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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랑 Oct 08. 2022

오늘도, Do Yoga

매트 안과 매트 밖, 


운동엔 영 취미가 없는 내가 일 년이 넘게 계속해오고 있는 단 한 가지는 바로 요가다. 다른 운동보다는 쉬워 보여서, 많이 움직이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체형 교정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선택한 요가는 예상과는 많이 다른 운동이었다. 

정적이긴 하지만 땀이 엄청나게 나고 조금씩 근력이 생기기 시작하며, 생각지도 못한 부위에 근육통이 생긴다. 점점 레깅스 대신 할렘 바지 같은 옷을 입고 인센스와 스머지 스틱을 켜놓게 된다. 무엇보다 나도 모르게 요가에 빠져든다. 요가 자세 지도서와 에세이를 읽으며 동질감에 킥킥 대고, 여행을 가게 되면 원데이 클래스를 찾아 듣는다. 

그러나 아직도 제대로 취하지 못하는 동작이 많다. 이런 자세들은 쉽게 성공을 안겨주지 않는다. 대신 그걸 수련하는 과정 중에 스스로 부족함을 깨닫게 한다. 이를테면 이런 동작들이다.


1. 공중부양이 아니에요, 에카파다라자카포타아사나 (반 비둘기 자세) 

이름도 어려운 에카파다라자카포타아사나는 근력보다는 몸 자체의 밸런스와 동작의 균형 잡기가 중요한 자세다. 

한쪽 다리를 접고, 나머지 다리를 뒤로 쭉 뻗어 엉덩이를 바닥에 붙… 여야 하는데 아직까지 한 번도 붙여본 적이 없다. 내 에카파다라자카포타아사나는 언제나 공중부양 상태다. 이건 틀림없이 다리 꼬기, 짝다리 짚기, 한쪽으로 기대어 앉기 등 안 좋은 자세로 인한 업보일 것이다.

많은 수련자들이 쉽게 하는 자세라 공중에 뜬 내 자세는 유독 눈에 잘 띈다. 다리 사이에 블록을 대 보지만 블록에도 닿지 않을 만큼 떠 있는 몸뚱아리는 안쓰럽게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하고, 땀이 뚝뚝 떨어진다. 요가는 힘을 잘 빼는 것이 중요한데 자세가 제대로 되지 않으니 오히려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고, 이 자세는 결국 선생님을 부르고 만다. 

“어깨에 힘을 빼고, 다리에도 힘을 빼고, 그냥 중력에 몸을 맡겨 보세요.”

‘그걸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요.’ 속으로 투덜대며 여기저기 힘을 조금 더 빼본다. 기어코 가랑이가 찢어져 병원에 실려가게 되는 상상을 하다 몸은 여기에 있는데 정신은 다른 곳에 가 있는 나를 깨닫고 흠칫 놀란다. 

아사나 하나를 수행하려면 몸과 마음 모두 온전하게 집중하고 있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다리가 잘 찢어지는지 아닌지는 그보다 덜 중요하다. 


2. 온몸으로 버티면 느낄 수 있는 시원함, 우르드바다누라아사나 (위를 보는 활자세) 

바닥에 누워 다리를 세우고 상체의 힘으로 엉덩이와 등, 가슴까지 들어 올린다. 이 자세까지는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양손을 뒤집어 바닥에 붙이고 머리를 포함한 상체 전체를 들어 올려야 하는데 머리가 바닥에 붙은 상태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선생님이 달려와 등을 받쳐주면 잠시 자세를 취할 수 있지만 힘이 너무 들어가 제대로 호흡을 할 수 없다. 

한동안은 팔 힘이 부족한 것이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반복적으로 차투랑가단다아사나(푸시업 자세)를 수련해서 꽤 근력이 붙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부족한 걸까, 좌절한다.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잠시 쉬다가 오기가 생겨 다시 한번 자세를 취한다. 완벽하진 않더라도 상체 전부를 띄우는 것만을 목표로 힘을 내본다. 어라, 어느 순간 제대로 된 자세가 만들어진다. 팔 힘이 아니라 다리 힘이 문제였다. 다리가 단단하게 받쳐주면 팔도 제대로 힘을 쓸 수 있는 거였다. 이것도 모르고 괜한 팔만 탓하고 있었다. 

땀범벅이 되어 겨우 자세를 만들어내자 온몸이 말할 수 없이 시원했다. 굽었던 등과 어깨가 활짝 열리고, 호흡이 몸통 가득 채워지는 느낌은 경험해봐야만 알 수 있는 쾌감이었다. 팔과 다리, 등과 어깨, 온몸의 합이 맞을 때 찾아오는 기쁨의 순간이다. 


3. 보는 것처럼 쉽지 않습니다, 시르사아사나 (머리 서기) 

요가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이효리가 TV에 나와 이 자세를 하는 걸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초심자가 하기 어렵고 난이도가 높아 요가를 ‘잘’ 하는지 판단하는 자세이기도 하다. 

만약 시르사아사나가 정말 요가를 ‘잘’ 하는지의 판단 기준이라면, 나는 요가에 소질이 없다. 여태껏 제대로 머리 서기에 성공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 시르사아사나를 완벽하게 실패했던 날을 기억한다. 겨우 두 다리를 띄운 후 쭉 펴려는 순간 우당탕 요란한 소리와 함께 뒤로 굴러 넘어졌다. 만신창이가 되어 앉아 있는 내게 선생님은 웃으며 “머리 서기를 하다 넘어지고 나면 이제 진짜 머리 서기를 할 준비가 된 거예요”라고 말씀해주셨다. 슬슬 웃음이 나왔다. 실패한 게 아니라 드디어 머리 서기 준비에 성공한 것이었다. 

여전히 그 ‘준비’에만 성공한 상태로 머물러 있지만, 어깨가 아닌 옆구리의 힘이 필요하고 복부로 중심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자세가 무너질 때 잘 넘어지는 것도 아사나의 하나라는 걸 알았다. 그렇기에 오늘은 넘어졌지만 내일이 되면 성공할 수도 있다. 몇 주, 몇 달이 지나면 이효리처럼 힘들이지 않고 멋지게 시르사아사나가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내 몸이 알아서 정해줄 것이다. 



요가는 어느 한 부분의 힘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허리를 단련하는 것이 팔의 힘을 키우고, 다리를 움직이는 것이 어깨를 단단하게 한다. 숨을 쉬면 그 호흡은 안 거치는 곳 없이 온몸을 돌아다니는 것처럼 모든 움직임은 내 몸 곳곳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사실을 깨닫는 것이 바로 요가다. 그렇기에 요가를 ‘운동한다’라고 하지 않고 ‘수련한다’라고 표현하는 게 아닐까? 

동작을 잘 해내고, 체형이 바로 서고, 근육이 잡혀가는 건 부수적인 혜택에 가깝다. 요가의 진정한 은혜는 매일의 수련마다 내 몸의 한계와 불균형을 알고, 들이쉬고 내쉬는 숨 하나를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연속된 호흡이 나를 만들고, 몸과 정신 모두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어제를 곱씹으며 머무르지 않기 위해, 헛된 내일의 희망에 파묻히지 않기 위해, 바로 이곳의 나를 만나기 위해 오늘도 매트 위에서 땀을 흘린다. 가만히 눈을 감고 나와 인사한다. ‘나마스떼’




                                                              

                                           [이 글은 2W 매거진 28호 '운동하는 여자들'에 수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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