 엄마가 아빠와 헤어지면 행복할 것 같았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엄마 아빠가 싸울 일이 없었을텐데…’


어린 시절부터 하던 생각이다. 나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항상 마음 한 켠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 마음은 어릴 때부터 줄곧 있었다. 부모님의 싸우는 정도가 심해질수록 이 마음은 함께 커져만 갔다.  그리고 이 마음이 커지는 만큼 나의 자존감은 작아졌다.


성인이 된 후에 나의 낮은 자존감이 일반적인 인간 관계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연애관계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사랑했던 감정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그 사랑에서 벗어나기 위해 있는 힘껏 도망쳤다. 사랑하지만 표현하지 못해서,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서 헤어질 수 밖에 없었던 첫사랑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반복해서 경험하고 싶지 않다고 변명하면서 말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만이 자신과 타인에게 책임감 있는 사랑과 존경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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