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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랑 Jul 18. 2021

나의 꿈, 아빠의 꿈

일 그리고 꿈

글을 쓰고 싶다는 꿈



제가 기억하는 아빠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직장에서 보냈어요. 출근은 일찍 하고 퇴근은 늦게. 일찍 끝나는 날엔 그마저도 회식이었고요. 주말에도 출근을 하지 않으면 잠을 자는 모습이었던 것 같아요. 아빠에게도 휴가가 있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넉넉한 형편은 아니어서 아마 아빠는 더 일에 매달렸을지 몰라요. 오직 당신 월급으로 우리는 가족다운 가족의 모습으로 살 수 있었을 테니까요. 


그런 아빠의 이른 은퇴 선언에 놀란 건 어쩌면 당연했을까요? 


아빠가 은퇴를 하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저도 직장인이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막연하게 ‘과학자’의 꿈을 꾸었고, 연구원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어요. 하지만 기업에 소속된 연구원은, 그저 회사원일 뿐이었습니다. 


신입사원 연수를 마치고 배치된 부서에서의 저는 마치 아빠 같았어요. 일을 하고, 회식을 하고, 또다시 출근을 하고. 처음에는 '일'이라는 것에 완전히 빠져들었어요. 그런 제 열정은 '칭찬'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성실하다, 열심히 한다, 잘한다’, 라는 말은 '말' 외의 보상은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죠. '칭찬'받는 사원은 일반적인 '업무'외의 다른 일도 시키면 해야 했습니다. 임원의 이름으로 나가는 기술보고서를 대신 쓰는 일은 업무시간에는 할 수 없어 야근을 해야 했지만 그런 것쯤 상관없었어요.


일을 잘한다는 칭찬은 술을 잘 마신다는 칭찬으로도 확대되었어요. 술을 잘 마신다는 칭찬은, 주는 술을 다 받아 마시면서도 흐트러지지 않고, 다음 날 출근에도 지장이 없다는 뜻이잖아요. 특히 남자의 수가 훨씬 많았던 직장에서 여자 사원이 술을 잘 마신다는 건 술자리에서라면 흔히 '있을 수 있는' 상사의 터치에도 예민하게 굴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어요. 이런 상황은 직장을 옮겨도 달라지지 않았어요.

이제 직장을 다닌 지 10년이 넘었지만, 어쩐지 직업에 대한 확신은 더 작아지고만 있네요.


할머니께 아빠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영화배우를 꿈꿨던 아빠의 이야기, 그 꿈이 좌절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요.

아빠가 그 꿈을 이뤘다면 저는 영화배우 딸이었을 텐데, 라며 철없는 생각을 하기도 했답니다.


아빠, 꿈이 아닌 일을 수십 년 간 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인가요?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것 때문이었을까요?


저는 조금 다른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 제가 2년 정도 일을 쉬었던 시기가 있었잖아요. 그때 많이 우울했는데, 그 감정은 단순히 백수, 수험생, 무소속으로 느끼는 것의 형태가 아니었습니다. ‘존재감’이 사라진다는 게 이런 것이겠구나, 하고 느꼈거든요. ‘일을 한다’는 행위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맺는 다양한 관계와 상호작용이 인간에게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저는 일을 통해 스스로를 부양함과 동시에, 그 속에서 나를 인정받아야 하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늘 새로운 일을 꿈꿉니다. 

우리는 꿈과 직업이 다른 삶을 살았고, 살고 있잖아요. 한때는 좋아하는 일로 충분한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라고 생각했어요. 아빠도, 엄마도, 언니도, 저도, 모두 그랬으니까요. 


그렇지만 이제는 겁먹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은 하면서 살아보려고 합니다. 그 일로 성공할 수 없더라도요. 이건, 아빠가 그동안 제게 보여주신 열심과 성실을 통해 배운 것 같아요.


아빠도 이제는 돈을 벌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즐기고 싶은 수단으로써의 일을 한 번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일이 꼭 무겁고 진지해야 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리고 아직 늦지 않았잖아요.


아빠에게도 작지만 반짝이는 그 꿈이 다시 생겼으면 좋겠어요. 그 꿈을 두드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어요. 그리고 저도 제 일과 꿈을 위해 또 힘을 내볼게요.



                                                                   [이 글은 2W 매거진 '일하는 사람'에 수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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