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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호 Oct 11. 2024

[그냥 9 흑백요리사 세계관]

요리는 자연을 온전하게 담을 때 빛난다. 

가을은 향기로 옵니다. 

여름철 무더위가 물러나면 습기가 사라지고 보송보송하여 좋습니다.

맑은 하늘 아래 햇살을 받고 마른빨래에 묻어 있던 햇살의 향기도 좋았고

나무들이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머금고 있던 물을 내보내느라 물은 더욱 맑습니다.

가을물이 더 맑은 이유는 나무의 영혼을 흘려보내기 때문이라 여겼던 적이 있습니다.

배롱꽃은 지고 나무는 하나 둘 잎을 떨구면서 나무 특유의 향기를 냅니다.

가을날에는 어둑어둑할 때 산책을 하면 모든 생명체의 향기가 온몸으로 들어옵니다.     


어릴 때 저녁 무렵이면 집집마다 음식냄새 맡으며 평온했던 기억이 좋습니다.

어느 집에서 전어를 굽거나 갈치를 굽던 고소한 냄새 

돼지고기에 고추장을 발라 석쇠에 올려 숯불에 굽던 냄새

밤에 산책을 하려고 나서면 음식점에서 나는 냄새는 추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맛있는 냄새가 식욕을 자극하면 요리를 하고픈 생각이 납니다. 


요리에 관심을 가진 것은 대장금을 할 무렵인 듯합니다.

요리 과정에 들어가는 생각과 철학이 좋은 음식을 만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요리에 대한 관심과 함께 요리와 관련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요리는 사랑이다>, <요리로 만나는 과학교과서>, <음식궁합>, <국민요리책>, 

<백종원이 추천하는 집밥메뉴 52> <요리와 과학>, <소금지방산열>, <미각의 제국>

<한국음식문화박물지> <음식인문학> <방랑식객> 등 요리책은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이러한 요리책을 읽으며 맛있는 음식을 해 먹기도 하고 사 먹기도 했는데

박경리의 <생명의 아픔>을 읽으며 식욕과 식탐을 반성했고

노벨상 수상자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고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 레건의 동물의 권리

등을 생각하면서 다시 <장자>의 제물론 연암 박지원의 <호질>을 읽으며 인간중심주 사고를 벗어나

생태와 생명을 생각하며 음식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최근에 본 다큐멘터리 <씨스프라시>를 보고 기후 위기와 식습관을 성찰했습니다. 

다큐멘터리 <씨스프라시>는 상업어업의 문제점을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 식습관은 상업어업을 부추기고 상업어업은 환경을 파괴합니다. 

상업어업으로 인하여 해초와 다시마 숲이 파괴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해초와 다시마 숲은 지상의 열대 우림보다 단위면적당 20배나 많은 탄소를 빨아들일 수 있다고 합니다.

전 세계 이산화탄소의 최대 93%가 해양식물과 산호에 저장되어 있는데,  

그중 1%만 손실되어도 그 양은 자동차 9천700대의 배출가스와 맞먹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생선과 육식을 즐겨 먹는 문화를 바꾸어야 지구 환경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마다 요리와 음식에 대한 생각은 다릅니다. 

다산 정약용은 “어떤 음식을 먹을 때마다 이러한 생각을 지니고 있어야 하며, 

맛있고 기름진 음식만을 먹으려고 애써서는 

결국 변소에 가서 대변보는 일에 정력을 소비할 뿐이다.”라는 말을 듣고 

식탐은 많이 줄고 음식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뀐 듯합니다.      

음식을 먹는 것은 몸을 건강하게 하는 것도 있지만 

마음을 잘 보존하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맛집 찾아다니며 맛있는 것을 즐거움으로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기분 좋다면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어찌 입의 즐거움 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지 않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인간은 참말로 모순 덩어리인 듯합니다. 

음식과 요리에 관한 관심보다 지구 환경과 생명에 관심을 두었다가

<흑백요리사>라는 프로에 관심이 가는 것을 보면......  양가감정의 모순 속에 살아갑니다.

        

<흑백요리사>는 흥미롭게 보기는 했지만 뒷맛이 개운하지 않은 프로였습니다. 

이 프로를 보고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나’ ‘경쟁’ 그리고 음식의 본질과 세계관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람들의 입맛은 다 제각각이지만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맛이 있습니다. 

미각이 뛰어난 요리사들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러한 맛을 터득한 사람이다. 

<흑백요리사>에 나온 요리사들도 미각이 뛰어나며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흑백요리사에 나오는 요리사의 요리를 직접 먹어보지는 못했습니다.

우리는 한 번도 그들이 만든 요리를 먹어보지는 못해도 

백종원과 안성재, 그리고 심사단의 평가를 보고 짐작을 합니다.

우리는 흑백요리사라 만든 요리의 맛을 모르지만 살아가는 동안 음식을 먹은 경험과 감각으로

두 사람의 평가 기준을 보고 맛을 추측하고 상상합니다.      

우리는 두 사람의 맛에 대한 평가를 믿고

제삼자의 경험으로 맛을 보고 느낍니다. 

그리고 내 안에 내면화된 맛에 대한 기준과 공동체의 평가를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사람마다 좋은 맛에 관한 기억은 다양하게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좋아하는 맛은 무엇인지 모르고 

라캉의 말처럼 ‘타인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하며 남이 일러주는 맛을 추구하는 지도 모릅니다. 

맛을 보고 느끼는 주체는 사라지고 타인의 평가를 보고 판단합니다. 

저는 맛있는 음식이란 사람마다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진짜 맛은 음식의 본질을 잊지 않은 맛입니다. 

음식 재료가 그 맛의 본질을 간직하고 발현될 수 있도록 

사람의 손이 갔지만 자연적이며 완성도가 높은 맛이 아닐까 합니다. 

예를 들면 한우에 올레인산이 많아 감칠맛을 내는 설렁탕이 있다면

그 맛을 그대로 느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해서 설렁탕에 국수를 말아서 고유의 맛을 해치지 말자거나

나물 고유의 향을 느끼기 위해 고추장을 넣지 않고 비빔밤을 먹기도 합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황교익이나 임지호의 음식에 관한 생각을 존중하는 편입니다.     



경합(競合)은 겨루는 것을 말합니다. 

겨루는 것은 다투거나 싸움과는 다릅니다.

"겨루는 것은 치우치지 않는 가늠과 잣대를 미리 세워 놓고 힘과 슬기를 다하여

서로 이기려고 맞서는 것입니다." 

요리 경합은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어합니다. 

겨루는 과정이 주는 긴장감과 응원하는 사람이 경쟁에서 승리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해합니다.  

하지만 겨루는 과정이 공정하고 경쟁의 본질이 아름다워야 좋습니다. 

<흑백요리사>의 경쟁에서 불편했던 대표적인 것은 두 가지입니다. 

최현석 셰프가 리더가 되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메뉴를 짜기도 전에 다른 팀보다 먼저 음식재료를 다 가져옵니다.  

다수의 사람들은 그의 판단력과 리더십을 칭찬했고 그의 승리는 정당하고 평가했습니다.

과정이 공정해야 경쟁은 정당한데 재료를 독점하여 이긴 것은 승리라고 할 수 없습니다. 

심사위원들은 맛에 대한 평가만 신경 썼지 맛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의 단면을 이 프로에게 또 보게 되어 씁쓸했습니다. 

4라운드에서 팀 내 투표로 참가자를 방출하는 것도 불편했습니다. 

꼭 경쟁을 다툼과 싸움으로 몰고 가야 할까?

왜 더하기보다 빼기를 해야 할까?

무조건 효율과 능률을 생각하고 목적을 위해 모든 사람과 사물을 도구화하고 수단으로

삼아야 할까 등을 생각했습니다.      


흑백요리사가 지향해야 할 세계관을 생각해 본다면

태극기의 바탕인 백과 괘의 흑, 그리고 중앙에 있는 태극입니다. 

흑백은 단순히 이분법으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빛나는 것입니다. 

흰 바탕 위에 검은 건곤감이(乾坤坎離)의 괘가 조화를 이루듯 

하늘과 땅, 물과 불의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는 의미이며 

흑수저 백수저 요리사도 궁극적으로는 조화를 이룬다는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이는 태극의 무늬처럼 직선으로 자르는 것이 아니라 곡선으로 서로 이어지는

경계가 없는 모호함의 아름다움이 서로를 포용하는 미학이 아닐까 합니다. 

흑과 백이 조화를 이루고 붉은색과 파란색 둘인 듯 하나인 철학

관계 속에서 새롭게 변화하며 변화 속에서 더 성장하는 아름다움이 

흑백요리사의 세계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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