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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란 Jul 23. 2021

여기 내 집이야!

판타지 단편 동화

또 내 집이 없어졌다. 이곳만은 오래 가기를 바랐다. 쿵쿵! 커다란 굴착기가 벽을 몇 번 들이받자 마당 한쪽에 있던 아담한 내 집이 바삭한 과자처럼 부스러졌다. 

 “이놈들, 내 집에서 썩 물러가거라!”

 굴착기 앞을 막고 호통쳐 보지만 환한 대낮이라 그런지 아무도 내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구수한 냄새가 풍기던 지저분하고 안락한 내 집이 또 사라졌다. 어쩔 수 없다. 이 마을에서는 더 이상 갈 뒷간이 없다. 이 집에 아무도 살지 못하게 할 수밖에.

 “아저씨, 그 화장실 좀 깨끗이 밀어주세요.”

 눈꼬리가 축 처진 남자가 감히 내 집을 부수라고 했다. 이 집에 이사 오려는 인간인가 보다. 어디 두고 보자. 밤마다 괴롭혀 줄 테다. 서늘한 눈빛으로 남자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지금은 빨리 몸을 숨겨야 했다. 밝은 햇빛에 온몸이 타버릴 것 같다. 몸서리치게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집 안에 있는 화장실로 숨어들었다. 내 집이 있던 마당 한쪽에는 넓은 평상이 떡하니 자리를 잡았다.


 며칠 후 눈꼬리가 처진 남자가 여자 한 명과 아이 둘을 데리고 내 집으로 들어왔다. 남자는 조금 작은 키에 몸집이 다부졌다. 여자와 아이들을 챙기는 것을 보니 아빠인 것 같다. 바람만 불어도 훅 날아갈 것처럼 비쩍 마른 여자는 엄마인가 보다. 

 “소현아, 엄마 아빠 이삿짐 정리해야 되니까 소중이랑 거실에서 놀고 있어.”

 엄마가 여자아이에게 눈을 맞추며 말했다. 7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소현인가 보다. 소현이의 손을 잡은 볼이 통통한 남자아이는 소중이인 것 같다. 엄마는 찬찬히 부엌살림을 정리해 넣고 아빠는 바쁘게 움직이며 쓸고 닦고 이삿짐까지 싹 정리해 넣었다. 너무 깨끗해진 집을 보자 소름이 끼쳤다. 특히 집 안에 있는 화장실은 영 내 집처럼 느껴지질 않았다. 하루라도 빨리 이 사람들을 쫓아내고 예전처럼 더럽고 냄새나는 안락한 내 집으로 만들어야겠다. 

 낮은 산으로 둘러싸인 이 집은 오래전에 지어져 낡고 허름한 데다 다른 집들과 뚝 떨어져 있어 누가 봐도 나 같은 귀신이 살기에 적당한 집이었다. 


 해가 졌다. 이제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다. 천장에 둥둥 떠서 지긋이 변기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벌컥 화장실 문이 열렸다. 엄마가 급하게 뛰어 들어왔다. 나는 잽싸게 변기 속으로 들어갔다.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욱, 우웩!”

 엄마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변기를 잡고 구토를 하더니 물을 내렸다. 물살이 어찌나 센지 겨우 변기에서 빠져나왔다. 안 되겠다. 이런 변기에서는 내 필살기가 통하지 않을 것 같다. 엄마의 머리를 잡아당겨 머리카락이 쭈뼛 서게 만들어줘야겠다. 깃털처럼 엄마의 머리 뒤에 내려섰다. 머리를 잡아채려는 순간 화장실 문이 벌컥 열렸다. 나는 잽싸게 천장으로 올라갔다. 안타깝게도 난 혼자 있는 사람만 괴롭힐 수 있다. 

 “엄마- 왜 그래, 괜찮아?”

 소현이가 어쩔 줄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엄마의 등을 쓸어주었다. 얼마나 토했는지 눈에 실핏줄이 터진 엄마가 괜찮은 척 애써 미소를 지었다. 뭐야? 어디 아픈 거 아냐? 괜히 맥이 탁 풀렸다. 아픈 여자한테 해코지하는 건 내키지 않는다. 아니지. 내가 무슨 상관이람? 아프니까 조금만 겁을 줘도 도망쳐 버릴지 모른다. 오히려 잘된 일이다. 

 “아빠, 이리 와 봐.”

 앞치마를 두른 아빠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아빠의 머리가 너무 짧다. 아무래도 머리채를 휘어잡고 흔들 수 있는 건 엄마밖에 없을 것 같다. 

 “아빠, 엄마 왜 그래? 어디 아픈 거야?”

 엄마와 아빠가 눈을 마주쳤다. 엄마가 살짝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엄마 괜찮아, 소현아. 엄마 몸속에 작은 씨앗이 생겨서 그래. 나쁜 씨앗이라 뱉어내려고 그러는 거야. 엄마 씻어야 하니까 아빠랑 부엌에 가서 요리할까?”

 아빠가 엄마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소현이를 데리고 부엌으로 나갔다. 엄마가 땀으로 범벅이 된 머리를 감았다. 이번에야말로……. 다시 엄마의 머리 위로 올라갔다. 엄마의 머리를 낚아채려던 순간이다. 헉, 내 힘이 이렇게 강했던가? 엄마의 머리를 노려본 것뿐인데 머리카락이 뭉텅뭉텅 뽑혀 욕조를 시커멓게 만들었다. 엄마의 어깨가 들썩였다. 뭐지, 저 반응은?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가야 하는 거 아닌가? 아무튼 무시무시한 내 힘을 보여줬으니 겁 좀 먹었을 거다. 그런데 이 집 아이들은 불을 환하게 켜고 화장실 문까지 열어 놓고 볼일을 보는 바람에 기회를 잡을 수가 없다. 옛날 아이들은 내가 무서워 밤이 되면 벌벌 떨면서 변소에 들어왔는데 말이다. 


 늦은 밤 다시 엄마가 뛰어 들어왔다. 이번에는 아빠도 같이 들어왔다. 변기를 잡고 웩웩거리는 엄마의 등을 아빠가 가만가만 쓸어주었다. 

 “여보, 부작용이 너무 심한 거 아냐? 내일 당장 병원에 가보자.”

 아빠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괜찮아, 이 정도 부작용은 원래 있는 거래. 항암 치료 끝나면 괜찮아질 거야.”

 엄마가 가늘고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더 이상 겁을 줄 기회가 없을 것 같다. 잠시 휴전이다.


 다시 밤이 찾아왔다. 화장실 문이 벌컥 열렸다. 엄마다. 그런데, 혹시… 내 계획을 알아차린 걸까? 한번 해 보자는 듯 머리카락을 스님처럼 박박 밀고 들어왔다. 뭔 씨앗을 삼켰는지는 몰라도 또 변기를 잡고 웩웩거렸다. 또다시 문이 벌컥 열렸다. 

 “엄마, 파이팅! 나쁜 씨앗 빨리 뱉어.”

 “엄마, 파팅!”

 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소현이와 쥐똥만 한 소중이가 화장실 문을 열고 응원을 했다. 

 “파이팅!”

 엄마도 주먹을 불끈 쥐고 애써 미소를 지었다. 

 “여보, 눈 감아 봐.”

 아이들 뒤에 서 있던 아빠가 등 뒤에 무언가를 감추며 말했다. 엄마가 살포시 웃으며 눈을 감았다. 

 “어때, 여보. 헤어스타일 마음에 들어? 얘들아, 엄마 예쁘지?”

 엄마의 머리에 찰랑거리는 단발머리 가발이 씌워져 있다. 

 “와! 우리 엄마 예쁘다.”

 “예쁘다.”

 아이들이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아빠가 고개를 뒤로 돌리고 얼른 눈물을 닦았다. 정말 짜증 나는 가족이다. 넓은 거실 놔두고 왜 자꾸 내 화장실에 와서 이러는지 모르겠다. 

 낮잠을 자고 있는데 소중이가 화장실로 후닥닥 숨어들었다.

 “엄마, 나 어딨게?”

 “우리 소중이가 어디 있지?”

 엄마가 두리번거리며 화장실을 기웃거렸다. 기운이 없는지 숨을 천천히 몰아쉬며 일부러 못 본 척했다. 소중이가 킥킥거렸다. 엄마가 그냥 나가려고 하자 소중이가 문 뒤에서 불쑥 튀어나오며 소리를 질렀다. 

 “나 여기 있지롱.”

 엄마가 돌아보자 소중이가 달려가 엄마를 와락 끌어안았다. 엄마가 수건걸이를 잡고 겨우 버티고 있다. 핏기 없는 하얀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아빠가 달려왔다. 

 “소중이, 너 이 녀석. 엄마 힘들다고 했지?”

 아빠가 엄한 말투로 아이를 나무랐다. 소중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갈라지는 목소리로 엄마가 아빠를 나무랐다. 

 “여보, 그러지 마! 안 그래도 내가 못 챙겨줘서 애가 기죽어 있는데…….”

 소중이가 엄마에게 매달려 서럽게 울었다.


 저녁 무렵 소중이가 들어왔다. 저 녀석은 늘 어른과 함께 들어왔었는데 오늘은 혼자였다. 녀석이 슬금슬금 눈치를 살폈다. 변기 뚜껑을 올리더니 주머니에서 작은 고무 오리를 꺼내 변기 물에 띄웠다. 노란 고무 오리가 변기 물에 동동 떠 있다. 녀석이 변기 물을 휘휘 저었다. 오리가 큰 파도라도 만난 듯 몸을 기우뚱거렸다. 깔깔거리는 웃음소리에 녀석의 아빠가 들어왔다. 

 “요 녀석! 또 변기 물로 장난치고 있었어?”

 다다다다 도망치는 녀석을 아빠가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옷을 홀랑 벗겨 욕조 안에 밀어 넣었다. 

 시끄러운 소리에 엄마도 쫓아왔다. 얼굴이 퉁퉁 부어 있다. 목욕하는 소중이를 보며 엄마가 심각한 얼굴로 얘기를 했다. 

 “소중아, 너 이 화장실에 귀신이 살고 있다는 거 알아?”

 헉! 저 여자 내가 보이는 거야? 머리 밀고 올 때부터 만만치 않다 싶었는데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화장실 귀신을 측신이라고 하는데 측신은 변기 물로 장난치는 아이를 보면 머리를 확 잡아서 변기 물속으로 끌고 간대. 엄마, 아빠가 절대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너, 아빠가 조금만 늦게 왔으면 잡혀갈 뻔했어.”

 녀석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나, 이제 물장난 안 할 거야. 으앙-.”

 녀석이 울음을 터트렸다. 그렇지! 바로 이런 반응이 나와야지. 녀석의 뒤통수가 조금 예뻐 보였다. 그런데 아빠와 엄마가 소중이의 눈을 피해 서로 마주 보며 킥킥거렸다. 뭐지? 이 사람들. 아무래도 이 가족을 내보내는 건 힘든 싸움이 될 것 같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맨날 딱 붙어있던 가족들이 웬일로 다 나가고 엄마 혼자 있다. 화장실로 들어와 칫솔에 치약을 짰다. 혹시라도 누가 오기 전에 빨리 겁을 줘야 한다.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엄마의 찰랑거리는 단발머리를 확 잡아챘다. 

 훌렁! 툭. 

 가발이 떨어졌다. 눈앞이 번쩍했다. 엄마야! 깜짝 놀라 천장에 찰싹 달라붙었다. 엄마의 머리가 가발이라는 사실을 깜빡 잊었다. 엄마의 반들거리는 대머리에 조명이 반사되어 보름달처럼 빛났다. 귀신을 놀라게 하다니! 한 대 쥐어박으려는데 엄마가 또 변기를 잡고 웩웩거렸다. 잠시 후 욕조 테두리에 털썩 걸터앉았다. 엄마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봤다. 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엄마가 갑자기 눈물을 주룩 흘렸다. 한번 봐 달라는 건가? 

 “여보-”

 아빠 목소리다.

 “엄마, 우리 이거 사 왔다.”

 소중이가 아빠와 뭘 사 왔나 보다. 여자가 얼른 눈물을 닦았다. 엄마를 찾던 가족들이 우르르 화장실로 모여들었다. 

 “엄마, 이거 내 꺼.”

 소중이 녀석이 하늘색과 흰색이 반반씩 섞인 의자처럼 생긴 물건을 낑낑거리며 들고 있다.

 “우와! 우리 소중이 다 컸네. 이제 기저귀에 응가 안 할 거야?”

 엄마가 언제 울었냐는 듯 밝게 웃으며 말했다. 

 “응. 나 이제 형아야. 기싱도 여기 없어.”

 “그래. 거기에 응가 하면 귀신도 못 오겠네.”

 엄마가 또 나를 들먹였다. 서로 마주 보며 웃고 있는 가족을 보니 울화가 치밀었다. 이러다 아주 눌러살 것 같다. 예전에 인간들은 나에게 음식을 갖다 바치며 액운을 떨쳐 달라고 빌었는데, 요즘은 빌기는커녕 나를 싹 무시해 버린다. 몇십 년 동안 쫄쫄 굶었더니 걸귀가 될 것 같다. 

 어디선가 호박죽 냄새가 났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는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평소와 달리 엄마 목소리에 기운이 넘쳤다. 이 인간들이 날 약 올리려고 작정을 했나? 오늘 누구든 걸리기만 해봐라. 문을 노려보고 있는데 소윤이가 살금살금 화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웬일로 혼자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아이를 덮치려는데 등 뒤에 감췄던 그릇을 불쑥 앞으로 내밀었다. 호박죽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먹음직스러운 호박죽을 들고 왔다. 소윤이가 호박죽을 변기에 부어버렸다. 얼른 변기로 들어갔다. 몇십 년 만에 먹는 구수한 호박죽이 입에서 살살 녹았다. 호박죽을 먹고 꺽 트림을 했다. 변기 물이 뽀글거렸다. 


 그런데 어디선가 꿈에 그리던 구수한 냄새가 풍겨왔다. 바로 화장실 앞이다. 화장실 앞에 놓인 작은 플라스틱 의자에 소중이가 앉아서 똥을 싸고 있다. 낑낑 힘을 쓰느라 얼굴이 빨개졌다가 하얘졌다. 친근한 냄새에 나도 모르게 의자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의자 안에 아담한 공간이 있다. 녀석이 노랗고 긴 똥을 쌌다. 오랜만에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파랑 거.”

 녀석이 내 목소리를 알아들었다. 겁도 없이 또랑또랑 외쳤다. 아늑한 내 집에 앉아 있으니 마음이 너그러워졌다. 까짓것, 기분이다. 오랜만에 인간에게 축복을 내려줘야겠다. 

 “측신이 명하노니 엄마는 앞으로 잘 먹고 잘 싸고 건강해지거라.”

 내 말을 들었는지 소중이가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뽀오옹-’

 어찌나 기특한지 나도 큰소리로 외쳤다. 

 “여기 내 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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