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용무도 견리망의의 시대
왜 올해의 한자성어는 견리망의일까?
2015년 교수신문이 정한 올해의 한자성어는 혼용무도(昏庸無道)였다.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임금인 혼군(昏君)과 사람이 변변하지 못하고 졸렬한 임금인 용군(庸君)을 따서 혼용이라고 했고, 그리하여 나라 상황이 마치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럽다는 뜻으로 혼용무도라고 했다.
2023년 교수신문이 정한 올해의 한자성어는 견리망의(見利忘義)다. 추천 이유는 “오늘 우리나라의 정치인은 바르게 이끌기보다 자신이 속한 편의 이익을 더 생각하는 것 같다”라며 “출세와 권력이라는 이익을 얻기 위해 자기편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한 경우로 의심되는 사례가 적잖이 거론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군자는 만 리 앞을 내다보고 이치를 생각하며 올바른 판단을 하고 소인은 온 세상의 이로움만 살펴본다.
군자는 명견만리(明見萬里) 소인은 명견만리(明見萬利)
군자는 이로움을 취할 때 옳은가 생각하고 소인은 이로움을 보면 옳고 그름을 잊어버린다.
군자는 견리사의(見利思義) 소인은 견리망의(見利忘義)
군자는 나라가 위태로우면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하고 소인은 제 목숨만 지키려고 한다.
군자는 견위수명(見危授命) 소인은 견위수명(見危守命)
군자는 제 자신을 희생시켜 사랑을 이루고 소인은 타인을 죽여 공을 이루는 밑바탕으로 삼는다.
군자는 살신성인(殺身成仁) 소인은 살인성공(殺人成功)
군자는 구차한 삶보다 정의를 먼저 추구하고, 소인은 정의를 버리고 구차한 삶을 추구한다.
군자는 사생취의(捨生取義) 소인은 사의취생(捨義取生)
논어 이인 편에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의리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라고 하셨다.
子曰 君子는 喩於義하고 小人은 喩於利니라
자왈 군자는 유어의하고 소인은 유어리니라
“군자는 의리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라는 문장을 해석할 때 두 가지를 주의해야 한다. 첫 번째는 의와 리가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군자는 의를 기준으로 선택을 하고 소인은 이로움을 기준으로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군자는 자신의 이로움보다 사회 공동체의 이로움을 더 우선으로 생각한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군자는 도덕성만 중시하여 이로움을 챙겨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하는데 이는 잘못된 해석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진보주의자는 의를 중시하고 도덕성을 중시하여 가난하게 살아도 되고 보수주의자는 이를 중시하여 부자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진보주의자도 잘 살면서 공동체를 위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공동체를 위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 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미다.
두 번째는 이기성과 이기주의를 구별해야 한다. 인간은 경제적 동물(호모이코노미쿠스)이라고 한다. 이는 누구나 자신에게 이로운 것을 중시하고자 하는 본성이 있다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에서도 이러이러한 이기성은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에게만 유리하도록 하는 이기주의와는 구별해야 한다. 이기주의는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 위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이기성을 넘어 지나친 이기주의 때문에 문제다. 이런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처받지 않고 살아가려면 마음 무장을 단단하게 해야 한다.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은 본능이다. 하지만 성숙한 인간은 자신의 이익 추구가 옳은지 옳지 않은지 생각하는 사람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공정에 대해 민감하다. 공정은 정의를 말하는데 사실은 그 속을 들여다보면 공정보다 이익에 더 민감하다. 공정한 것을 생각하려면 개인의 이익보다 사회 전체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부의 분배나 양극화를 해결하는 것을 먼저 해야 공정하고 이것이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개인에게 다가올 피해만 생각하고 빈부격차를 그대로 두고 능력주의만 강조하는 것은 공정보다 각자도생을 생각하며 이익에 민감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진정한 공정은 개인의 이익에 민감한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적 문제에 민감해야 한다. 담장에 가려 경기를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디딤판을 놓아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담장을 없애는 것이 더 공정한 것이다.
논어 헌문편에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견리사의 見利思義하며 견위수명見危授命”이라고 하셨다.
견리사의하고 나라가 위태로울 때 목숨을 버리며 오랜 제약이 있더라도 자신이 한 말을 잊지 않고 실천하면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안중근 의사는 1910년 2월, 여순 감옥에서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며 견리사의(見利思義) 견위수명(見危授命)의 글을 남겼다. 견리사의의 진정한 의미는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성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사람을 본성이지만 그 과정이 정당해야 한다는 뜻이다. 견리사의의 반의어는 견리망의(見利忘義)이다. 장자 산목편에 나오는 말로써 '눈앞의 이익에 사로잡혀 자신의 처지를 잊어버린 모습'을 가리킨다. 제 눈앞의 이익에만 눈이 멀어 의를 돌아보지 않는 이기주의를 말한다.
명견만리(明見萬里) 견리사의(見利思義) 견위수명(見危授命) 살신성인(殺身成仁) 사생취의(捨生取義) 한
이순신, 홍범도, 안중근, 이동휘, 김좌진, 지청천, 이범석, 이회영
명견만리(明見萬利) 견리망의(見利忘義) 이완용, 전두환 그리고 수많은 인간 군상들! 이들을 옹호하는 법비들과 기레기 카르텔!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임금인 혼군(昏君)
사람이 변변하지 못하고 졸렬한 임금인 용군(庸君)
음흉하여 나쁜 짓을 하면서 법을 악용하여 사람을 죽이는 암군(暗君)
제 마음대로 하는 포악한 임금 폭군(暴君)이고,
나라를 위태롭고 어지럽게 하는 난군(亂君)이 나라를 지배하면 나라는 망한다.
국민은 진흙구렁텅이에 빠지고 숯불에 타는 괴로움인 도탄지고(塗炭之苦)를 당한다.
모든 인격을 갖춘 성군(聖君)의 자질을 갖춘 대통령은 바라지도 않지만
이치에 밝고 똑똑한 명군(明君)이나 어질고 지혜로운 현군(賢君)
국민을 위하며 마음을 베푸는 혜군(惠君)의 자질을 가진 대통령을 언제 얻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