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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만식 Aug 19. 2023

안산 가는 길

태풍 카눈이 서울을 할퀴고 갈 것이라는 일기예보와 달리  태풍 세력이 약화되어 큰 피해 없이 지나갔다. 하지만  고향 영동지방에는 물폭탄이 쏟아져 농작물 피해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애잔다.  요즘은  세계 곳곳에서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대형 화재가 발생하여 인간의 환경 파괴에 따른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 같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경기도 안산에 있는 캄보디아문화원에서 자원봉사활동 하는 날이다. 늘벗근린공원을 통과하여 지하철 도곡역을 향해 걸어갈 때 매미소리가 요란했다. 며칠 전에는 매미가 약하게 울었지만 오늘은 사뭇 다르다고 느꼈다. 카눈 태풍이 완전히 사그라졌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게다가 처서가 며칠 남지 않아서 죽을힘을 다해 짝을 찾는 했다. 길에는 이미 죽은 매미 여러 마리가 눈에 띄었는데 짝짓기를 제대로 하고 죽었는지 궁금했.


지하철 사당역에서 환승하여 안산으로 향했다. 과천을 통과할 때쯤 맞은편에 앉은 80대 할머니가 지하철 에어컨 때문에 추위에 떨며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였고 나는 할머니를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불현듯 뇌리를 스쳤다. 지금 내 옆에서 추위에 떨며 얼굴이 사색이 되어가는 할머니를 모른척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재킷을 슬며시 벗은 다음, 맞은편 할머니 옆자리로 이동했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지하철이 너무 춥네요. 이 옷을 덮으시면 추위를 견딜만할 겁니다."라고 말했더니 할머니가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고맙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약 30분이 지나자 할머니의 얼굴에 화색이 돌고 내가 중앙역에서 내릴 때 옷을 돌려주며 "정말로 감사합니다!"라고 허리를 굽혀 정중하게 인사했다.


사회봉사활동이란 남을 돕기 위해 나 스스로 희생하는 활동이다. 심리학으로는 인간의 욕구 중 최상위에 있는 자아실현의 단계라고   있다. 그런데 사회봉사활동의 시작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라 부드러운 눈빛, 상냥한 미소, 그리고 따뜻한 말 한마디라고  수 있다.

안산 중앙역에서 캄보디아문화원을 향해 걸어가면서 옛적, 가족과 함께 캄보디아를 여행한 추억을 떠올려보았다. 인구 1700만 캄보디아는 관광지 앙코르 와트와 공산주의 독재자 폴포트 정권이 저지른 킬링필드로 알려진 나라다. 현재 그 나라 출신으로 한국 내 상주하는 사람은 45,000명에 달하고, 안산에는 약  800명의 캄보디아 산업근로자가 근무하고 있다.

중세기 크메르 제국은 인도차이나 반도뿐만 아니라 지금의 태국과 미얀마의 일부까지도 복속시킬 만큼 영토가 넓고 힘이 강한 나라였다. 이 시기에 건설된 앙코르 와트 사원은 힌두교 사원으로 건립되었으나 나중에 불교 사원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를 둘러보고 근처에 있는 돈레샤프 호수에 간 적이 있다. 넓고 푸른 바다와 같은 풍광이 인상 깊었던 곳이다. 유람선을 호수에 띠우고 경치를 감상할 때 큰 대야를 타고 바나나를 팔기 위해 7살 정도 아이들이 달려들었다. 아직도 그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눈에 선하다. 돈레샤프 호수 주변에는 수상 마을을 볼 수 있었다. 배로 수상 학교에 가는 학생들과 배에서 생활용품을 파는 상인도 보았다.


지난 7월 초, 코이카 국제협력단원으로 스리랑카에서 2년간 봉사활동을 했던 고향 친구, 홍 박사 카페에서 만났다. 그 친구는 지금 캄보디아문화원에서 중급 한국어를 무료로 가르치는데 나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자원봉사를 할 수 있는지 슬며시 물었.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돈레샤프 호수에서 바나나를 팔던 어린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떠올라 그 자리에서 흔쾌히 수락다. 지금 그 아이들은 20대 청년이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캄보디아 근로자를 처음 만난 지 약 2개월이 지났다. 이제는 수강생 20명의 이름과 나이 그리고 그들의 사생활도 내 귀에 들어온다. 아무리 한국이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다 하더라도 외국인 근로자의 고충을 완전히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국가는 외국 근로자들이 인간적인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게 지원을 해주는 것이 책무 인종이나 가난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은 우리 사회에서 사라져야 것이. 지난해 11월 기준, 국내 거주 외국인은 175만 2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3.4%이다. 앞으로 이 비율이  빠르게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인 인구는 작년 처음으로 5000만 명 밑으로 떨어졌으며 사회 곳곳에서 일할 사람이 없다고 난리다.

캄보디아 친구들과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이야기하면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 오늘은 아내가 직접 만든 한국의 전통 과자, '매작과'를 근로자들에게 선물로 나눠주었다. 호기심 있는 표정으로 맛보는 그들의 순진한 모습에서 착한 속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안산 중앙역에서 캄보디아 근로자들과 헤어질 때 '릿'이 "선생님 요즘 칼부림 조심하세요"라고 말했다. 그 말이 고맙기도 했지 외국인 산업근로자들도 걱정하는 한국의 현실이 생각나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늘벗근린공원을 지나 집으로 돌아올 때 매미소리가  여전히 요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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