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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란 Jul 26. 2021

바다로 간 망치

단편 동화

꼬마 고슴도치 망치는 밤송이 마을 왕밤나무 아래에서 엄마와 함께 살고 있었어요. 눈이 나쁜 엄마는 망치를 집에만 붙들어 놓으려고 했지요. 망치는 한동안 엄마 눈만 보면 미안해서 멀리 나갈 수 없었어요. 작년 여름 무서운 꿈을 꾼 망치가 가시를 곤두세우는 바람에 엄마가 눈을 다쳤거든요. 호기심 많은 망치는 가슴이 답답했어요. 

 “엄마, 나 산꼭대기에 한 번만 올라갔다 올게. 우리 마을에서 산꼭대기에 한 번도 올라가 보지 못한 고슴도치는 나밖에 없다고. 찌루가 그러는데 산꼭대기에 올라가면 바다가 보인대.”

 “큰일 날 소리! 산꼭대기가 얼마나 위험한데. 커다란 바위 하나만 덩그러니 있어서 참매나 올빼미가 나타나면 꼼짝없이 잡히고 만다고.”

 엄마의 걱정이 끝도 없이 이어졌어요. 화가 난 망치가 고사리 잎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당겼어요. 사실, 내일 낮에 찌루랑 산꼭대기에 올라가 보기로 했거든요.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는 이불을 살짝 끌어내리고 망치의 머리에 뽀뽀했어요. 망치는 시치미를 뚝 떼고는 바다를 생각하며 눈을 꼭 감았어요.    

  

 해님이 머리 꼭대기에 올라왔어요. 망치는 고소한 딱정벌레 구이를 먹으며 엄마 얼굴을 빤히 쳐다봤어요. 막상 나가려고 하니 엄마가 걱정됐거든요. 하지만 망치의 머릿속은 바다로 꽉 차 있었어요. 딱 한 번만이라도 바다를 보고 싶었지요. 

 “엄마, 찌루네 집에서 놀다 올게요.”

 갑자기 벌떡 일어난 망치가 밖으로 나가며 외쳤어요. 엄마가 말릴 틈도 없었지요. 

 찌루가 졸참나무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망치와 찌루는 코를 맞대며 인사했지요. 바다를 볼 생각에 망치의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길게 자란 풀숲을 헤치며 망치와 찌루가 산길을 올랐어요. 땀을 뻘뻘 흘리며 산길을 오르고 또 올랐지요. 앞에 섰던 찌루가 헉헉대며 가파른 바위를 기어오를 때였어요. 

 ‘삐이이익-’

 어디선가 참매 울음소리가 들렸어요. 깜짝 놀란 찌루가 바위에서 주르륵 미끄러졌어요. 바위 밑에 있던 망치가 얼른 찌루의 손을 잡았어요. 작은 돌멩이가 부서져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굴러떨어졌지요. 풀숲 사이에 있던 망치가 얼른 찌루의 머리를 눌렀어요. 엎드려 있는 찌루와 망치의 가시가 부르르 떨렸어요. 잠시 후 참매의 울음소리가 멀어졌어요. 살며시 고개를 든 찌루와 망치는 서로를 쳐다보며 ‘쿡쿡’ 웃었어요. 얼굴 여기저기에 시커먼 흙이 잔뜩 묻어 새끼 너구리 같았거든요.    

  

 드디어 산꼭대기에 도착했어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 망치의 눈이 도토리만큼 커졌어요. 나뭇가지 사이로 보던 작은 하늘은 진짜 하늘이 아니었어요. 바다와 산, 모든 세상을 하늘이 품고 있었어요. 산 아래에는 하늘처럼 파란 바다가 펼쳐져 있었지요. 하늘과 맞닿아 있는 바다는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어요. 망치가 입을 떡 벌린 채 바다를 바라봤어요. 간간이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망치를 부르고 있는 것 같았어요.

 “이게 바, 바다야? 너무 멋져! 정말 너무 멋져!” 

 한참을 바다만 바라보던 망치가 뭔가 결심한 듯 눈에 힘을 주고 말했어요. 

 “찌루야, 나 결심했어. 바다에 가 볼 거야.”

 “뭐? 산에서 내려가겠다고? 너희 엄마가 엄청나게 걱정하실 거야. 바다가 멋있긴 하지만 산을 내려가는 건 너무 위험해.” 

 “몰라, 몰라. 난 이제부터 해보고 싶은 건 뭐든 다 해볼 거야!”

 찌루가 말렸지만 망치는 막무가내였어요. 콧김을 뿜으며 돌진하는 멧돼지처럼요. 그래도 찌루에게 엄마를 안심시켜달라는 부탁은 잊지 않았지요.  

    

 산꼭대기에 올라가느라 힘이 빠진 망치의 다리가 후들거렸어요. 하지만 곧 좋은 생각을 해냈어요. 몸을 밤송이처럼 동그랗게 말아 데굴데굴 굴러 내려가기로 한 거죠. 작전은 대성공이었어요. 금방 산 아래까지 내려갔거든요. 

 바닷가에는 반질반질하고 둥글둥글한 자갈들이 하얀 파도와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었어요. ‘철썩 쏴아- 짜르르르 싸르르르’ 하면서요. 망치가 자갈 위에 엎드려 눈을 감고 바다의 노래를 들었어요. 시원한 바닷바람이 흙투성이 망치의 몸을 털어주었어요. 망치는 어찌나 기분이 좋은지 자기 볼을 살짝 꼬집어보았어요. 그때였어요. 

 “아야, 좀 살살 내려놔!”

 파도가 밀려온 자갈 위에 고슴도치 한 마리가 투덜거리고 있었어요. 색깔이 검고 더 동그랬지만 고슴도치 같았어요. 반가운 마음에 망치가 한달음에 달려갔어요. 

 “넌 누구니?”

 망치가 물었어요. 까망이가 얼굴을 숨긴 채 말했지요. 

 “넌 누군데?”

 “난 고슴도치 망치야. 넌 누구야?”

 “난 성게 숭숭이야. 여기 육지 맞지? 야호! 드디어 도착했다!”

 망치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어요. 망치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 숭숭이가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자기 집은 바닷속 깊은 곳인데 엄마 몰래 육지로 올라왔다면서요. 숭숭이는 산을 쳐다보며 환호성을 질렀어요. 숭숭이도 망치처럼 호기심 대장인가 봐요. 둘은 금방 친구가 되었죠. 하지만 숭숭이는 물 밖에서 오래 있을 수 없다며 금방 돌아가야 한대요.

 숭숭이가 말했어요.

 “망치야, 바닷속 구경 한번 해볼래?”

 “뭐? 나 한 번도 바닷물에 들어가 본 적 없는데……. 콧구멍에 막 물이 들어가지 않을까? 그럼 숨도 못 쉬고 캑 죽을 거야.”

 망치가 혓바닥을 쭉 내밀고 죽는시늉을 하자 성게가 데굴데굴 구르며 웃었어요. 

 “내가 특별히 용왕님한테 부탁해서 물속에서도 숨 쉴 수 있게 해줄게.”

 숭숭이가 큰소리를 쳤어요. 그리고는 성게 춤을 추며 주문을 외웠지요. 왼쪽으로 데굴데굴, 오른쪽으로 데굴데굴. 앞으로 데굴데굴, 뒤로 데굴데굴. 

 ‘스룽스룽 살콩달콩 얄람쿵!’  

 그러자 파도를 타고 커다란 공기 방울이 올라왔어요. 눈치 빠른 망치가 얼른 공기 방울로 들어갔지요. 신기하게도 절대 터지지 않는 공기 방울이었어요. 숭숭이의 옆구리에 있는 까만 가시 끝에서 투명하고 끈끈한 실이 나와 공기 방울에 딱 달라붙었어요. 숭숭이가 데굴데굴 바다로 굴러가고 망치는 공기 방울 속에서 열심히 뛰었어요. 바닷물에 닿자 파도가 숭숭이와 망치를 데리고 갔어요. 두 친구는 금방 깊은 바다로 밀려 나갔지요. 공기 방울이 서서히 바닷속으로 가라앉았어요. 


 망치는 덜컥 겁이 났어요. 숨이 잘 안 쉬어지는 것 같았거든요. 헐떡거리는 망치를 본 숭숭이가 따라 해보라며 크게 숨을 쉬었어요. 천천히 숨을 쉬며 숭숭이를 따라 하다 보니 조금씩 마음이 편해졌어요.      

 바닷속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멋진 곳이었어요.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마치 새처럼 바닷물 속을 헤엄쳐 다녔죠. 노랗고 파란 작은 물고기들의 살랑거리는 지느러미는 나비의 날개보다 아름다웠어요. 알록달록한 산호초는 봄에 활짝 핀 진달래꽃보다 예뻤고요. 망치 눈에는 그랬어요. 흥분한 망치가 공기 방울 속을 뱅글뱅글 돌았어요. 숭숭이도 덩달아 신이 났어요. 망치를 기쁘게 해줄 것을 찾느라 까만 가시를 요리조리 굴렸죠.

 “꼬르륵.”

 망치의 배에서 밥 달라고 아우성을 쳤어요. 숭숭이도 배가 고프기는 마찬가지였지요. 숭숭이가 하늘거리며 춤을 추고 있는 미역을 뜯어 망치에게 주었어요. 매끌매끌 씹지 않아도 저절로 꿀꺽 넘어갔죠. 처음 먹어보는 신기한 맛이었어요. 망치가 미역을 조금 떼어 옆구리 가시에 꽂아두었어요. 엄마 생각이 났거든요. 미역을 배불리 먹고 정신없이 물고기들을 보고 있는데 숭숭이가 소리쳤어요. 

 “으악! 어떡하지? 돌돔이야. 성게를 잡아먹는 돌돔이 나타났어.”

 숭숭이가 와들와들 떨었어요. 멀리서 호랑이처럼 줄무늬가 있는 커다란 물고기가 쏜살같이 헤엄쳐오고 있었어요. 등에 난 지느러미를 뾰족하게 곤두세운 모습이 말로만 듣던 사자 같기도 했어요. 어찌나 빠른지 하늘을 나는 참매 같기도 했죠. ‘아’하고 벌린 입안에는 울퉁불퉁한 하얀 이빨이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어요. 숭숭이가 산호초를 향해 급하게 내려갔어요. 곧 잡힐 것 같아요. 돌돔이 망치의 엉덩이 근처까지 쫓아왔어요. 망치는 두 눈을 질끈 감았어요. 돌돔이 한입에 삼키려는 듯 입을 크게 벌려 공기 방울을 덥석 물었어요. 순간 공기 방울이 옆으로 찌그러졌다가 앞으로 ‘슝’ 튀어 나갔어요. 숭숭이를 매단 공기 방울이 산호초 사이에 있는 구멍으로 쏙 밀려들어 갔어요. 산호초 주위를 몇 바퀴 돌던 돌돔이 단념한 듯 다른 곳으로 가버렸어요.   

   

 ‘휴우.’

 망치와 숭숭이가 가슴을 쓸어내렸어요. 마음을 진정시킨 두 친구가 천천히 산호초 위로 올라왔어요. 돌돔을 만난 후의 바닷속은 아까처럼 아름답기만 하지는 않았어요.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는데 숭숭이가 또 바들바들 떨었어요. 

 “대, 대게야. 빨리 도망가야 해.”

 대게가 8개나 되는 기다란 다리로 성큼성큼 다가왔어요. 거미보다 백 배, 천 배는 커 보였죠. 바위처럼 단단해 보이는 껍질이 커다란 몸통과 긴 다리를 감싸고 있었어요. 커다란 집게발에 잡히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아요. 숭숭이가 아무리 열심히 굴러도 금방 잡히고 말 거예요. 망치가 울음을 터트렸어요. 숭숭이도 같이 울음을 터트렸죠. 망치는 엄마 생각이 났어요. 엄마가 꼭 안아줄 때 나던 달콤한 엄마 냄새를 맡고 싶었어요. 도망치듯 집을 나오던 모습도 떠올랐어요. 엄마를 영영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슬퍼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엄마한테 사랑한다고 말하고 나올 걸 그랬어.’

 망치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눈을 꼭 감았어요. 아주 꼭 감았어요. 

 ‘쿵’

 무언가 와서 세게 부딪혔어요. 망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어요.     


 ‘여긴 천국인가?’

 망치가 살그머니 눈을 떴어요. 

 ‘철썩 쏴아- 짜르르르 싸르르르’ 

 바다의 노랫소리가 들렸어요. 망치가 눈을 번쩍 떴어요. 바닷가 자갈밭이에요. 바다가 빨간 해를 반쯤 물고 출렁이고 있어요. 망치가 주변을 두리번거렸어요. 멀리 커다란 바위가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어요. 망치가 눈을 비비고 커다란 바위를 자세히 쳐다봤어요. 바위 위에 숭숭이가 앉아 있어요. 

 “망치야, 안녕! 거북이 아저씨가 우리를 살려 주셨어. 다음엔 네가 육지 구경 시켜 줘! 나중에 또 만나. 안녕!”

 비릿한 바닷바람에 숭숭이의 목소리가 실려 왔어요. 망치도 숭숭이에게 손을 흔들었어요.  

   

 망치가 바닷속을 여행하는 동안 엄마는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창밖만 살폈어요. 

 “밤이 되기 전까지는 돌아오겠지? 제발 무사히 돌아오기만 해 다오. 그럼 앞으로는 집에만 붙들어 두지 않을게.”

 엄마는 온종일 망치 생각만 했어요. 망치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을 것 같았죠. 참다못한 엄마가 왕밤나무 뿌리 옆에 세워 둔 생강나무 지팡이를 짚고 밖으로 나왔어요.      

 바다가 빨간 해를 꿀꺽 삼켰어요. 망치가 산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어요. 엄마가 기다리고 있는 밤송이 마을 왕밤나무 아래로요. 발바닥이 따끔거릴 정도로 열심히 달리던 망치가 갑자기 우뚝 멈춰 섰어요. 멀리 산 아래 시커먼 그림자가 나타났거든요. 긴 뿔 같은 게 보이는 것 같기도 했어요. 혹시 멧돼지일까요? 그림자가 천천히 망치를 향해 다가왔어요. 

 한 걸음, 또 한 걸음. 푹!

 시커먼 그림자가 주저앉았어요. 넘어졌나 봐요. 그림자가 망치와 점점 가까워졌어요. 그림자 속에 하얀 가시가 보였어요. 쫑긋한 귀에 기다란 코, 짧은 다리도 보였죠. 

 엄마였어요. 엄마가 지팡이를 짚고 산 아래까지 마중 나온 거예요. 얼마나 여러 번 넘어졌는지 몸 여기저기에 흙먼지랑 나뭇잎이 붙어 있었어요. 망치가 엄마에게 달려가 와락 안겼어요. 가시를 눕히고요.

 “망치니? 정말 우리 망치니?” 

 엄마가 지팡이를 던지고 망치를 끌어안았어요. 어찌나 세게 끌어안았는지 숨이 막힐 정도였지요. 망치의 머리에 따듯한 물방울이 후드득 떨어졌어요. 엄마 품에서는 바삭바삭 딱정벌레 구이 냄새가 났어요. 망치가 보드라운 엄마 배에 얼굴을 비비며 크게 숨을 들이마셨어요. 엄마는 계속 등을 쓸어 주었지요.     


 집으로 돌아온 엄마와 망치는 다시 한번 꼭 끌어안고, 깔깔대고 웃고, 끝없이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옆구리에 꽂아둔 미역을 나누어 먹으면서요. 하지만 앞으로 언젠가 또 망치는 강이 보고 싶다거나, 동굴 탐험을 하고 싶어질지도 모르죠. 그래도 지금은 더 이상 바랄 게 없어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엄마가 곁에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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