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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랑 Jan 14. 2022

인간들에게 바침

전, 운세입니다. 

소원들,


저는 운세입니다. 실체는 없지만 정의 내릴 순 있어요. 그렇지만 또 한 마디로 표현하기엔 좀 서운합니다. 저를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아주 많거든요. 그중 가장 인기가 많은 건 신년운세, 사주팔자, 궁합 같은 것들입니다. 살면서 저를 접하지 않은 인간은 없을 거예요. 하다못해 신문 한 귀퉁이에 있는 오늘의 운세라도 본 적이 있을 테니까요. 


저는 인간이 만들어 낸 존재이므로 어느 정도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내놓을 수 있어요. 아니, 어떤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 안다고 해야 정확하겠네요. 

인간은 참 이상해요. 본인을 가장 잘 아는 건 자신일 텐데, 남의 입을 통해 자기 얘기를 듣고 싶어 하니까요. 이런 말 저런 말, 이랬구나 저랬구나, 말해주면 그걸 듣고 깔깔 웃는 인간도 있고, 엉엉 우는 인간도 있어요. 

인간이 저를 만들어 낸 가장 큰 이유는 미래를 알기 위해서예요. 왜 그런지 몰라도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다르게 현재를 살지 못합니다. 해줄 수 있는 말은 광범위하고 두리뭉실한 안개 같은 것뿐이지만, 인간들은 그 애매함을 듣기 위해 날 찾습니다. 어떤 인간은 그 속에서 보석을 찾지만, 또 어떤 인간은 어둠밖에 보지 못해요. 그런 걸 보면 인간이 각기 다른 운명을 사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저를 대하는 인간의 태도는 아주 다양해요. 일생동안 저를 찾지 않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하루가 멀다 하고 제 의견을 물으러 오기도 하고, 어떤 일을 계기로 절 영영 찾지 않거나, 반대로 갑작스레 의존하기도 합니다. 성당이나 교회에 다니기 때문에 멀리하는 인간도 있지만, 절 만난 직후에 성당에 가서 회개하는 인간도 있어요. 자주 찾아오던 한 아가씨는 제가 계속 결혼할 시기를 못 맞추니 더 이상 오지 않고, 어떤 엄마는 아픈 아이를 낫게 하고 싶어 저의 모든 걸 찾아다녀요.  


이렇게 찬 바람이 불고 한 해가 한 바퀴 돌 때쯤엔 가장 바쁜 시기가 옵니다. 저는 한 나라의 국운이 되기도 하고, 갓 태어나는 아기의 첫 사주가 되기도 해요. 자꾸 나라의 새 주인이 누구인지 묻는 인간도 있고, 이 역병이 언제 끝날지 그 시기를 맞춰내라 닦달하는 인간도 있어요. 그런 다양한 군상 중에서 제가 오래 머물고 싶은 이들은 따로 있어요. 오랫동안 준비해 온 아들의 취업일을 기다리는 엄마 옆에, 빚을 내어 얻은 소중한 가게의 오픈일이 궁금한 사장님 옆에, 미루고 미뤄서 새 해엔 식을 올리고 싶은 목각인형 같은 부부의 옆에…


전 인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두려워할 만한 존재가 아니에요. 그렇게 대단치 않지만, 그렇다고 하찮지도 않아요. 저를 그냥 날씨처럼 생각해줬으면 해요. 비가 오면 누군가는 반갑고, 누군가는 실망하겠지만 그게 영원하지 않다는 걸 인간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잖아요. 

그러니 저를 너무 의존하지도, 내치지도 않길 바랍니다. 우리는 어쨌거나 같이 살아갈 수밖에 없거든요. 그게 우리의 운명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을 읽어 준 분들에게 특별히 복채도 받지 않고 운세를 점쳐 드릴게요. 새해엔 원하던 것들 중 하나는 꼭 이루어질 거예요. 그런 일이 생긴다면 저, 운세 때문이 아니라 그동안의 노력 덕분이라고 생각해도 좋아요. 어쩌면 그게 사실인걸요.  




                                                           

                                                          [이 글은 2W 매거진 19호 '올해의 운세'에 수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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